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사업 구상 차 김포공항을 통해 일본으로 출국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이재영기자] 삼성이 이건희 회장 색깔 지우기에 나섰다. 이 회장이 애지중지하던 프린터사업을 HP에 매각하는 한편, 이재용 부회장은 등기이사에 올라 경영 지배력을 강화한다. 통합 삼성물산의 출범으로 안정적인 그룹 지배력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에서 등기이사 선임은 경영권 승계를 완성하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한다. 삼성전자는 12일 두 안건을 동시에 공시하며, 서로가 떨어져 있는 주제가 아님을 시사했다.
삼성전자는 12일 이사회를 열고 이재용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을 위한 임시주주총회 소집을 결의했다. 이 부회장은 10월 임시주총에서 이사로 선임되면 그날부터 등기이사로서의 직무를 수행하게 된다. 삼성전자 이사회는 “이 부회장이 COO(최고운영책임자)로서 수년간 경영 전반에 대한 폭넓은 경험을 쌓았으며, 이건희 회장 와병 2년 동안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도 실적 반등, 사업 재편 등을 원만히 이끌며 경영자로서의 역량과 자질을 충분히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이어 “미래 성장을 위한 과감하고 신속한 투자, 핵심 경쟁력 강화를 위한 사업 재편, 기업문화 혁신 등이 지속 추진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의 이사 선임과 공식적인 경영 참여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임시주주총회에서 이 부회장의 이사 선임에 맞춰 경영지원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이상훈 사장(CFO)이 이사직을 사임할 예정이며, 이사회는 사내이사 4명, 사외이사 5명의 현 체제를 유지한다. 삼성 총수 일가 중에서는 이건희 회장이 2008년 삼성 특검 당시 주요 계열사들의 등기이사를 사임한 이후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만이 유일하게 등기이사직에 올라 있었다.
삼성전자는 이와 함께 프린팅솔루션 사업부를 10억5000만달러(1조1544억원)에 HP에 양도하는 기본양수도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프린팅솔루션 사업부의 자산, 부채, 기타 관련 권리와 의무 등을 포함해 사업부문 일체를 포괄적으로 양도한다. 프린팅솔루션 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한 후 삼성전자가 보유하게 될 분할신설회사(가칭 에스프린팅솔루션 주식회사)의 기명식 보통주식 100%를 매각한다. 다만, 국내에서는 프린터 사업 매각 후에도 삼성전자 브랜드로 판매가 이뤄진다.
이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을 위한 임시주주총회에서는 프린팅 사업부 분할 매각 건도 함께 다뤄진다. 임시주총을 통과하면 프린팅 사업부는 11월1일 자회사로 분할하는 절차를 거쳐 1년 내 매각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번 매각 결정으로 삼성전자는 선제적 사업조정을 통해 핵심사업 중심으로 역량을 집중하고, HP는 세계 1위 프린터 업체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한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 프린팅솔루션 사업 부문은 지난해 매출 2조원으로 국내 수원사업장과 중국에 생산거점을 두고 있으며, 해외 50여개의 판매거점을 확보하고 있다. 국내외 종업원 수는 6000여명이다. 지난해 프린팅솔루션 업체인 심프레스를 인수하고 올 초 미국의 뉘앙스 커뮤니케이션즈와 협업해 B2B 프린팅 시장을 공략한다는 전략을 내놨지만, 시장점유율 확대가 쉽지 않아 사업방향에 대해 고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프린터는 과거 이건희 회장이 휴대폰, 반도체 등과 함께 7대 전략 품목으로 육성해온 사업으로, 이재용 부회장의 실용주의 노선 앞에 삼성 간판을 내리게 됐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