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11월30일, 서른여섯의 택시노동자 박종만은 아내와 두 아들을 남겨놓은 채 스스로 몸에 석유를 뒤집어썼다. “내 한 목숨 희생되더라도 더 이상 기사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유서를 남겼다. 고은 시인은 ‘만인보’의 박종만 편에서 택시노동자의 원성이었던 도급제와 사납금제를 고발한다. “격일제 22시간 달려야, 악덕 도급제 사납금 바친다. 그렇지 않으면 그나마 월급에서 차액을 떼어간다. 그래서 마구 달려야 한다. 치고받고 눈에 불 켜달고 달려야 한다.”
노동 인권이 이야기되고, 국민소득 3만 달러를 코앞에 둔 대한민국 택시노동자들의 삶은 달라졌는가. 낮아지기는커녕 ‘도시의 막장’이라 불릴 정도로 악화일로다. 하루 12시간 한 달 만근을 해도 150만원에 못 미치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이 택시노동이다. “택시 기사들은 최저임금도 받지 못한다. 하루 12시간씩 운전하면서도 한 달에 130만~150만원 겨우 받는다. 매일 회사에 내야 하는 사납금이 12만5000원 정도인데, 10시간 꼬박 운전해야 낼 수 있다. 사납금은 채워야하니 신호위반, 과속운전, 승차 거부 등을 할 수밖에 없다.”
무엇이 택시노동자의 삶을 구렁텅이로 내모는가. 자가용 승용차의 보급, 대중교통의 확충, 대리운전의 보급 증가에 따른 택시 수송분담률 저하가 지적된다. 택시회사들의 수입 악화는 고스란히 택시 노동자들의 낮은 처우로 귀결된다. 여기에 회사 경영의 위험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사납금제는 난폭운전과 서비스 악화의 주범이다.
정부는 택시노동자들의 최소 생계 보장과 사납금제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운송수입금 전액관리제’를 도입했다. 전액관리제란 택시노동자가 벌어 드린 운송수입금 전액을 회사에 납부하고 정해진 월급을 받는 제도로 1997년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이 개정되면서 시행되어야 했다. 하지만 택시업주의 조직적인 반대와 정부의 묵인 아래 전액관리제는 전체 택시회사의 2%만 시행하고 있다. 나쁜 것이 좋은 것을 몰아낸다는 그레샴의 법칙이 관철되고 있는 것이다.
이후 택시노동자들의 오랜 요구와 투쟁 끝에 2015년 ‘택시운송사업의 발전에 관한 법률(이하, 택시발전법)이 제정되었고, 1년여의 유예 끝에 법 12조에 규정된 ‘운송비용 전가 금지’가 올해 10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운송비용 전가 금지란 택시노동자들에게 주유비, 차량구입비, 사고 관련 비용 등을 부담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회사가 택시노동자들에게 사납금을 받으면서 주유비, 세차비, 교통사고 처리비용 등을 전가시켰던 것을 바로 잡는 법안이다.
하지만 택시발전법의 시행에도 현장에서는 법이 작동하지 않은 희한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법 시행 2주일을 앞둔 9월12일 ‘운송비용 전가금지 시행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후,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손 놓고 방치 상태이다. 정부가 제도 시행을 위한 관리감독에 나서지 않자, 택시경영진들의 조직적인 사보타지가 법을 무력화시킨다. 운송비용 전가금지 제도와 사납금제 폐지는 우리의 실정에 맞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결론은 빤하다. 지금의 사납금제와 운송비용 일부를 택시기사가 부담하는 현 제도를 유지하자는 주장이다.
택시 경영진들의 주장은 불합리하다. 이제 디지털운행기록계(DTG) 의무 설치로 택시 운송수입금 확인시스템 구축이 완료되어, 택시노동자들의 업무 태만을 방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요금의 80%가 카드로 결재되어 수입금 누락은 꿈도 꾸지 못할 상황이다. 택시발전법 시행은 택시업계의 경영투명성과 서비스의 질, 그리고 택시노동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출발점이다. 1997년 제정된 운송수입금 전액관리제가 사문화되고, 2009년부터 택시노동자들에게 적용된 최저임금법이 유명무실하게 된 1차 책임은 정부에 있다. 택시노동자를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택시발전법만 갖고 난마처럼 얽힌 택시문제를 해소할 수 없다. 택시 감차도 요금 현실화도 필요하다. 불법도급 택시도 단속해야 하고, 협동조합 택시도 활성화되어야 한다. 하지만 사납금제도를 폐지하지 않는 한 백약이 무효다. 택시노동조합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법이 만들어졌다고 두 손 놓고 기다릴 때가 아니다. 마약 같은 사납금제의 유혹을 끊고 ‘운송수입금 전액관리제’와 ‘운송비용 전가 금지’ 법 지키기에 나서야 한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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