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2월 내 결정이 사실상 무산되면서 박 대통령과 최순실 측의 ‘특검 무력화 전략’이 먹혀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7일 열린 박 대통령 탄핵심판 11차 변론기일에서 "재판관 회의 결과 대통령 측이 신청한 증인 17명 가운데 8명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이날까지 헌법재판관 회의에서 결정된 이후 변론기일을 보면 오는 9일(12차)과 14일(13차)에 이어 16일(14차), 20일(15차), 22(16차)일까지 총 5회 더 열린다.
이정미 재판관 퇴임 전 3월9일 결정 유력
이에 따라 이르면 24일 대통령 측과 국회 측의 최후변론이 열리고 변론기일은 종결될 것으로 보인다. 이후 재판관 평의와 강일원 주심재판관의 결정문 완성이 이어지고 재판관들이 모두 회람해 합의가 끝난 뒤 선고일이 최종 결정된다. 헌재 일정 등을 고려해보면 탄핵심판 결정일 최종 확정시까지는 약 2주 정도가 걸리는데, 3월 초순 하반기쯤이 된다. 3월9일이 탄핵심판 결정일로 지목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정미 재판관 퇴임일인 3월13일 바로 전 기일인 데다가 퇴임한 박한철 전 헌재소장이 던진 메시지를 종합해봐도 3월9일이 유력하다.
탄핵심판 결정일이 3월로 넘어가면서 정계와 법조계에서는 크게 두 가지 반응이 나온다. 헌재가 공정성에 무게를 뒀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조속한 탄핵결정을 원하는 국민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헌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그것이다. 신속성과 공정성, 국정 공백 장기화 우려 측면에서 보면 두 입장 모두 타당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 법원과 함께 국정농단 실체 규명의 한 축인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헌재의 이번 결정으로 치명상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 특검팀으로서는 법상 규정된 수사기간이 수사 범위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때문에 박 대통령에 대한 헌재의 탄핵심판 조기 결정이 매우 필요했다. 탄핵 결정 인용이냐 기각이냐를 떠나서 1차 수사기간 만료일인 오는 28일 전 탄핵심판 결정이 나올 경우 수사기간 연장승인이나 청와대 압수수색, 박 대통령 대면조사가 훨씬 수월해진다.
탄핵심판 지연 전략, 처음부터 '특검'이 타깃
때문에 탄핵 인용에 무게가 더 실리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 측에서는 최대한 탄핵심판을 지연시키는 것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특검 1차 수사 기간 만료 전 탄핵심판 결정만 막으면 특검팀은 수사기간 연장 승인이 필요할 것이고, 현재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황교안 국무총리가 연장 승인을 거부하면 특검팀은 그 즉시 무력화된다. 특검법상 수사기간 연장이 불허되면 특검 수사는 2월28일자로 종료되고 공소유지에 필요한 최소인원만 두고 특검팀은 해체된다. 이후 수사는 3일 이내 서울중앙지검으로 넘어간다. 지금까지 문제가 돼 온 박 대통령 측의 탄핵심판 지연은 처음부터 '특검 무력화'를 타깃으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수사 초기부터 박 대통령 측은 탄핵심판 지연과 특검팀 수사 거부에 지금까지도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대통령 탄핵심판 대리인단 쪽에서는 공정성 시비를 이슈화 하면서 무더기 증인 신청과 논점을 벗어난 신문으로 시간을 끌어왔으며, 대리인단의 ‘중대 결정’ 발표 예고 등으로 언론 플레이를 해왔다. 특검팀 수사 대상들은 핵심인물인 최씨부터 강압수사를 이유로 출석 거부와 묵비권으로 버티기에 들어갔다. 뇌물공여 혐의 등으로 지난 4일 구속된 박채윤 와이제이콥스메디칼 대표도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병원으로 후송됐다가 이상이 없다는 병원 진단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특검이 자백을 강요했다”고 뜬금 없는 주장을 했다. 박씨는 특검팀과 면담 조차도 하기 전이었다. 특검팀 수사 대상자들이 이같이 강압수사를 주장하는 것은 기소 후 방어를 염두에 둔 포석이다. 강압적 수사에서의 진술은 법정에서 증거능력이 없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일선에서 물러난 박 대통령도 거들고 있다. 직무정지 상태이면서도 일정 조율을 이유로 특검팀 대면조사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고, 탄핵심판 출석은 거부하면서 설 연휴 전 자신에게 우호적인 인터넷 매체와 기습적으로 인터뷰 하면서 여론을 휘저었다. 청와대도 특검팀이 약 50일간 법리검토를 한 뒤 법원이 발부한 영장을 받아 시도했던 압수수색을 거부했다. 일부 보수단체는 관제데모에 나서고 언론은 한 술 더 떠 이른바 '페이크뉴스'나 '가짜뉴스'를 여론에 대거 풀어 특검팀을 음해하거나 탄핵심판 진행에 대한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
황교안 권한대행 적기에 방패로 나서
특검팀의 청와대 압수수색 시도가 실패한 지난 3일에는 드디어 황 권한대행이 전면에 나섰다. 그는 압수수색 불승인 사유서를 제출한 대통령 비서실장과 청와대 경호실장의 상급자로서 압수수색을 승인해달라는 요청을 당일 총리실을 통해 우회적으로 거부했다. 이 때문에 특검팀은 청와대 경내 압수수색 원칙에서 선회가 불가피하게 됐다.
특히 이번 헌재의 변론기일 연장으로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급격한 태도 변화가 예상된다. 당장 9일 예정된 대면조사부터 무산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헌재 탄핵심판 일정이 상당기간을 두고 진행 중인 상황에서 대면조사는 무리라는 논리를 펼 가능성이 높다. 앞서 지난 3일 압수수색을 거부한 청와대는 불승인 사유서에서 “특검이 헌법상 소추가 금지되는 대통령을 ‘피의자’로 하여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집행을 시도했다”며 “탄핵심판 판결이 내려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을 ‘피의자’로 적시한 영장으로 무리한 수사를 실시하는 것은 헌법에 정면으로 위배되므로 심히 유감”이라고 밝혔다.
그동안의 전체적인 흐름을 볼 때 수사기간 연장 가능성도 희박하다. 황 권한대행은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 등 전·현직 청와대 또는 정부 고위 인사들이 무더기로 구속되거나 구속기소되면서 국정 운영 공백이 지나치게 장기화 되고 있음을 이유로 연장 승인을 불허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의로 특검팀 수사기간을 현행 70일에서 50일 더 연장해 120일로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특검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법리상 여러 쟁점이 있어 실질적인 통과 가능성은 의문이다. 최악의 경우 특검팀은 박 대통령을 제대로 조사도 못하고 해체될 수 있다.
탄핵심판 결정시기 더 연장될 수도
지금까지는 3월 초순쯤 탄핵심판 결정 선고가 유력하지만 박 대통령 측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더 지연될 수도 있다. 대리인이 모두 사퇴하거나 결정적인 방책으로 박 대통령 본인이 직접 탄핵심판에 출석하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특검팀으로부터 수사를 이어받게 되는 검찰 수사에도 영향이 적지 않다. 직무 정지 중이라도 대통령직은 유지되기 때문이다. 앞서 검찰은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고검장급)을 수장으로 세워 특별수사본부를 가동했지만 박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결국 실패했다.
박 대통령이 탄핵되더라도 국정농단 수사의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우선 인력적인 면에서 검찰이 과거 특별수사본부처럼 수사에 집중할 수 있는지 문제된다. 또 박 대통령 탄핵 결정과 함께 곧바로 대선국면이 시작되기 때문에 수사 자체가 정치적인 견제나 이용 당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누적인원 1000만명을 넘은 촛불민심도 대선이라는 블랙홀 앞에 어떻게 움직일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편, 이날 대통령 대리인단 소속 이중환 변호사는 “저희들이 신청했던 증인 17명 가운데 8명만 채택한 것은 상당히 불만스럽다”고 밝혔다. 추가로 증인을 신청할 지 여부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최대한 절제해서 했다. 상황에 따라 달라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단체 사임을 암시하는 ‘중대결심’ 부분에 대해서도 “지금은 말씀드릴 수 없다. 진실 규명을 위해 최대한 노력할 뿐”이라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특히 22일까지 잡힌 변론기일이 그날로 끝나지 않겠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장담 못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왼쪽)과 박영수 특별검사. 사진/뉴시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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