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쿡, 당신 회사 적정주가는 240달러요"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이 지난달 서한을 통해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에게 전한 메시지다. 아이칸은 서한에서 애널리스트와 저널리스트, 기관투자자 모두 애플의 기업가치를 저평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말 한마디에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했고 애플의 시가총액은 하루에 83억달러(원화 9조2000억원)나 불어났다. 이에 대해 마켓워치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행동주의 투자의 대가 칼 아이칸의 발언의 가치라고 평가했다. 칼 아이칸은 애플의 0.92%의 지분을 갖고 있는 주요 주주이며 애플의 자사주매입을 관철시킨 장본인이다. 또한 이베이가 알째배기 업체 페이팔을 분사시켰을 정도로 행동주의 투자의 선봉장에 서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사진/뉴스1
그와 맞먹는 행동주의 투자자가 한국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아르헨티나를 기술적 채무불이행에 이르게 한 엘리엇 싱어가 이끄는 헤지펀드다. 지난 4일 삼성물산 경영참여에 필요한 지분(7.12%)을 확보한 뒤 전면에 나섰는데 제일모직과의 합병 조건이 매우 불공정하다며 반대를 의사를 밝혔다.
또 국민연금과 삼성화재 등 주요 주주에게 양사의 합병을 반대해달라는 문서를 보냈으며 현금배당 확대나 정관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지분매입 소식 이후 삼성물산은 이틀 연속 10% 급등했다. 앨리엇은 주요 주주들에게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되어 있다며 합병을 반대할 것을 요청했다. 이처럼 해당 기업의 주식을 매입해 의결권을 확보한 뒤 경영진을 압박해 수익을 올리는 이른바 행동주의 투자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주가와 기업가치 괴리 견딜 수 없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투자자
행동주의 투자라고 하면 '먹튀'나 '국부유출'과 같이 부정적인 이미지로 인식되지만 서구에서는 소액주주의 불만이나 가치를 대변해주는 적극적인 투자자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어려움을 겪는 기업에 구조조정 등을 통해 단기간에 기업 가치를 높여 효율성을 확보해 주가와 기업가치의 괴리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이번 이슈만 해도 외신에서는 불합리한 합병조건에 대해 엘리엇이 문제제기를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블룸버그와 로이터는 4일 “비겁한(unfair)방식으로 삼성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려 했던 이건희 회장의 3남매에 대해 폴 싱어 엘리엇이 선전포고를 선언했다”고 표현했다. 월스트리트저널도 “행동주의 투자자인 엘리엇이 삼성의 심장을 향한 전쟁을 시작했다”고 언급했다. 재벌 삼성의 3남매가 저렴해진 삼성물산의 주식을 사들여 손쉽게 지배력을 강화하려고 했다는 점을 주목했으며 엘리엇이 소액주주의 이익을 무시한 데 대한 불만을 대변했다는 점을 높이 샀다.
행동주의 투자자는 기업가치를 보고 투자한다는 점에서 다른 투자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주가와 기업가치의 괴리를 참지 못하고 스스로 모멘텀을 만들어 나간다는 점이 차별화된다. 구체적으로 그들은 기업을 M&A대상이 되게 하거나 자사주매입을 하거나 가치 있는 자산을 팔게 한다. 단순히 알리는 것만으로도 프리미엄이 얹어지므로 주가는 자연스럽게 오른다. 에이프릴 뉴욕대 경영대 교수는 "임원들은 이사회 요구에 직면할 때 60%이상이 요구사항을 받아들인다"며 "이후 주주의 압박이 받아들여지면 주가가 오를 확률은 80%이상 높아진다"고 말했다.
성과는 어떨까. 2000년 아이칸의 행동주의펀드에 투자했다면 연복리수익률로 21.5%를 기록했을 것이다. 같은기간 S&P500수익률은 3.8%에 불과하다. 2009년 4월 1일에 펀드에 가입했다면 복리로 33.8%까지 올라간다. 같은 기간 20.4%를 웃돈다. 그는 행동주의 투자가 기업의 가치를 증대시킨다고 본다. 실제 모토로라 솔루션과 모토롤라 모빌리티가 분사한 후 모빌리티가 구글에 매각되는 과정에서 아이칸은 행동주의 투자자로서 개입한 덕분에 모토로라는 파산을 면했다. 워런버핏보다 젊잔거나 우아하진 않지만 사회에 기여하는 측면은 분명히 있다고 볼 수 있다는 평가다. 행동주의투자자들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행동주의 투자 헤지펀드 급성장
새로운 주주행동주의 전략이 호응을 얻으면서 이를 표방한 헤지펀드 시장도 급성장했다. 2014년 엘리엇펀드와 같은 행동주의 투자건수는 2009년 대비 4배 이상 증가했다. 행동주의 헤지펀드 운용자산은 지난 2009년 362억달러에서 2014년 3분기 1000억달러를 넘어섰다. 2013년 신규 설정된 헤지펀드 수는 28개로 전년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저금리와 새로운 투자기회의 요구, 대상기업의 특수성, 배당정책의 요구가 필요한 여건이 만들어 진 것이다.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1년 누적 수익률은 지난해 4월 11.82%, 5년 누적 수익률은 12.73%로 전체 헤지펀드 수익률인 7.88%, 11.74%를 웃돌고 있다.
행동에 나설 순 없어도 이익 공유할 수 있다
일반 투자자들이 행동주의 투자를 실행에 옮기긴 쉽지 않다. 주식 총수가 1000만주인 회사의 주식 100주를 사놓고 회사에 감나라 배나라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매입한 주식을 따라 사는 것은 가능하다. 과거 사례를 보면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기업을 사놓고 여러 가지 변화를 요구하면 주가는 오르게 된다.
통계에 따르면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첫 신고를 한 시점을 기준으로 23일간 전후에 미국 러셀3000지수보다 6.3% 높은 수익률을 올렸다. 또 증권거래위원회에 첫 신고를 한 이후 1년 후 수익률도 러셀3000지수를 8% 웃돌았으며 2년 후 누적수익률은 10.7%, 3년 뒤에는 17.7% 차이가 났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요구를 거부한 기업이 주주총회에서 지분대결을 벌이면 이길 확률은 20%에 불과하다“며 ”기업 우호적인 기관투자가도 표 대결에서는 헤지펀드에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명정선 기자 cecilia102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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