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3천원으로 지속가능한 문화예술 사회 만들고 싶다"
장동현 삼천원 공동대표, 예술인 지원 크라우드펀딩 창업…아티스트들에 매달 후원금 지급
"예술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직접 예술인들에게 월급을 주는 방식"
2016-09-08 14:29:49 2016-09-08 15:47:12
예술인에게 가난은 숙명일까. 예술인들이 생활고에 시달린다는 것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올 3월 발표한 '2015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예술인들이 예술 활동으로 1년 동안 벌어들인 평균 수입은 1255만원으로 나타났다. 월 100만원의 수입을 얻고 있는 셈이다. 1년간 한 푼도 벌지 못했다는 예술인도 36.1%로 3명 중 1명 꼴이다. 예술활동만으로는 여전히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생계를 위해 다른 직업을 찾을 수밖에 없다. 예술인 2명 중 1명이 예술활동 외 직업을 병행하는 겸업예술인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예술이 사라지는 사회. 여기에 분노한 젊은 청년들이 모였다. 인디밴드, 웹툰, 클래식 등 해당분야에서 소위 '덕후'(특정 분야에 열중하는 오타쿠를 한국식으로 부른 오덕후의 준말)였던 7명이 모여 '지속가능한 예술'을 위한 프로젝트에 나선 것이다. 바로 '삼천원'이다. 삼천원은 문화예술 직접소비 플랫폼으로, 예술인에게 매달 최소 3000원을 지불하면 예술인은 지속적인 활동으로 보답하는 방식이다. 삼천원으로 지속가능한 문화예술 사회를 꿈꾸는 장동현 공동대표를 만나봤다.
 
[뉴스토마토 임효정기자] 검은 두건을 두른 한 청년이 인사를 건넸다. 강력한 포스가 풍겼다. 삼천원을 이끄는 장동현 공동대표다. 불과 3개월 전까지만 해도 장 대표는 인디밴드에 빠져있는 덕후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1991년생인 그는 대학 졸업도 앞두고 있다. 창업에 '창'자도 몰랐다던 그가 삼천원이란 플랫폼을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평소 인디밴드 공연을 너무 좋아하는데,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밴드가 해체되고 더 이상 공연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화가 났습니다. 원인은 기형적인 시장구조였죠. 임대료, 공연 중간수수료 등 지출이 많아 예술인들에게 제대로된 몫이 돌아가지 못하는 구조였던 것입니다. 시장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방식으로 접근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삼천원이란 아이템을 개발한 것입니다."
 
장동현 삼천원 공동대표. 사진/삼천원
 
예술인에게 매달 3000원 투자
 
'삼천원'은 크라우드펀딩 서비스다. 크라우드펀딩(crowd funding)은 ‘대중에게서 자금을 모은다’는 뜻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인터넷 매체를 활용해 자금을 모으는 투자 방식을 말한다. 삼천원이 여타 크라우드펀딩과 다른 점은 정기결제라는 점이다. 한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위해 일회성으로 자금을 모으는 크라우드펀딩과 달리 정기적으로 매달 해당 예술인에게 투자하는 방식이다. 장 대표는 이를 예술 소비자가 예술인에게 주는 '월급'으로 표현했다.
 
"'내가 좋아하는 예술인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활동할 수 있도록 내가 직접 월급을 주자'라는 취지에서 시작한 겁니다. 본인들이 하고 싶은 것만 하면 돈이 안됐던 상황에서 이렇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아, 예술활동을 지속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예술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직접 예술인들에게 월급을 주는 방식인 셈이다. 삼천원에 '문화예술 직접소비 플랫폼'이란 수식어가 붙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장 대표는 단 한 명의 팬을 위해서 활동할 수 있는 예술인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 되길 꿈꾼다. 예술활동을 하는 데 있어 임대료, 제작비, 수수료 등은 상당한 부담이자 예술활동을 이어가는 데 있어 걸림돌이다. 때문에 문화예술계도 '박리다매'가 생존전략이 되고 있다. "천명이 한 번 듣는 음악이 있고, 한 명이 천번 듣는 음악이 있죠. 모두 분명 가치는 비슷하지만 그럼에도 현실은 천명한테 팔수있는 예술만이 살아남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구조를 바꾸고 싶었던 것이죠."
 
참가자들은 매달 최소 3000원을 지불하게 되고, 5%의 수수료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예술인들에게 전달된다. 삼천원은 해당 수수료로 서버 유지와 운영을 이어가는 구조다.
 
창업 3개월차…결제건수 350건
 
플랫폼 개발에서 회사 설립까지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예술인의 생계 문제에 공감한 7명이 모인 것은 올 1월. 이들은 2월부터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며 회사 설립 준비를 했고, 4월 법인 등록을 거쳐 5월 사업자 등록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6월 플랫폼을 정식 오픈했다. 믿을 수 없는 속도다.
 
빠르게 추진할 수 있었던 데는 벤처투자사 '소풍(SOPOONG)'의 영향이 컸다. 올해 초 소풍은 사회 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하는 스타트업(초기 기업)을 대상으로 한 투자프로그램 1기생를 모집했다. 여기에 삼천원이 선정되면서 사업 추진에 속도가 붙었다.
 
"멤버 7명 가운데 창업을 해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모두 문화예술 부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지만 창업에 대해서는 지식과 정보가 부족했죠. 그렇기 때문에 소풍의 멘토링 하나 하나가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자문은 물론 심지어 비판까지도 긍정적인 영향으로 작용했죠."
 
삼천원에 등록된 예술인 펑크마녀는 매달 50만원이 넘는 금액을 후원받고 있다. 사진/삼천원 홈페이지 캡쳐
 
장 대표가 고민한 문제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았다. 9월 초 기준 삼천원에 등록된 예술인은 69팀, 예술소비자들의 결제건수는 350건이다. 건당 결제금액은 평균 1만원이다. 삼천원 플랫폼이 오픈한 지 불과 3개월 만의 성과다. 키보디스트 여운, 펑크마녀 등 예술인들은 삼천원을 통해 현재 40만~50만원을 매달 지급받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밴드가 있었던 사람들이라면 한 두번씩은 그 밴드가 어느 순간 사라지는 것을 겪어 봤을 것입니다. 이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의 바이럴마케팅 덕에 많이 알려졌습니다."
 
현재 등록신청 건수도 200건이 넘는다. 경제적인 도움을 필요로하는 예술인들이 그 만큼 많다는 얘기다.
 
예술인과 소비자 만남의 장으로
 
삼천원의 새로운 시도는 계속된다. 오프라인에서만 이뤄졌던 인디 예술의 생산과 소비를 온라인으로 끄집어 내기 위한 시도다. 이를 통해 인디 예술가들은 잠재 소비자를 찾을 수 있는 기회도 얻을 수 있다.
 
"인디 예술인들과 잠재적인 소비자가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죠. 지금 당장은 인기많은 예술인들의 기존 코어팬들이 상당부분을 후원해주고 있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인기가 적은 예술인들은 팬을 끌어모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죠. 이같은 한계점을 해결하기 위해 온라인을 하나의 창구로 이용하고자 합니다."
 
현재 삼천원 플랫폼을 통해서는 등록된 해당 예술가들 만을 후원할 수 있다. 삼천원은 여러 예술가의 작품을 온라인에 공개해, 소비자들이 마음에 드는 예술가를 찾을 수 있는 공간도 추가로 제공할 예정이다. 현재 리뉴얼 중인 플랫폼은 다음달 모습을 드러낸다.
 
해왔던 것보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 "예술인에게도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소비자에게도 본인이 좋아하는 예술인을 찾을 수 있는 서비스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창업을 하면서 '상상을 현실로 구현하는데 있어 개발이라는 요소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문화예술계에 몸을 담고 있는 스타트업이지만 테크스타트업으로서의 역량도 갖추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직 창업 시장에서는 햇병아리인 장 대표다. 하지만 자신의 관심사를 직업으로 삼은 이른바 ‘덕업일치’를 이룬 성공한 '덕후'임은 분명했다.
  
임효정 기자 emyo@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