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들에게 난민은 뜨거운 감자다. 난민을 받아 주자니 돈이 너무 많이 들고, 내치자니 인권이란 가치를 저버리는 것 같아 마음이 영 찜찜하다. 자기가 낸 세금이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쓰여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정부 예산이 금새 바닥날까 전전긍긍한다. 유럽인들은 이 두 가지 마음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국민의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들은 여론과 경제 상황에 맞춰 난민 정책을 조율한다. 난민에 대한 국민 여론과 경제 사정이 호전되면 국경 통제 수위는 낮아지고 지원 자금은 증액된다. 반대로 여론과 경기가 악화되면 국경 검문이 강화되면서 지원금은 감액되기 시작한다.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다. 유럽은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한 후유증을 아직 털어내지 못했다. 남을 도와줄 만한 경제적인 여유가 없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유럽인들은 몰려오는 난민들을 따가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경제·정치적 혼란에 유럽 난민 인구 급증
유럽의 반이민 정서가 최고조에 이르렀다. 미국의 브루킹스연구소에 따르면 스웨덴을 제외한 유럽연합(EU) 국민 40%가 이민자에 반감을 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난을 겪고 있는 키프로스와 헝가리는 무려 80%에 이른다. 난민들에게 직장을 빼앗기거나 사회복지 예산이 축날 것이란 우려가 커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유럽 각국은 몰려드는 난민들을 수용하는 데 많은 예산을 쓰고 있다. EU 최대 경제국인 독일은 망명 신청을 하러 온 이민자에게 용돈으로 매달 143유로(18만원)를 지급한다. 많지 않은 액수이나 신청 인원이 누적될 경우 지급액이 한없이 불어날 위험이 있다. 난민들 돌보는 데 예산이 과다하게 투입되면 국민에게 돌아가야 할 복지 혜택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지난해부터 난민 인구가 급증해 이러한 우려는 점점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국제연합(UN) 과 유럽 국경감시기구인 프론텍스(Frontex)의 조사에 따르면 올들어 지금까지 유럽으로 이주한 난민 수는 15만3000명에 이르렀다. 이는 전년동기의 6만1500명을 두 배 이상 웃도는 규모다.
국가별로 보면 이탈리아로 유입된 난민 수는 지난해 4만2000명에서 올해 6만2000명으로 늘었고, 그리스는 6500명에서 6만3000명으로 급증했다. 스페인과 몰타는 각각 1000명에서 1500명으로 증가했다. 이 밖에도 독일과 스웨덴,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선진국도 난민 인구 유입이 이어지고 있다. 난민의 국적은 다양하다. 내전을 겪고 있는 시리아, 내분이 발생한 리비아, 이슬람국가(IS)와 대치 중인 이라크 등이 대표적인 난민 배출 국가다. 심각한 경제난을 경험 중인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도 난민이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경제·정치적 불안이 난민 인구를 키우고 있는 셈이다. 최근 브루킹스연구소는 지난해 전세계 6000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전쟁과 폭력, 경제적 기근으로 살던 집을 잃었다고 보고했다. 10년전만 해도 3700만명에 불과했는데, 최근 들어 급증했다.
◇EU 난민 지원책 마련할 때 개별 정부 빗장 걸어
유럽 국가들은 이런 실상을 감안해 EU 차원의 난민 지원책을 강화하려고 애쓰고 있다. 이달 초에는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몰려오는 난민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회원국에 24억유로(3조6000억원)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대량 실업사태와 저성장 위기에 인도적 지원을 확대키로 한 것이다. 이와 발맞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 16일 "난민 문제가 그리스 경제 위기보다 EU에 더 큰 도전"이라고 말하며 EU 각국이 공동 행동을 취할 것을 강조하기도 했다.
EU가 이처럼 무리하면서까지 난민 관련 예산을 증액하는 이유는 창립 이념 때문이다. EU 결성의 모체가 된 ‘쉬망 계획(1951년)’에는 “유럽은 보유 자원이 늘어날수록 아프리카 대륙 개발이란 핵심 의무를 뒤쫓아야 할 것”이란 말이 명시돼 있다. 난민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창립 이념을 부정하는 것과 같기에 EU는 다른 예산을 깎아서라도 지원 정책을 유지하려 한다.
문제는 개별 회원국들이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선진국 정부들이 난민 인구 유입에 난색을 보이고 있어 투자 효과가 얼마나 발휘될지는 미지수다. EU의 지원이 있다 해도 회원국 정부가 감당해야 하는 예산 부담이 만만치가 않다. 특히 최근 들어 독일 정부가 망명 지위 부여에 까다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9일 독일 정부는 공식 성명을 내고 난민 허용 수를 9만4000명으로 제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망명 지휘를 신청하는 난민 수가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난민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도 곱지 않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독일인의 62%가 난민의 즉각 추방을 요구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올해 망명 신청 건수가 40만건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20만2654건의 두 배에 달하는 규모다. 이에 따라 독일 정부는 망명 이유가 불분명하면 신청서를 반려할 계획이다. 또 한 번 입국이 거부된 자에게 재입국 기회를 부여하지 않을 방침이다.
타 문화에 대한 열린 태도로 난민의 천국이란 수식어까지 붙었던 스웨덴까지 반이민 정서에 휩싸였다. 난민은 관용의 대상이 아닌 잠재 범죄자 취급을 받고 있다. 악화된 분위기를 증명하듯 지난 18개월 동안 스웨덴 난민들은 총 77차례의 공격을 받았다. 최근에는 스톡홀름 공원에서 노숙하던 난민에게 염산을 끼얹는 사건이 벌어졌다. 난민들이 자국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복지 예산 부담도 가중시키고 있다는 여론이 확산된 탓이다. 망명 지위를 얻은 난민들은 복지 혜택을 누리면서 빈 병을 모으거나 구걸하는 식으로 용돈 벌이를 한다. 이들은 어느 정도 돈이 모이면 다시 본국으로 돌아간다. 스웨덴 난민의 대다수가 경제 이민자(economic migrant)인 셈이다. 이 때문에 스웨덴인들은 난민들을 ‘먹튀’ 쯤으로 여긴다.
◇영국·프랑스, 난민 문제로 골머리 앓아
영국과 프랑스 또한 난민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프랑스 칼레 난민들이 영국행을 결심하면서 양국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 지난 6월 데일리메일은 영국 경찰 보고를 인용해 지난 12개월 동안 영국 해협을 넘어오려는 난민 수가 무려 200% 증가했다고 전했다. 잉글랜드 동부 베드퍼드셔 경찰은 영국과 프랑스 해저터널에서 매달 평균 23명의 불법 난민을 체포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67명에 달했다.
난민들이 영국을 찾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영국은 사회복지 수준이 높은 데다 세계 공용어인 영어의 본고장이라 의사소통에 유리하다. 다른 유럽국 보다 경제 회복 속도도 빨라서 일자리도 많은 편이다. 실제로 영국의 실업률은 5% 중반대로 EU 총 실업률인 10%의 절반 수준이다. 난민이 저임금 인력 충원에 도움이 될 것이란 의견이 많아 국민여론도 긍정적이다. 여론조사 기관 입소스 모리(IPSOS MORI)의 조사에 따르면 영국인 10명 중 3명(28%)은 난민 수용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지난 2011년 이후 무려 9%나 상승한 것이다. 세계 평균인 21%보다도 높다. 그러나 영국 정부 또한 사회복지 부담으로 난민 유입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지난달 “영국은 이주자들의 피난처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며 정부의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난민문제, 생명 경시·경제 손실 불러와"
난민에 대한 EU 선진국들의 냉담한 태도에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인간의 생명이 달린 문제를 두고 경제적 득실을 따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달 초 “난민을 거부하는 것은 전쟁 행위와 다름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아울러 경제적인 시각에서 비판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난민 문제를 이대로 내버려두면 더 큰 경제적 손해를 불러올 수 있는 데다 유럽이 당면한 생산력 부족 사태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경고도 나온다.
실제로 난민 유입을 막으려고 검문을 강화하다 보니 물류 이송이 늦어지고 관광객 유출입도 지연되고 있는 실정이다. 저임금 인력을 찾는 기업과 난민 노동력이 이어지지 않고 있는 점 또한 문제다. 모하메드 엘 에리언 핌코 최고경영자(CEO)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난민 문제는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며 “유럽 정부들은 종합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브루킹스 연구소는 난민 문제의 근본 원인을 법적 접근성 부족으로 보고 난민이 합법적으로 유럽에 입국할 기회가 더 주어져야 한다고 진단했다. 난민의 90%는 불법 이민자다.
윤석진 기자 ddagu@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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