“한·중 관계를 매우 중시하고 있으며 함께 노력해 정치적 상호 신뢰를 공고히 하고 이견을 타당하게 처리하며 한중관계를 안정적이고 건전하게 발전시켜 나가기를 희망한다.”
한중수교 25주년을 맞이한 내놓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축하메시지를 ‘외교적 수사’(修辭)라고 치부하더라도 외교적 수사 이상으로는 절대로 들리지 않았다. 기념식장에서 외교당국자가 그냥 할 수 있는 치사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 중국의 사드보복조치는 오히려 심화되고 있고 양국관계는 점점 더 수교이전으로 되돌아가는 듯 냉랭함을 넘어 부정적인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 말로는 ‘함께 노력하자’고 수없이 다짐하고 있건만 주권국가인 상대방을 향해 사드배치 철회 이외에는 해법이 없다며 백기투항을 강권하고 있는 형국이다.
참으로 난감하다. 이 시점에서 지난 4월 미국을 방문한 시 주석이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한국이 중국의 일부였다’고 밝힌 대목이 떠오른다. 역사적으로 보면 시 주석의 말이 완전히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는 늘 외세의 침략을 받아왔고 그 ‘외세’는 일본을 제외하면 중국이었다. 시 주석이 갖고 있는 역사인식을 우리가 바꿀 수는 없다. 그의 역사인식은 아마도 북한을 자신들의 속국 정도로 간주하고 있고 북한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도 ‘쉬운’나라로 보고 있다는 관측과 맞닿아있다.
그가 이 같은 일반 중국인들의 인식과 마찬가지의 역사인식을 노출시킴으로써 더 이상 한중관계를 장밋빛으로 바라볼 수 없다는 냉엄한 현실을 깨닫게 해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한중간의 오랜 역삭 속에서 ‘수교 25년’은 눈 깜빡하면 지나갈 정도의 찰나의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사드 이후에 대해서도 일희일비하지 않아도 된다.
특히나 국가 간의 외교관계에서는 냉정함이 요구된다. 국민들이야 애국심에 사로잡혀서 흥분하는 것이 당연지사지만 외교관이나 국가지도자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외교관계에서도 지상최고의 가치는 국가이익이고 두 번째 가치 역시 국익과 국가 존립, 그리고 국민안전일 것이다.
92년 수교 당시 우리는 중국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북방정책’이라는 국가적 외교 전략에 따라 중국과 수교했지만 우리는 중국을 전혀 몰랐다. 개혁개방의 파고를 타고 세계사로 재진입하고 있던 중국의 변화를 모른 채 수교협상에 나섰고 수교 그 자체를 우리 북방외교의 최대성과로 포장하는 데에 급급했을 뿐이다. 수교이후 한중관계는 내적 성장보다는 양국이 미묘한 문제는 덮어둔 채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쪽으로만 기형적으로 성장했다. 전략적 동반협력관계는 말뿐이었다. ‘북핵문제’가 오늘날까지 이른 데에는 중국의 기여가 가장 컸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중국을 설득해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불가능한 해법에 매달리고 있다. 중국은 우리가 설득할 수 있는 그런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까. 북한과 중국은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의 혈맹 이상의 전략적 동반자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중국이 남북한 모두를 전략적 동반자로 대하고 있었는 데도 우리는 ’우리만의 특별대우‘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수교라는 틀, 혹은 반미(反美)정서에 편승해서 중국을 우리 편이라고 착각하지 않았던가. 굳이 편 가름을 한다면 중국은 북한편, 아니 북한이 중국편이다. 중국이 처해있는 국제관계 속에서 우리는 철저하게 미국편에 서 있었다. 사드배치 결정은 중국의 편가름을 굳히게 한 결정판이었다.
그렇다. 25년 전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그러나 앞으로의 한중관계는 오히려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중국이 25년 전에 비해 괄목할 정도로 성장해서 미국의 맞상대가 되려고 하고 있다면 우리 역시 중국이 겪지 못한 성장통을 겪고 경쟁력을 갖춰 세계무대에 우뚝 섰다. 예전의 중국과 한국이 아니다. 중화주의로 재무장한 중국이 공자학원과 공자아카데미를 전 세계에 세우면서 중국을 보급하고 있는 것도 주시해야 할 대목이다. 마치 서구열강들이 식민패권에 나설 때 교회와 선교사들을 전 세계에 파견, 서구문화를 파급시켰던 점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공자학원에는 중국어가 있을 뿐, ‘공자’(孔子)는 없다. 공자가 집대성한 유교문화는 동양문화의 뿌리이자 근간이다. 문화는 하루 아침에 형성되거나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자학원을 통해 중국이 서구열강처럼 성공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히려 우리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체화하고 중무장한 채 생활하고 있다. 지난 수 천년의 역사가 말해주듯이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애증이 겹겹이 쌓인 불가분의 이웃이 한국과 중국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는 지난 역사 속에서 늘 힘을 가졌던 자가 가져야 할 핵심 덕목이다.
서명수 슈퍼차이나 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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