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광연기자] 아시아를 떠돌았던 왕정훈(21)이 유럽프로골프(EPGA) 투어 하산 2세 트로피(총상금 150만유로·약 19억9000만원) '깜짝' 정상에 올랐다. 우승의 기쁨도 크지만, 그간 뛰었던 곳보다 더 큰 무대인 유럽 정착 계기를 마련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왕정훈은 9일(한국시간) 모로코 라바트의 로열 골프 다르 에스 살람(파72·7487야드)에서 열린 대회 마지막 날 4라운드에서 버디 3개, 보기 1개를 묶어 2언더파 70타를 치며 최종합계 5언더파를 기록했다. 나초 엘비라(스페인)와 동타를 이룬 왕정훈은 연장 접전 끝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끈질기게 상대를 물고 늘어지며 값진 결과를 만들었다. 왕정훈은 이날 선두에 3타 뒤진 공동 5위로 4라운드를 맞았다. 17번 홀까지 1타를 줄인 왕정훈은 엘비라에게 1타 뒤진 운명의 마지막 18번 홀(파5)에서 짜릿한 버디 퍼트를 집어넣으며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갔다.
이후에도 쉽지 않았다. 18번 홀에서 시작한 연장 첫 번째 홀에서 티샷이 흔들리며 공이 러프에 빠지는 위기를 맞았다. 반면 엘비라는 버디 기회를 잡았다. 우승이 어려울 수 있었지만 왕정훈은 포기하지 않았다. 세 번째 만에 공을 그린 위에 올린 왕정훈은 짜릿한 10m 장거리 버디 퍼팅을 넣으며 연장을 이어갔다. 이후 기세를 몰아 연장 두 번째 홀에서 버디를 낚으며 파에 그친 엘비라를 제치고 환호했다.
이번 우승으로 왕정훈은 최경주(SK텔레콤)를 비롯해 지난주 선전 인터내셔널을 제패한 이수민(CJ오쇼핑)에 이어 한국 선수로는 역대 8번째로 EPGA 정상에 오른 선수로 기록됐다. 무엇보다 2018년까지 EPGA 풀시드권를 확보한 게 큰 수확이다. 아시안(APGA) 투어를 비롯해 여러 무대에 뛰어들었지만 이젠 유럽 무대에 전념할 수 있는 안정된 조건을 마련했다.
그간 왕정훈은 '별종'이자 '떠돌이'였다. 주니어 시절 김시우(CJ오쇼핑)와 함께 무한한 잠재력을 갖춘 특급 유망주로 평가받았다. 2010년 용인대 총장배 우승 등 주니어 대회에서 두각을 보였지만 다른 선수와 달리 경쟁이 덜 심한 필리핀으로 건너가 주니어와 아마추어 대회를 휩쓸며 시선을 끌었다. 2011년 필리핀 아마추어챔피언십도 제패했다. 이후에도 국내 대신 중국을 택했다. 만 16세 나이에 중국프로골프(CPGA) 투어에서 첫 프로 문을 두드렸고 2012년 CPGA 상금왕까지 차지했다.
이듬해 아시안 투어로 발을 좀 더 넓힌 왕정훈은 2014년 12월 열린 아시안 투어 두바이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가능성을 입증했다. 아시안 투어 풀시드 자격으로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프로 자격을 획득한 왕정훈은 지난해 세계랭킹 순으로 출전한 KPGA SK텔레콤 오픈과 코오롱 한국오픈에서 연거푸 3위에 입상하며 존재감을 알렸다. 지난 3월에도 아시안 투어 히어로 인디안 오픈에서 준우승하며 활약했다.
이번 우승은 그간 성과의 연장선이다. 국내 대신 여러 국제무대에 도전장을 던졌던 신성이 마침내 유럽을 정복했다. 왕정훈은 이제 유럽을 계기로 최종 목표인 미국프로골프(PGA) 투어를 정조준한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
왕정훈이 9일 열린 유럽프로골프 투어 하산 2세 트로피 정상에 올랐다. 사진은 지난해 9월 12일 열린 코오롱 제58회 한국오픈 3라운드 1번 홀에서 티샷을 마친 뒤 장면. 사진/코오롱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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