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제한구역. 흔히 그린벨트라고 부릅니다. 도시 주변의 녹지공간을 보존하고, 난개발을 억제하기 위해 지난 1971년 도입됐습니다. 당시 그린벨트 도입을 결정한 사람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입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이 지도에 연필로 주욱하고 그은 것이 그린벨트가 됐다는 풍문이 돌기도 했고, 녹지보존과 안보사이에서 수차례의 검토 끝에 치밀히 계획됐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쨌든 구역지정 당시 이미 개발이 끝난 시가지나 집단취락지 등이 포함돼 현재까지도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후 수년간 정치꾼들은 선거마다 공약으로 이용할 정도로 다양한 사회의견을 반영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죠.
사유재산을 과도하게 침해했다는 문제점이 지적됐지만 이후 서울 등 도심은 과도하게 팽창하며, 그린벨트는 녹지 보존을 위한 최후의 보루로 재평가 받았습니다. 누군가는 경부고속도로와 더불어 박 전 대통령의 최대 걸작이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그렇게 44년이 지나 2015년 5월. 현 대통령은 그린벨트 운영방향을 전면 수정합니다. 현 대통령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수하의 유일호 국토부 장관은 "반세기 가까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제도를 재평가하고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다"며 정책전환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규제 일변도였던 제도를 개발 중심으로 재설정한 것입니다. 핵심은 시·도지사에게 중소 그린벨트 해제권한을 이양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선거철 시·도지사들의 선심성 해제 남발이 우려되고 있는데요. 아버지 시대 그린벨트는 과도한 재산권 침해가 문제가 됐지만, 딸 시대에는 난개발이 우려되고 있습니다. 극명히 상반되는 모습이죠.
국토부는 난개발 안정장치를 해놨다고 말하지만, 환경론자들은 서울을 지켜준 초록띠가 사라지고, 산 정상을 제외하고는 모든 녹지가 사라질 것이라고 걱정합니다.
녹지보존과 균형잡힌 개발, 두 마리 토끼잡기를 잡겠다고 나선 박근혜 대통령. 시대의 변화에 따라 낡은 정책의 손질이 필요했다는 딸의 그린벨트는 훗날 어떤 평가를 받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반세기 전 아버지의 정책을 시대변화를 녹여냈을지, 아버지가 지켜낸 도심 녹지의 파괴범으로 남을지.
한승수 기자 hans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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