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광범기자] 검찰이 1일 이른바 '정윤회 문건' 보도에 대한 수사에 본격 착수했다. 검찰은 이번 사건을 청와대의 명예훼손 고소건과 문건 유출 수사로 분리해 두 개의 수사팀에 배당했다.
청와대 비서진들의 명예훼손 고소건은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정수봉)가, 문건 유출 수사는 특수2부(부장 임관혁)이 맡는다. 이는 청와대가 '정윤회 문건'과 관련해 <세계일보> 기자들을 상대로 명예훼손 고소를 하며, 문건 유출에 대해선 별도 수사 의뢰를 한 것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의혹을 증폭시킨 '정윤회 문건' 수사는 정치적으로 매우 파급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야권이 "국정 농단 세력"이라며 파상공세를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이 검찰 수사에 눈을 집중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번 수사의 쟁점은 크게 세가지다.
◇문건 진위 여부 파악될까?
'문고리 비서관 3인방' 등 청와대 직원 8명은 세계일보 기자들을 '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형법 309조 '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은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신문, 잡지 또는 라디오 기타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이다. 1항은 '사실'을 적시할 경우, 2항은 '허위 사실'을 적시할 경우로 나누고 있다.
그러나 형법 310조에는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의 경우에 대해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는 위법성 조각 사유를 규정하고 있다. 언론보도가 사실일 경우엔 이를 처벌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고소된 기자들에 의한 명예훼손 여부를 수사하기 위해선 해당 보도가 사실인지 여부를 검찰이 파악해야 한다. 결국 검찰로서도 '정윤회 문건'의 내용에 대한 진위여부에 대한 수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문건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선 이 사건의 고소인인 청와대 비서진 8명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하다. 핵심 인물인 정윤회씨 역시 참고인 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정씨와 해당 문건에 거론된 청와대 관계자들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문건 내용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사진=청와대)
여기에 박 모 경정 역시 문건 내용에 대한 수사에는 협조하지 않을 것으로 보여 수사에 난항이 예상된다. 박 경정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문건 유출에 대한 검찰 수사에는 적극 협조하겠지만, 문건 자체에 대해선 묵비권을 행사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상황이다.
검찰이 '정윤회 문건'의 내용에 대해 어떤 식의 결론을 내리든 정치권엔 거센 후폭풍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해당 내용을 '사실'로 결론지을 경우, 박근혜 대통령 '비선 의혹'은 사실로 굳어지게 돼, 정권 차원에서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허위'로 결론지을 경우, '정권 봐주기 수사' 논란이 재연되며 야권을 중심으로 '특검'이나 '국정조사' 요구가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 비선의혹을 사실무근으로 규정한 상황에서 대통령의 발언이 자칫 수사의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은 1일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이번 사건을 "청와대 문건유출"로 규정하고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라고 말했다.
비선 의혹과 관련해선 "근거없는 일"이라고 일축하며 "악의적인 중상이 있었다면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검찰도 박 대통령의 입장이 나온 이후, 수사팀 구성을 발표하며 '문건 유출'에 더 무게를 두는 눈치다.
검찰은 "국정 운영의 핵심기관인 청와대 내부의 문서가 무단으로 유출된 것은 중대한 범죄로 인식하고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문서유출 부분과 관련된 사항은 수사의 특수성을 고려했다"며 특수2부 배당 이유를 설명했다.
◇'靑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측근(정윤회) 동향 보고 문건(사진제공=세계일보)
◇작성경위 및 유출경로 수사는 어떻게?
작성경위 수사 여부도 관심거리다. 경위에 따라 정씨와 박지만 EG회장(박 대통령 동생)의 '권력암투설'에 다시 불이 붙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서는 현재 조응천 당시 공직기강비서관과 박모 행정관이 어떤 이유에서 문건을 작성했는지를 두고 현재 여러 설이 제기되고 있다.
가장 힘이 실리는 설은 '박지만 회장 사람인 조 전 비서관 측이 정씨의 전횡을 막으려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내용이다. <시사저널>이 최근 보도를 통해 밝힌 경정과의 인터뷰 내용은 이 같은 내용을 뒷받침하고 있다.
박 경정은 인터뷰에서 "정윤회가 이재만과 안봉근을 통해 그림자 권력 행세를 한다고 들었다"·"문고리 권력 3인방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청와대에) 없다"·"민정(수석실) 내부에서도 문고리를 견제할 수 있는 사람은 조 비서관과 나밖에 없다"·"박지만 회장이 전면에 나서서 문고리 권력들을 견제해야만 한다"고 말했다고 <시사저널>은 전했다.
그러나 박 경정은 이를 부인했다. 그는 유출 경로에 대해선 언론을 통해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있지만, 문건과 관련해선 입을 닫고 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청와대는 검찰에 명예훼손 고소와 함께, '문건 유출 경로'에 대한 수사도 의뢰했다.
청와대가 문건 유출 당사자로 의심하고 있는 사람은, 문건 작성자이기도 한 박 경정이다. 그러나 박 경정은 문건 유출 의혹에 대해 강하게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청와대도 내가 유출하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누가 무슨 의도를 갖고 문건을 유출했는지에 따라서 권력암투설의 또 다른 뇌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등 여권이 이번 사건을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으로 규정한 상황에서 검찰 수사가 이 부분에 집중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는 상황이다.
◇靑문건 언론보도도 수사 대상?
이번 명예훼손 고소 건의 피고소인은 <세계일보> 발행인 등 기자 6명이다. 이들에 대해 검찰이 어떤 식으로 조사를 진행하게 될지도 관심거리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이미 해당 문건에 대해 청와대에서 생산된 문건임을 인정했다. 해당 언론보도에 언급된 문건이 이미 청와대 공식 문서임을 인정한 상황에서 그 문건의 내용을 보도한 것이 수사 대상이 되는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전국적으로 겨울비가 내린 지난 28일 청와대가 짙은 안개에 휩싸여 있다.ⓒNews1
해당 문건의 보도 내용이 사실일 경우 형법 310조 '위법성 조각사유'에 따라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법조계의 판단이다.
내용이 허위인 경우에는 어떨까. 대법원은 "사실에 대한 증명이 없더라도 행위자가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위법성이 없다고 봐야 한다"는 판례를 일관되게 유지해오고 있다.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에 대한 판단은 적시된 내용, 자료 등 근거의 확실성 및 신빙성, 사실 확인의 용이성, 진위여부 위한 충분한 조사 여부 등이 고려된다.
결과적으로 문건 내용을 검찰이 허위로 판단한다고 해도 기자들에 대한 처벌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PD수첩 광우병 보도의 경우처럼 무리한 수사를 이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의 '강력 대응' 의지가 확인된 상황에서 '언론탄압'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세계일보>에 대한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할 가능성도 적지 않아 보인다.
◇野"본질은 정윤회의 국정 농단..檢수사 방향 우려"
야권은 이번 사건을 '국정농단 세력의 실체가 드러난 사건'으로 규정짓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당내에 '비선실세 국정농단 진상조사단(단장 박범계 의원)'까지 꾸렸다.
우윤근 원내대표는 1일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이번 사건을 '정윤회 게이트'로 규정하고 "본질은 국정농단이지 문서유출 아니다"고 여권의 시각을 반박했다. 우 원내대표는 "정윤회 게이트의 진상을 국민 앞에 밝히고 비선권력연루자들을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박 대통령에게 촉구했다.
박범계 진상조사단장도 이날 비선실세국정농단진상조사단 회의에서 검찰 수사와 관련해 '문건의 진위여부' 보다 '문건 유출'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박 단장은 그러면서 "문건의 진위에 대한 진상규명이 먼저다. 그 다음이 유출수사가 돼야 한다"며 "최소한 투트랙 동시 진행이 맞다"고 강조했다.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문건 유출과 관련해 "대통령직무수행관련 문서라면 대통령기록물"이라며 "중대범죄인만큼 비선실세국정농단 상설특검1호와 국정조사를 단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