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정부의 시계가 뒷걸음치고 있다. 국정교과서 추진, 위안부 합의 등으로 우경화, 과거회귀적 움직임을 보인다. 재계도 시간을 거꾸로 돌리긴 마찬가지다. 벤처 신화의 주인공은 검사의 스폰서였던 게 드러났고, 최근에는 국내 최고의 재벌이 성매매를 했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구태의연한 역사의식, 각종 비리와 추문으로 얼룩져 역사가 퇴행하고 있다는 말이 들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수준 미달의 '거꾸로 가는 역사'는 꼭 정·재계에만 있는 게 아니다. 잘나가는 영화계도 시간이 거꾸로 가고 있다.
2억명 관객을 동원하며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영화계는 영화 내·외적으로 반칙이 자행되고 있다
. 먼저
600만 관객을 동원한
'부산행
'의 투자배급사
NEW는 전주 주말을 이용한
3일 동안
50만 관객이 넘는 대대적인 유료시사회를 감행하며
'반칙 개봉
'을 했다
. 유료시사회를 진행하더라도 입소문을 위한
10만 내외의 객석을 마련하는 것이 관행임을 감안할 때
, '부산행
'의 행태는
'반칙의 역사
'를 새로이 쓴 셈이다
.
영화 관계자라면 워낙 급변하는 극장가에서 주말이 어떤 의미를 차지하는지 모를리 없다. 작은 영화사는 한 주 주말이라도 흥행하기 위해 모든 여력을 동원한다. 그런 가운데 NEW의 행위는 두 눈 딱 감고 자신의 욕심을 채운 것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영화의 작품성이 워낙 좋았던 덕에 '부산행'은 반칙이라는 논란을 겪고도 승승장구 하는 중이지만, 이들의 흥행을 진심으로 응원해주기는 힘들다.
'부산행'이 외적으로 시간을 돌렸다면, 27일 개봉하는 '인천상륙작전'은 영화 내적으로 역사를 돌렸다. 1950년 6.25가 터진지 얼마 안 되는 시점에 미국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 중 벌어지는 남한군의 첩보작전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다.
아쉽게도 '인천상륙작전'은 실화를 미화하고 포장하는 영화에 그친다. 6.25가 열강의 이해관계와 이념의 갈등으로 발발한 전쟁이고, 또 인천상륙작전이 이뤄진 시기는 북에 대한 분노가 높지 않았을 전쟁 초기인데도 '동족상잔의 비극'에 대해 고뇌하는 자는 없다. 오롯이 북한군은 '빨갱이', 남한군은 '미제 앞잡이'라는 공식으로 선악만 대비시킨다.
지난해 개봉한 '암살'이 일본의 밀정이었던 친일파를 부각시켰고, 올해 초 개봉한 '동주'는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했던 윤동주의 아픔을 자세히 표현했다. 부끄러운 역사를 세밀하게 살폈던 영화가 앞서 나왔음에도 '인천상륙작전'은 역사를 자신들만의 관점대로 해석하는 우를 범했다.
'온고지신'은 옛 것을 익히고 그것으로 새 것을 안다는 뜻이다. 부끄러운 역사라도 제대로 알아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그래서 역사 콘텐츠만큼은 철저한 고증을 통해 조금도 틀리지 않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를 작위적으로 해석하는 '인천상륙작전'의 시선은 후배들이 행여나 닮지 않았으면 하는 노파심을 불러 일으킨다. 그 어느 때보다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영화계가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씁쓸하기만 하다.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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