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혜진기자] 올해를 '증권업 재도약의 원년'이라 한다. 증권사 대표와 고위급 임원, 시장 전문가들까지 한 목소리로 하는 말이다.
얼핏 보면 맞는 말 같다. 지난 몇 년간 증권사 실적은 업황 침체와 함께 바닥을 기었지만, 올 들어 눈에 띄는 성과를 냈다. 전체 증권사 순이익은 작년 말 적자를 딛고 1분기 3551억원, 3분기 8145억원 흑자를 달성했다.
하지만 어닝서프라이즈가 시장을 달구는 사이 4000명에 달하는 금융투자업계 직원들은 직장을 잃었다. 급여 삭감과 비정규직 전환도 줄을 잇고 있다. 이들의 희생은 '비용절감'과 '실적 턴어라운드'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포장됐다.
내실없는 금융투자업계의 실적 뒤로 후유증은 곳곳에서 터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한 곳도 없었던 증권사 노동조합이 올해 들어 4곳이나 만들어진 게 단적인 예다.
지난 1월 말 증권가 '무노조 경영'의 대명사였던 대신증권이 창립 53년 만에 노조를 세운 것이 신호탄이 됐다. 이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업계에는 새로운 노조가 만들어졌다. 4월 중순 HMC투자증권, 7월 초 리딩투자증권, 12월 초 LIG투자증권이 줄이어 노조를 결성했다.
지금도 여의도 거리에는 지점 통폐합과 인력 감축을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여기저기서 휘날린다. 지방에서 4~5시간 걸리는 본사까지 올라와 노조 집회에 참여하는 지점 직원들도 많다.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도 몇 시간째 자리를 지킨다. 월급쟁이에게 먹고 사는 것은 그만큼 절박한 문제다.
그런데 증권사들은 이 모든 상황에 무책임한 듯 하다. 무리하게 지점과 인력을 늘리며 '공격 경영'을 선전했던 때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시퍼런 구조조정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
고통 분담은 온전히 직원들 만의 몫이다. 경영 실패의 책임을 지겠다는 임원이나 대표는 찾아보기 어렵다. 영업점 직원들의 고통이 더욱 크다. 성과가 낮은 직원들은 외부방문판매조직(ODS)으로 보내져 희망 퇴직을 강요받고 있다.
'재도약의 원년'을 외치기에 앞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되돌아 봤으면 한다. 혹한기를 맞은 증권가의 찬바람이 누군가에겐 생살을 찢는 고통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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