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개성공단 방문이 무산됐다. 반 총장은 20일 서울디지털포럼 연설에서 “중대 발표를 하려 한다”며 “오늘 새벽 북측이 갑작스럽게 외교 경로를 통해 저의 개성공단 방북 허가 결정을 철회한다고 알려왔다”고 밝혔다. 반 총장은 허가 철회에 관한 북측의 설명은 없었다며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덧붙였다.
그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이번주 목요일(21일) 개성공단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북한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로 반 총장의 발표는 하루 만에 없던 일이 돼버렸다.
임병철 통일부 대변인은 북한에 유감을 표명하며 “정부는 북한이 고립의 길로 나아가지 말고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내민 대화와 협력의 손을 잡고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의 길에 나설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고 말했다.
반 총장 역시 유감을 표했지만 “국제사회와 함께 협력해 한반도 평화 정착 노력을 계속 촉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이 국제기구 수장에게 결례를 범하면서까지 발신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우선 북한이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사출시험과 서해 포사격 훈련 등을 통해 긴장을 끌어 올린 상황에서 유엔 사무총장의 방문을 받을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분석이 있다. 당분간 긴장 국면을 가져감으로써 탄도미사일 시험 등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 분위기에 대응하겠다는 의도를 극적으로 드러냈다는 것이다.
북한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의 이날 성명은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대변인은 SLBM 시험은 자신들의 합법적인 주권 행사라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이라는 시각을 반박했다.
반 총장은 전날 “미사일 발사와 핵 개발, 이런 것들이 모두 유엔 안보리 결의에 위배되는 사항이라는 것을 북한 정부에 말씀드린다”고 발언한 바 있어, 그에 대한 반발로도 해석된다.
국방위 정책국 대변인은 특히 유엔 안보리에 대해 “미국의 독단과 전횡에 따라 움직이는 기구, 공정성과 형평성을 줴버리고(내버리고) 주권 존중의 원칙, 내정 불간섭의 원칙을 스스로 포기한 기구”라며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국정원이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숙청을 얘기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의 공포정치’라는 표현을 잇달아 쓰는 데 대한 불만의 표현이란 해석도 있다. 반 총장은 유엔의 대표이지만, 한국 국적자로서 박 대통령의 대북 메시지를 가져갈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남측의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반 총장이 개성공단 방문을 통해 정치적 입지를 다지려 하는 것 아니냐는 북한의 의구심이 반영된 결정이란 해석도 있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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