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009540)이 구조조정 전면 중단을 선언했다. 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의 적자를 기록하고 고강도 인적 쇄신을 단행한 지 8개월 만이다. 그동안 현대중공업은 과장급 이상 사무직 희망퇴직에 이어 장기근속 여직원까지 전방위적 구조조정을 실시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노사 갈등은 더욱 심화됐고 노조 측은 사장 퇴진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은 1일 직원들에게 보내는 담화문을 통해 “회사의 체질을 바꾸려는 노력이 마무리 단계에 와있다”며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의 역량을 모으기 위해 인위적인 인력 구조조정의 전면 중단을 선언한다”고 말했다.
앞서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9월 권오갑 현대오일뱅크 사장을 현대중공업의 사장으로 임명하면서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했다. 이후 권 사장은 지난해 말 임원 30% 감축을 시작으로 올 초 과장급 이상 사무직 1500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추진했다.
칼바람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지난 3월에는 15년 이상 장기근속 여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대상을 한정하지 않는 전방위 구조조정이 계속되면서 내부에서는 다음 차례는 차·부장급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내부 혼란은 극심해졌고, 임단협 협상이 지연되면서 19년 연속 무분규 기록도 깨졌다.
권 사장은 이날 사업본부 대표에게 대부분의 권한을 이양해 실질적인 대표 책임경영체제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구매, 생산, 영업, 인사 등 대부분의 권한을 사업대표 또는 본부장에게 넘겨 사업대표가 사업본부 운영의 전권을 갖고 운영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권 사장은 다양한 직급의 대표들로 미래기획위원회를 만들어 회사의 목표와 비전을 함께 공유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감사 기능도 직원들의 뒷조사가 아닌 각 사업본부별로 임직원들의 고충을 듣고, 이를 해결하는 조직으로 변화시켜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선박 2000척 인도를 기념해 경영상황이 개선되면 지급하기로 했던 100만원의 특별 격려금을 조건없이 지급하겠다고 말했다.
사측의 구조조정 중단 방침에 노조는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노조 관계자는 “계속된 구조조정으로 현장 근로자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업무 효율성이 낮아지고 있는 만큼 사측이 현장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구조조정 중단 결정을 내린 것 같다”며 “구조조정 중단을 위해 권 사장의 퇴진운동을 진행했던 만큼 퇴진운동은 이제 중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업계에서는 현대중공업의 이번 구조조정 중단 방침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을 내놓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진행됐던 구조조정 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됨에 따라 비상조치를 해제했다는 시각이 우세한 가운데 일각에서는 올해 임금협상을 앞두고 노조와의 스킨십을 강화하기 위해 권 사장이 결단을 내렸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대중공업은 생산직 노조와 일반직 노조의 교섭 분리 문제를 놓고 노사 간 마찰이 생기면서 아직 노사 상견례 날짜도 잡지 못했다. 사측은 지난 20일 부산지방노동위원회에 생산직 노조와 일반직 노조의 교섭 분리를 신청했고, 노조 측은 지금까지 세 차례나 독자적으로 교섭장에 나서는 등 사측을 압박하고 있다.
이 가운데 지난달 30일에는 현대중공업을 비롯해 국내 9개 조선 노조가 연대해 ‘조선업종 노조연대’를 공식 출범하고 임금협상 등에 대해 연대 대응키로 결의했다. 지난해 노조 파업으로 상당 부분 손실을 입은 현대중공업으로서는 조속히 임금협상 타결을 완료하고 흑자전환에 모든 역량을 쏟아 부어야 할 상황이다. 때문에 본격적인 임금협상에 앞서 노조를 달래고 협상을 원만하게 진행하기 위해 구조조정 중단이라는 카드를 빼들었다는 설명이다.
◇지난 2월17일 노사 교섭 대표들이 2014년 입단협 조인식을 뒤늦게 체결한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현대중공업)
최승근 기자 painap@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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