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성휘기자] 안희정 충남지사의 이른바 ‘선의 발언’이 야권 내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선의 발언’이 ‘분노’ 논쟁으로 번지면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의 긴장 수위도 고조되고 있다. 친노(노무현) 뿌리를 공유하는 두 후보는 그간 직접적인 공격은 서로 삼갔지만, 이번 논쟁을 거치면서 분명한 대립각을 형성하는 모양새다.
안 지사는 지난 19일 부산대에서 열린 ‘즉문즉답’ 행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K스포츠·미르재단도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대기업의 좋은 후원금을 받아 잘 치르고 싶었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분들도 선한 의지로 없는 사람과 국민을 위해 좋은 정치를 하려고 했는데 법과 제도를 따르지 않아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발언했다.
이에 문 전 대표는 20일 오후 “안 지사가 선의로 한 말이라고 믿는다”고 전제하면서도 “안 지사의 말에는 분노가 빠져있다. 분노는 정의의 출발이다. 불의에 대한 뜨거운 분노가 있어야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안 지사는 지지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문 전 대표가 정확하게 말했다. 제가 분노를 사용하지 않았다”면서 “그런데 대한민국을 이끌어야 될 지도자일 때는 그 분노라는 감정이 너무 조심스럽다. 지도자로서의 분노라는 것은 그 단어 하나만 써도 많은 사람들이 피바람이 난다”고 맞받아쳤다.
문 전 대표는 21일 오전 재차 “지금 국민들은 적폐청산 그리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국가대개혁을 요구하는데 그것은 정말 오래된 적폐에 대한 뜨거운 분노, 또 그것을 혁파하겠다는 아주 강력한 의지 위에서만 가능하다”면서 “현실과 적당하게 타협하거나 기득권세력과 적절하게 손잡고 타협하는 그런 방식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일침했다.
결국 안 지사는 같은 날 오후 “최근 국정농단에 이른 박근혜 대통령의 예까지 간 것은 아무래도 많은 국민 여러분께 다 이해를 구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예가 적절치 못했다는 것에 대해 마음을 다치고 아파하는 분들이 너무 많다”면서 유감의 뜻을 나타냈다.
그렇지만 “제가 정치인을 대하는 태도는 그 어떤 분의 말씀이어도 액면가 그대로, 선의로 받아야 대화를 할 수 있고 문제해결도 가능하다는 취지로 말씀을 드렸다”며 자신의 기존 입장은 유지했다.
‘대연정론’에 이어 ‘선한 의지’, '분노는 피바람' 발언까지 내놓은 안 지사는 “자신의 정치경험에 따른 오랜 소신이자 원칙”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원활한 국정운영과 국민통합을 하려면 선악이분법을 넘어 상대진영을 우선 인정해야한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안 지사가 당원들 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참여할 수 있는 민주당 국민경선의 승리를 위해 중도·보수진영을 향한 메시지를 강화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70%가 넘는 국민들이 ‘정권교체’를 열망하고 ‘민주당 경선이 사실상 본선’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기존 민주당 지지층과 성격은 다르지만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선호하는 중도·보수층의 경선 참여를 유인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한국갤럽의 2월1주차 여론조사(1~2일 조사)에서 안 지사의 지지율은 10%에 불과했지만 3주차 여론조사(14~16일 조사)에서 22%로 급상승했다. 같은 기간 문 전 대표는 32%에서 33%로 1% 상승에 그쳤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안 지사의 지지율 상승은 중도보수층이 견인했다. 1주차 6%에 불과했던 보수층 내 지지율은 3주차 23%까지 올랐다. 1위인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25%)의 출마여부가 불투명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안 지사가 보수진영의 대표 후보로 진지하게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문 전 대표는 진보진영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1주차 50%, 3주차 53%로 과반수를 넘겼다. 같은 기간 민주당 지지층에서 안 지사는 13%에서 24%로 상승했다. 그러나 문 전 대표는 1주차 64%, 3주차 61%로 압도적 우위를 유지했다. 즉 안 지사의 돌풍이 중도보수층을 중심으로 거세게 불고 있지만 야권의 전통적 지지층에서는 아직 크게 확산되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단순 집토끼만 가지고 두 후보가 싸운다면 안 지사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마땅히 없어 보인다. 결국 산토끼들을 경선에 참여시켜야 한다”면서 “다만 보수진영에서 강력한 후보가 출연하거나 안 지사가 자칫 진보진영의 ‘선’을 넘어버린다면 지금의 지지율과 돌풍도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 차원에서 안 지사가 본인의 노선이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실용적 중도주의’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것을 부각시켜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이 관계자는 “김 전 대통령은 화합을 위해 전두환·노태우 신군부세력을 용서했고, 노 전 대통령은 국익을 이유로 한·미 FTA나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다”면서 “안 지사도 전통적 야권 지지층에게 이런 부분에서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21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뉴스토마토가 주최한 '4차 산업혁명과 미래인재' 컨퍼런스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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