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의 이야기들은 A가 모 대기업의 서비스직 아르바이트를 하며 실제로 보거나 겪은 일들을 재구성한 것이다.
#1. 보조 매점에서, 손님과 A
오늘 근무는 보조 매점에서의 아이스크림 판매 담당인 A. 저 멀리서 입장하는 손님이 걸어오고 있다. 그런데 손님이 10m 전방에서부터 영수증을 들이밀며 오고 있었다. 손님이 눈앞에 왔을 무렵 A가 물었다.
“저쪽(주 매점)에서 구매하신 거세요?”
카드 결제가 안 되는 보조 매점의 특성상 주 매점에서 카드로 결제하고 영수증을 보여주며 보조 매점에서 상품을 가져가는 고객들이 꽤 있었기 때문에, A는 확인차 정중히 물었다. 그런데,
손님: “아니 그럼 저기서 사지, 여기서 사요?!”
버럭 짜증이 돌아왔다. 그 손님은 물건을 받고서는 들릴 듯 말 듯, “흥, 여기서도 팔긴 하네.”라는 혼잣말을 하며 지나갔다.
A는 어리둥절했다. 그 뒤로도 A는 자신의 과실인데 되레 반말로 따지는 손님 등 비슷한 상황을 많이 겪었지만, 딱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손님은 왕이니까.
#2. 주 매점에서, 다른 아르바이트생 ㄱ과 A
보조 매점과 달리 할 일이 많은 주 매점은, 그만큼 배울 일도 많았다. 처음에는 누구나 다소 어리바리하게 정신없이 일을 하곤 했다. 그러던 중 다른 아르바이트생 ㄱ이 다가와 세 가지 일을 시켰다. ㄱ은 A보다 훨씬 먼저 이곳에서 일을 해왔던 아르바이트생이었다. A는 주문을 받는 사이사이에 그 일을 잊지 않고 하나씩 했다. A는 그 중 두 가지 일을 먼저 끝내 놓고, 도중에 손님이 와 주문을 먼저 받았다. 주문을 마치고 잠깐 여유로운 순간에, ㄱ이 다가왔다.
“아직 이거 다 안 했어요?”
이미 끝낸 일이었기에, A는 했다고 대답했다. ㄱ이 말을 이어갔다.
“아.. 근데 이건 안 했네?”
이번엔 A가 아직 끝내지 못한 그 일이었다. A는 차분히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런데 설명하고 난 후, 어딘가 께름칙했다. ㄱ은 직원도 아니었고, 아르바이트생 중에서도 우리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윗선도 아니었다. 그저 경력이 좀 더 되는, 원래 있던 알바생일 뿐이었다. 일을 시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마치 군대에서 선임이 후임 ‘갈구듯’ 빈정대는 말투와 꼬투리 잡기가 기분 나빴다.
비단 ㄱ뿐이 아니었다. 그날 근무가 끝난 후, A의 동기들 사이에서 우연히 ㄱ을 비롯한 몇몇 기존 알바생의 텃세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그 대화는 꽤 길어졌다.
#3. 조회실에서, 직원 ㄴ과 아르바이트생들
평소 알바생들이 근무에 투입되기 전, 조회실에서 복장 체크 및 간단한 전달사항에 대한 알림 등을 받는다. A는 여느 날처럼 조회실에 들어갔다. 평소와 다르게 직원들이 모여 있었다. 다른 알바생이 A에게 오늘은 조회실 밖에서 조회를 한다고 알려주었다. 간단하게 조회가 끝난 후, A를 비롯한 몇 알바생들은 조회실 안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가지러 들어갔다.
그때, 평소에 악명 높기로 유명한 직원 ㄴ이 그 자리에 있었다. ㄴ은 크고 부리부리하면서 화를 낼 때면 섬뜩해 보이기도 하는 눈을 가졌다. 또, 작은 일에도 불같이 화를 내기로 유명했다. 역시나 그는 눈을 부릅뜨며 다그치듯 말했다.
“조회 끝난 거 아니에요? 근무 투입 안 하고 뭐 하는 거죠?”
일순간 당황한 알바생들은 우왕좌왕하며 급하게 조회실을 빠져나갔다. 반면 A는 아랑곳 않고 필요한 물건을 찾은 후 밖으로 나왔다. 조회가 끝났다 해도 정규 근무 투입시간까지 여유가 있었을뿐더러, A와 동료들이 조회실로 들어간 지 겨우 30초 내지 1분 만에 나온 타박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A에겐, 그의 지위를 이용한 되도 않는 꼬투리 잡기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4. 손님들이 빠져나간 후, 직원 ㄴ과 청소 용역 ㄷ
손님들이 빠져나갈 때, 청소 용역 ㄷ씨는 어김없이 쓰레기를 정리하러 해당 층으로 올라왔다. A가 안에서 나온 쓰레기를 주워 담아 ㄷ씨에게 전달하는 식이었다. 그곳의 특성상 ‘쓰레기’라 해도 아주 더러운 것은 아니었다. 그중엔 먹을 것도 있었는데, 손님들이 음식을 안 먹은 채로 놔두고 간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루는 ㄷ씨가 손님이 없는 것을 보고 남은 음식을 몰래 한 입을 먹은 것이 일의 발단이 됐다. 하필이면, ㄴ직원에게 발각되었던 것이다.
“제가 이거 먹지 말라고 했죠?”
ㄴ은 쏘아붙였다. 상황 자체로만 보면, ㄷ은 잘못했고 ㄴ은 맞는 말을 했다. 그런데 주변에 ㄷ씨가 먹는 것을 지켜보던 손님이 없었던 상황치고는, 그 말투와 표정이 굉장히 모욕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특히 그 눈빛은 단순히 실수한 아래 직원을 바라보는 눈빛이 아니었다. A는 그 멸시에 가득 찬 눈빛을 잊지 못 한다.
누가 보아도 ㄷ씨는 ㄴ직원의 어머니뻘이었기에 A는 마음이 불편했지만, 어쨌든 ㄷ씨의 잘못이 있었기도 했고, A는 그저 옆에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A는 결국 그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다. 밝혀두건대 그가 이 일을 그만둔 이유는 위의 일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들이 그에겐 꽤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은 분명해 보였다.
남자인 A는 군 입대 후 그곳의 수직적 위계질서에도 곧잘 적응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체제 안에서 ‘아 이것이 군대구나. 이래서 군대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역 후 그가 느낀 세상은, 군대와 다를 바가 없었다.
어떻게든 자신이 남보다 위에 서려는 사람들이 즐비했다. 거기엔 직급 혹은 지휘체계에 따른 불가피한 지시와 명령을 넘어, 인격적 하대와 멸시가 뒤따랐다. 물론 아닌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단순히 A가 만났던 개인들의 인성 문제로 치부하기엔, ‘그런’ 사람들과 분위기 역시 분명 존재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위의 에피소드에서 A를 제외한 모든 등장인물은 모두 여성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그들이 군대라는 체제의 경험에 익숙해진 나머지 사회에 나와서도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니었다. 반대로, 사회 자체가 ‘군대식’ 권위주의와 계급 논리에 매몰되어 그 구성원들에게서 존중과 배려를 기대할 수 없게 됐다는 쪽이 옳다.
A는 그 속에서 인간과 인간의 조우가 아닌, 내가 조금 더 높은 지위이니 혹은 내가 손님이니, ‘너에게 막 대할 권리가 있다’는 무서운 사고방식을 보았다. 여기엔 ‘너에게 돈(혹은 임금)을 지불했으니, 너의 권리와 감정까지 모두 내 마음대로 한다’는 천박한 자본주의 논리가 숨어있었다.
심지어 그것을 넘어, 공식적으로 전혀 금전관계 혹은 상하관계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같은 아르바이트생끼리도 어떻게든 갑과 을을 형성하려고 아등바등했다. 이런 현상의 근원을 나름대로 추적해보면서 군부독재와 군 문화가 남긴 유산이 떠오르기도 했고, 얼마 전 신문에서 보았던 ‘통치를 위한 수직적 위계질서 주입’이라는 일제 잔재가 떠오르기도 했다.
앞서 말했던 천민자본주의의 폐해도 명백해 보인다. 어느 하나만이 원인이 아니겠다. 반해, 한편으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지향점이 유일하고도 명확하다는 것 또한 느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돈과 확고한 위계질서가 아닌, 순수하게 타인을 인간으로서 대우하는 ‘인간 존중의 감수성’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에선 한강에 버린 독극물, 포름알데히드가 수십 년 후 괴물로 돌아와 사람들을 위협한다. 괴물의 등장은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그것에 붙들어 놓았지만, 괴물이 사라진 뒤 우리가 되돌아 봐야 할 것은 바로 그 포름알데히드다. A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현아가 다시 스쳤다. ‘괴물’이 한바탕 시끄럽게 지나갔었다. A가 만났던 사람들이 재벌이 되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 이내 또 다른 괴물이 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이제 부(富)와 지위만 있으면 뚝딱 괴물을 만들어내는 ‘천박한’ 한강물을 볼 차례다. 그 오염된 물을 단단히 보지 않으면, 여전히 그곳에선 또 다른 새끼 괴물들이 자라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료=바람아시아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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