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세냐 증세냐를 놓고 무더운 날씨만큼이나 논란이 뜨겁다. 세금을 더 걷으면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경기에 찬물을 끼얹어 경기를 다시 위축시킬 것이란 주장과 내년 국가채무가 4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등 재정건전성이 악화된 마당에 감세는 어불성설이니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는 주장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이에 기획재정부는 "감세는 예정대로 간다"고 논란에 종지부를 찍으려 했다. 그러나 논란은 여전하다. 정부가 감세를 유지하겠다고 했지만 믿지 않는 분위기다. 나라 곳간 사정은 생각보다 심각하기 때문이다. 올해 세제개편 발표가 한달 여 앞으로 다가왔다. 토마토TV가 감세·증세 논란이 달아오른 이유와 나라곳간 사정, 재정건정성 확보 방안 등에 대해 취재했다.(편집자註)
[뉴스토마토 정책팀] 이명박 정권 초기부터 강력하게 드라이버를 걸어왔던 '감세정책'이 불과 1년여만에 역풍을 맞고 있는 이유는 뭘까. 야당도 아닌 여당인 한나라당 의원들의 '감세유보' 목소리가 더 날카로운 것이 이명박 정부의 약점이다.
내부의 반대가 그만큼 적지 않기 때문이다. MB진영의 이 같은 파열음은 정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특히 나라의 살림살이를 책임지고 있는 기획재정부는 그야말로 가시방석이다.
전례없는 대규모 경제위기가 닥치자 밤잠을 설쳐가며 일해 겨우 회복기에 접어들도록 해놨더니 "국고가 텅비었다"고 모든 책임이 재정부에 있는 것처럼 닥달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세제개편이 불과 한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세금을 더 걷을 것이냐, 덜 걷을 것이냐"를 놓고 실무부처인 재정부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재정부의 실제 고민은 1인자의 압력이나 무기력한 국회의 압박이 아닌 '선택'의 어려움에 있다. 더 걷으면 어떤 세금을 누구에게 더 걷고, 덜 걷으면 어떤 세금을 누구에게 덜 걷을 것인가.
감세정책을 지속하자니 재정건전성이 악화된 현실에서 더 버티기가 어렵고, 증세로 돌아서면 경기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증세는 '반서민적'이란 언론의 강도높은 비판에 부딪혀 있는 형국이다.
언론은 1기 경제팀의 수장이자 MB노믹스의 설계자인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과 2기 경제팀의 수장인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의 대결구도를 내세우며 연일 논란을 가열시키고 있다.
◇ "강만수 對 윤증현"..감세의 이유, 증세의 이유
감세는 이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 축이다. 일부에서는 경기부양에는 감세만큼 약발이 먹히는 정책도 없다고 주장한다. 세금을 깎아주면 소비가 살아나고 투자도 살아나면서 일자리가 늘어나 경제전체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커져서 결국 경제가 다시 활기를 띠게 된다는 주장이다.
대기업과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줘 이들이 투자하게 만든다는 이른바 '부자감세'의 논리다. 당시 많은 반대에도 1기 강만수 경제팀은 밀어부쳤다.
그러나 감세정책을 밀어부친지 1년이 지났지만 기대했던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동안 정부는 소득·법인세 인하는 물론 다양한 감세와 규제완화 등을 통해 대기업들의 투자를 유도했지만 결과는 거꾸로 나타났다. 대기업의 투자는 오히려 줄었고, 일자리도 감소했으며, 빈곤층은 급증했다.
30대 그룹의 상반기 투자는 지난해보다 15.7% 줄었고, 30대 그룹의 올해 채용규모는 29.4% 감소할 전망이다. 90년대 10%를 넘지 않았던 빈곤층은 15%를 넘어섰다. 가계부채가 느는 등 서민경제가 파탄위기에 내몰리자 중산층에서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가구가 급증한 것이다.
경제는 살려야겠는데 자기 보신에 급급한 대기업은 돈 한푼 내놓지 않으니 정부가 쓸 돈을 다 감당하다보니 국가 재정도 심각해졌다. 곳간은 이미 텅비고 빚으로 살아야 할 판이다.
이 때문에 '증세'를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올해 국가채무는 366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지난해보다 57조7000억원이나 증가한 것이다. 빚의 증가 속도가 가장 빠르다.
◇ 내년 나라 빚 400조원 이자만 20조원..증세 불가피?
내년에는 400조원으로 빚이 늘어나고 이자만 2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됐다.
성명재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의 조세정책은 경기상황에 대응하는 측면에서 사용했다는 것은 지나친 감이 있다. 모든 것을 다 해봐야 하는 상황에서 한 것"이라며 "(세금을) 낮춤으로해서 경기전반에서 얻게 되는 편익이 크기 때문에 깎은 것인데 특혜를 줌으로써 형평성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성 연구위원 이어 "그것이 과실이 나눠진 긍정적 효과도 있으나 생산의욕을 많이 꺾은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나라살림을 꾸려가는 재정부가 이를 모를 리 없다. 윤증현 장관은 지난 1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만고불변의 정책은 없으며 상황이 변하면 거기에 맞게 변하는 것이 경제정책"이라고 말해 '감세정책'의 철회를 시사했다.
그래서 비과세 감면을 축소해 대형TV나 냉장고·에어컨·드럼세탁기 등에 개별소비세를 부과하고, 담배와 술에 세금을 더 메기는 이른바 '죄악세' 도입도 추진하는 것이다.
그러나 곧 반발에 부딪혔다. 언론을 중심으로 '부자감세, 서민증세'의 반대여론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부자들은 소득세 등을 깎아주면서 불경기일수록 서민들이 많이 애용하는 술이나 담배에 세금을 더 메기는 것은 서민들에게서 부자들에게 덜 거둔 세금을 전가시키려 한다는 역풍이 재정부 세제실로 사정없이 불어닥쳤다.
결국 김광림 한나라당 제3 정책조정위원장은 지난 16일 "주류와 담배 세금을 올려서 가격을 인상시키는 방안은 더 이상 논의하지 않기로 당정간 의견을 모았다"고 진화했다.
이튿날인 17일에는 재정부가 "감세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여당에 동조했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최근 국회와 학계에서 (소득세와 법인세)세율인하를 유예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정부 입장은 확고하다"면서 "윤증현 장관이 입장이 다소 달라진 것처럼 보도된 바 있으나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감세방침은 새 정부 세제정책의 기본 방향으로 세금을 낮춰 기업이 국제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하고 국민부담도 덜어줘 소비진작에도 기여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면서 "이 원칙은 지금까지 전혀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세제개편 발표를 불과 한 달 남겨두고 주무부처인 재정부가 감세정책은 그대로 밀고 나갈 것이니 더 이상 왈가왈부 하지말라고 선언한 셈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믿지 않는다.
세금을 더 거둘 수밖에 없는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의 발언이니 믿기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이제 증세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의 문제다.
고영선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전세계적으로 감세가 전반적인 추세였는데 최근에 다른 나라에서도 경제위 기 이후에 증세를 하고 있다"면서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도 부분적으로 증세를 추진 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그런 추세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진단했다.
고 선임연구위원은 그러면서 "고소득자 증세문제는 개인적으로 바람직하다고 본다"면서 "정부 발표안에서 (고소득자의) 세율을 모든 구간에서 인하했는데 세율이 상당히 낮아지면서 혜택을 본 측면이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소득 재분배 측면에서 고소득층에 대한 세율을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고소득층 증세가 맞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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