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기, 끝내 '주홍글씨' 받았다
금융위, 황영기 '직무정지 상당' 중징계 최종확정
4년간 취업제한..사실상 '퇴출선고'
법정공방 가능성 대두..치열한 소송전 벌어질까
2009-09-09 21:04:20 2009-09-10 08:03:34
[뉴스토마토 박성원기자] 금융당국이 황영기 KB금융 회장에 대해 사실상 '퇴출' 조치를 확정했다. 황 회장은 실패한 금융인으로 몰락할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조만간 법적인 대응을 통해 '반격'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위원회는 9일 열린 정례회의에서 황 회장에 대한 '직무정지 상당'의 징계안건이 통과됐다고 밝혔다.
 
앞선 3일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는 우리은행의 파생상품 투자손실에 황 회장의 책임이 크다고 보고 '직무정지 상당'의 중징계를 결정한 뒤 해당안건을 금융위에 상정했다.
 
우리은행은 지난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부채담보부증권(CDO)과 신용부도스와프(CDS) 등 파생상품에 15억8000만 달러를 투자해 90%가량을 날린 바 있다.
 
유재훈 금융위 대변인은 정례회의 직후 브리핑에서 "황 회장에 대해 '업무집행 전부 정지 3개월'의 징계를 확정했다"며 "사실상 금감원의 징계가 원안 그대로 받아들여졌다"고 말했다.
 
만약 황 회장이 아직까지 우리은행장을 지내고 있다면 앞으로 3개월간 은행장 업무를 볼 수 없다는 뜻이지만, 현재 그는 우리은행을 떠난 상태다.
 
따라서 '업무집행 전부 정지 3개월' 자체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그러나 이같은 징계가 확정되면서 그는 앞으로 4년간 금융회사의 임원으로 취임할 수 있는 자격을 박탈당했다.
 
◇ 황영기 이대로 몰락하나
 
금융위의 이번 결정에 따라 금융권의 대표적인 'MB맨'으로 불리며 승승장구하던 황 회장은 막다른 골목에 내몰리게 됐다.
 
현재 맡고 있는 KB금융 회장직을 수행하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연임은 불가능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황 회장이 조직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현직에서 물러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물론 금융위 결정에 따른 '페널티'는 앞으로 '4년'간 적용되는 한시적인 취업제한이다. 하지만 그가 계속 금융권에 남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황 회장측은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어쨌든 감독·징계권한을 가진 금융당국이 현직 금융 최고경영자(CEO)의 리스크 관리 능력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못박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금융당국은 황 회장이 파생상품 투자과정에서 은행법과 은행업 감독규정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금융권에서 쌓아온 신뢰와 명성에 지우기 힘든 '주홍글씨'가 새겨진 셈이다. 이번 결정이 사실상의 '퇴출선고'로 해석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업계 입장에서 볼 때 이번 징계 결정은 상징적인 의미가 더 크다"며 "회사에 손실을 끼쳤다는 이유로 금융당국의 징계를 받은 인물을 선뜻 임원급 간부로 영입할 곳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했다.
 
또 "아무리 이번 징계가 부당하다고 판단할지라도 금융당국과 금융기관의 관계를 감안할 때 업계가 징계결정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예보 징계도 임박..손배소 가능성 제기
 
금융당국에 이어 우리금융의 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도 조만간 예금보험위원회를 열어 황 회장 등에 대한 징계를 결정할 방침이다.
 
당초 금감원 제재심의위 결정 직후 예보위가 열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금융위의 최종결정이 나올 때까지 징계안건 상정을 미룬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금융위가 최종결정을 내린 만큼, 이르면 다음 주 안에 임시 예보위가 소집돼 징계여부가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예보 관계자는 "금융위 정례회의에서 최종결정이 나면 이승우 사장도 '결단'을 내릴 것"이라며 "예보도 이 문제를 빨리 털고가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금융위 정례회의 당연직 위원이다. 그는 이날 진동수 금융위원장, 김종창 금융감독원장 등 다른 7명의 위원들과 함께 황 회장 징계안건을 논의했다. 예보가 금융당국과 비슷한 수준의 중징계를 내릴 것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예보가 우리은행을 통해 황 회장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예보가 대주주 자격으로 우리은행에 손배소 청구를 요구하고, 우리은행이 내부 검토를 거쳐 황 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방식이다.
 
또 다른 예보 관계자는 "관련법을 검토한 결과 현행 예금자보호법을 근거로 소송을 제기할 수는 없다"며 "다만 상법 상 (대)주주가 회사에 손실을 끼친 경영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순순히 물러날 인물 아니다"..법정공방 벌어질듯
  
현재 황 회장이 꺼낼 수 있는 카드는 재심청구와 소송 등 크게 두 가지다. 일단 우리금융 회장 겸 우리은행장 재직 당시 대주주인 예보와 불협화음을 빚었던 황 회장의 성향을 감안할 때 순순히 징계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우리은행 핵심 관계자는 "황 회장은 우리은행에 있을 때 예보의 방침에 일일이 각을 세울 만큼 자존심이 센 인물"이라며 "자신의 금융인생이 걸린 마당에 쉽게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황 회장이 금융위에 재심을 청구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지만 이마저도 가능성은 낮다는 게 금융당국 안팎의 분석이다.
 
그간 금융위가 정례회의에서 내린 결정을 바꾼 일이 거의 없는 데다, 금융당국 수장들이 이미 '황 회장에 대한 징계는 불가피하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미 '낙인'을 받은 황 회장이 명예회복을 위해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등 법적인 대응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실제로 이날 정례회의에는 현재 황 회장의 법률대리인을 맡고 있는 법무법인 '세종'의 송창현 변호사와 이진호 변호사가 참석해 의견을 전달했다.
 
만약 황 회장이 소송을 선택할 경우 파생상품 투자손실의 책임 여부와 징계의 적절성 등을 놓고 금융당국과 현직 금융CEO가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면 금융위와 금감원은 조직의 자존심과 금융당국의 권한을 걸고, 황 회장측은 명예회복과 징계철회를 목표로, 지루하지만 치열한 공방을 벌일 공산이 크다.
 
여기에 예보가 우리은행을 앞세워 황 회장에 대한 손배소 청구를 강행할 경우 '황영기 사태'는 소송에 소송이 맞물리는 복잡한 양상으로 번지게 된다. 금융당국, 예보, 우리은행, 황영기 등 관련기관과 당사자들이 물고 물리는 법정다툼에 돌입하는 것이다.
 
제재심의위가 우리은행에 내린 영업 일부정지 조치는 기관경고로 감경됐다. 최훈 금융위 은행과장은 "국내 은행의 대외신뢰도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과 예금자들의 혼란을 차단하기 위해 감경을 결정했다"며 "대신 리스크관리와 내부통제 강화를 위한 조건을 부과했다"고 설명했다.
 
뉴스토마토 박성원 기자 want@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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