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사진제공=현대차그룹)
[뉴스토마토 원나래·이충희기자] "낙찰가 10조5500억원, 3.3㎡(1평당) 기준 4억4000만원. 전 국민(4903만명)이 21만4000원씩 나눠가질 수 있는 초대형 금액."
지난 9월
현대차(005380)그룹의 한전 부지 낙찰금액을 놓고 각종 뒷이야기들이 쏟아졌다. 현대차가 한전 부지를 얻기 위해 써낸 낙찰가는 감정가의 3배인 10조5500억원. 이 천문학적인 금액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통합사옥 건립을 향한 강력한 의지가 투영되면서 가능했다. 이른바 정 회장의 통 큰 베팅이다.
하지만 현대차가 왜 10조원이 넘는 무리한 금액을 써냈는지에 대한 궁금증과 의구심은 여전하다. 자금 조달과 함께 향후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 축소 등 우려의 목소리도 끊이질 않고 있다. 현대건설 인수전의 후유증 속에 정 회장이 직접 나서면서 총수의 통 큰 결단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같은 일각의 우려에도 정 회장은 "그룹의 100년 앞을 내다보고 결정한 투자"라며 베팅 결과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쇳물부터 완성차까지' 일관체계에 대한 간절함만큼 통합사옥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는 설명이다. 과거 삼성을 능가하는 재계 1위로서의 명예회복도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공교롭게도 한전 부지 인수전의 경쟁자는 삼성이었다.
◇정몽구 회장의 마지막 숙원..한전부지 낙찰
현대·
기아차(000270)를 전세계 톱 5 자동차 기업으로 키워낸 정몽구 회장에게 마지막 남은 숙원은 그룹 본사와 자동차 테마파크를 결합한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건립이었다.
양재동 사옥은 그룹 전체를 포용하기에 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 여기에다 폭스바겐 등 선진 업체들의 자동차 테마파크를 결합한 대규모 본사 시설을 벤치마킹해 진정한 글로벌 리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야심도 작용했다.
뚝섬의 옛 삼표 레미콘 부지를 매입한 현대차그룹은 지난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GBC 건립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 부지에 약 2조원을 투자, 110층 규모의 랜드마크 빌딩을 짓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국내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면서 투자가 위축됐고, 서울시의 규제도 번번이 발목을 잡아 사업 추진은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에는 서울시가 도심과 부도심에만 50층 이상의 빌딩을 지을 수 있도록 제한하는 내용의 규제안을 확정하면서 사실상 뚝섬 GBC 건설은 백지화된 상황이었다.
◇현대차그룹이 인수한 한전 부지 전경.ⓒNews1
그러자 정 회장은 올해 11월 전남 나주로 본사 이전이 확정된 한국전력의 삼성동 부지로 눈을 돌렸다.
해당 부지는 축구장 12개를 합쳐놓은 크기로(7만9342㎡), 서울 강남권 마지막 금싸리기 땅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기존 뚝섬 부지(3만2548㎡)보다 두 배 이상 넓고, 전시·컨벤션 산업이 몰려있는 서울 삼성역 주변에 위치한 것도 큰 장점이었다.
이 한전 부지를 놓칠 경우 더 이상 서울 시내에서 이만한 땅을 찾기 어렵다는 정 회장의 절박함은 입찰 전부터 반영됐다.
유일한 경쟁자였던 삼성이 부지 인수전을 위한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을 동안, 현대차는 대내외에 부지 인수의 당위성을 적극 설명하고 나섰다. 언론을 통해 폭스바겐의 아우토슈타트를 소개하고 GBC 건립 이후의 경제적 효과도 알렸다.
부지 입찰 공고가 발표된 지난 8월29일에는 "인수를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며 의지를 다졌다. 그러나 사내 유보금이 197조원에 달하는 삼성그룹에 밀릴 수 있다는 불안감은 여전했다. 특히 삼성이 한전 부지 인수와 관련해 아무런 발표도, 언론 플레이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입찰전에 뛰어든 터라 경계심은 더욱 커졌다.
만 76세인 정 회장에게는 이번에도 실패할 경우 꿈을 이루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대에 그룹의 미래 주춧돌을 모두 쌓아올려야 한다는 과제도 안겼다. 이는 결과적으로 10조5500억원이라는 감정가의 세 배가 넘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써내게 한 직접적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삼성이 제시한 4조7000억원의 금액과 비교해 봐도 두 배가 넘는 수준이었다. 삼성이 제시한 인수가는 <뉴스토마토> 취재 결과 최종 확인됐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현대차의 엄청난 베팅에 시장은 충격에 휩싸였다.
◇한전부지 낙찰 후폭풍..100년 앞을 내다본 '통큰 베팅'?
현대차는 엄청난 베팅으로 서울 강남권의 마지막 남은 금싸라기 땅이라는 한전 부지를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한전 부지 낙찰 후폭풍은 거셌다. 정 회장의 100년 앞을 내다본 '통큰 베팅'은 연이은 악재로 되돌아 왔다. 낙찰 이후 경기 불황과 환율 불안에 따른 실적 부진과 주가하락 등이 이어지면서 현대차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현대·기아차 모두 지난 3분기 어닝쇼크를 기록하면서 한전 부지의 과도한 낙찰가가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악화된 경영환경 속에서 땅 매입에만 무려 10조5500억원이라는 베팅은 '도박'에 가까웠다는 비난마저 제기됐다. 일부 시민단체는 배임 혐의를 적용하며 정 회장을 압박했다.
지난달 초에는 2011년 3월부터 줄곧 유지해 왔던 시가총액 2위 자리마저 SK하이닉스에 내주면서 재계 서열 2위의 자존심마저 구겼다.
글로벌 5위 업체라는 위상에 걸맞은 사옥을 짓겠다는 정 회장의 강력한 의지는 과열경쟁으로 인한 무리한 금액 소진이라는 비난까지 샀다. 그룹 미래를 위한 통 큰 결단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현실적이지 못한 선택이었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전 부지 매입에 대한 현대차그룹의 입장은 단호하다.
낙찰가격이 시장의 예상보다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미래가치를 따져보고 결정한 금액이라는 입장이다. 미래를 펼쳐보기도 전에 섣부른 예단은 삼가해 달라는 주문도 이어졌다. 낙찰금액 역시 계열사별로 분납·충당할 수 있기 때문에 자금 조달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현대차 관계자는 고가 부지 매입에 대해 "10~20년 후를 감안할 때 미래가치는 충분하다"며 "한전 부지 인수는 단순한 중단기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글로벌 경영 차원에서 30여개 그룹사가 입주해 영구적으로 사용할 통합사옥 건립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정 회장의 판단이 100년 앞을 내다본 '통큰 결정'이었는지, 아니면 과욕이 부른 '승자의 저주'로 이어질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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