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수치화해서 이해하는 건 그에게 낯설지 않다. 삼국지 게임에서 인물들의 능력은 통솔력·무력·지력·정치력 등의 잣대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제갈량의 지력은 100이라서 화계·혼란 등의 어지간한 책략은 거의 성공한다고 봐야 하고, 여포의 무력은 100이라 일대일 싸움에서 필승카드다. 전국통일을 향해 진군하다 보면 적장을 잡을 때가 있다. 적장의 처분은 주로 능력에 달려있다. 능력이 괜찮으면 등용을 시도하고, 거부하면 투옥하거나 때때로 놓아주기까지 한다. 반면에 무능한 놈은 데리고 가봐야 쓸데도 마땅치 않고, 돈과 밥만 축내며, 놔주면 다음에 다시 덤빌 테니 그냥 목을 날린다. 축구·야구 같은 구기운동 게임, 또는 스타크래프트 같은 전략 게임에서도 사람은 숫자로 환원된다.
게임을 접하는 때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체로 정규교육과정에 진입하면서다. 학교에서는 그가 국어·수학·사회·과학 등의 기준으로 수치화해서 표현된다. 평가는 점점 복잡해지고 냉정해진다. 초등학교 받아쓰기에서는 그저 점수만 받았다면, 중·고등학교에서는 과목별로 동급생 중 상대적인 성취도를, 대입 수능에서는 전체 응시자 중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한다. 그는 영어·수학을 잘하지 못했다. 대신에 그림은 곧잘 그리고 공도 잘 차고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좋은 녀석이었지만, 좋은 학생은 아니었다. 성적표에는 그런 걸 담지 않으니까.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시험과 평가는 끝나지 않았다. 인성·적성도 사람을 가리기 위해 객관식 문답으로 측정된다. 살면서 이것저것 겪어봤지만 아직 그는 적성을 모른다. 몇 년을 알고 지내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드러난 본모습에 당황하는 게 인성이다. OMR 답안지에 과연 인성과 적성을 잘 요약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게 표준화한 인성과 적성이 필요한 곳이 있고 그 역시 그곳이 필요하니, 묵묵히 인·적성 시험을 연습하는 게 맞긴 하다. 최근에 그는 친구가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해 자신의 값어치를 점수와 등급으로 인증 받았다는 말에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직업이 안정적이면 높은 점수, 지방에서 대학을 졸업하면 낮은 점수라는 것 정도는 들어서 안다. 주워들어 어렴풋하게나마 그려지는 그 계산기에 자신을 대입해서 값을 어림해 보는 여유도 생겼다. 그리 높지는 않겠다.
광화문 지하. 사진/바람아시아
며칠 전 강의실 가는 길에 마주친 장애등급제 폐지서명운동은 그래서 낯설었다. 나눠준 자료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장애등급제 폐지를 약속했지만, 지난 5월에 보건복지부가 2017년까지 현행 6등급의 장애등급제를 중증·경증으로 단순화, 사실상 장애등급제 유지를 발표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와 친구들을 열등생에 다져 넣던 방식 그대로 국가에서 인정한 형태의 불편만을 돕는 방식, 학생이 점수·등급에 목을 매듯 장애인이 자신의 등급에 매달리도록 만드는 방식, 몸이나 마음이 불편한 정도에 따라 사람이 사람을 점수·등급화해서 수준에 맞게 돕겠다는 방식은 그동안 연습해온 질서와 어긋나지 않는다. 대통령의 공약 후퇴는 실망스럽지만, 등급제를 폐지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라는 요구는 아무래도 돈이 많이 들고 손도 많이 갈 테니 힘들지 않을까. 괜히 거기서 멈칫한 탓에 나눠준 자료를 받아들어 읽어보고, 설명도 듣다 보니 얼결에 서명하고 왔지만, 그는 아직도 헷갈린다. 추운 날씨에 장애등급제 폐지서명운동에 나선 학교 친구들이 딱해서 서명했던 걸까, 아니면 장애등급제로 상처받는 이들이 슬펐던 걸까. 2012년 8월 21일에 시작한 광화문의 장애등급제 폐지 농성 시위는 11월 5일 현재 1,172일로 접어들었다.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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