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농단 이슈로 국민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영하의 매서운 한파도 집회에 모인 작은 촛불을 끄지 못했다. 오히려 촛불은 횃불이 돼 활활 타올랐다.
고구마 줄기 캐듯 터져 나오는 각종 비리에 사죄하고 벌을 받아야 마땅하나,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거짓말을 늘어놓는 사람이 있다.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린 채 암중모색 잔머리를 굴리는 이가 있다. 바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다.
지난 28일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김 전 실장에 대해 “법률 미꾸라지이자 형량 계산기”라고 맹비난했다. 계속된 발뺌에도 양파 껍질 까듯 김 실장의 거짓말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구속된 차은택은 검찰조사에서 최 씨의 지시로 지난 2014년 6~7월 청와대 공관에서 김 실장을 만났다고 진술했다. 또 김종 전 문체부 차관 역시 “김 실장의 소개로 최순실을 만났다”면서 “지난 2013년 10월 김 실장이 최 씨의 딸인 ‘정유라를 돌봐주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에 김 전 실장은 “그 사람이 돈 것 아니냐”라는 격한 표현까지 써가면서 그간의 태도를 고수했다. 종합해보면 김 전 실장은 ‘최순실 게이트’ 등장인물부터 모든 사건이 자신과 무관하고, 전혀 알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김 전 실장은 누구인가? 지난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비서실장을 역임한 실세다. 앞서 지난 2006년부터 박 대통령을 보좌했던 김 전 실장은 ‘왕실장’으로 통한다. 과연 그가 최 씨의 존재를 몰랐을까? 합리적 정황은 물론 최측근의 진술이 나왔음에도 일관되게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다.
인간의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다. 미국 역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을 퇴진시킨 워터게이트 사건이 최근 주목받고 있다. 스캔들의 발단은 '도청'이었지만, 닉슨 대통령이 사임하게 된 결정적 원인은 거짓말이었다. 사회지도층의 끊임없는 거짓말,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가 우리 정치 상황과 닮았다.
지난해 자살한 성완종의 메모장에도 김 전 실장은 10만 달러를 받았다고 이름이 거명됐다. 불리한 상황에 놓일 때마다 그는 “없다”, “아니다”, “모른다”, “기억이 안 난다”라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지금도 똑같은 말만 무한 반복한다.
최근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나는 공식적인 일만 했고, 관저나 대통령 측근 비서들이 내게 귀띔을 안해줬다"면서 "모르는 것이 무능하다고 하면 할 수 없지만, 실제로 몰랐다”고 주장했다. 최순실과 엮이느니 차라리 ‘무능한 바보’가 되겠다는 의도다.
이번에는 ‘바보 코스프레’를 통해 빠져나가겠다는 심산이다. 참 비겁한 사람이다. 멍청한 놈과 이를 악용한 나쁜 놈, 그리고 비겁한 놈이 있다. 그나마 잘못을 뉘우치고 벌을 받겠다는 놈이 있는 반면, 끝까지 잘못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오히려 목소리를 높이고, 잔머리를 굴리는 놈이 있다. 과연 누가 더 나쁜 걸까?
김영택 산업2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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