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한국의 인터넷기업들이여, 저항하라!
2014-10-15 14:57:57 2014-10-15 14:57:57
최근 꽤 관심이 가는 소송이 미국에서 시작됐다.
 
트위터가 미국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인데 FBI와 법무부가 가입자에 대한 정보제공 요구를 하면 그런 요구가 있었다는 사실과 구체적인 요구내용이 무엇인지 공표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게 골자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 글로벌 인터넷기업들은 '투명성보고서'를 통해 정부가 요청한 자료요구 건수를 이미 공개하고 있다. 특히 구글은 정보제공 요청 건수를 각 나라별로도 공지한다.
 
이 때문에 구글의 투명성 보고서는 어느 나라가 프라이버시 보호에 소극적인지 알아볼 수 있는 지표로 작용하기도 한다.
 
글로벌 인터넷기업들이 투명성 보고서를 매년 내는 이유는 검열당국도 부담을 가지라는 의미다.
 
막무가내로 자료를 요청하면 결국 수치가 다 공개되니 좀 신중해지라는 뜻이 담겨 있다.
 
트위터의 소송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수치 뿐만 아니라 어느 기관이, 어떤 이들을 대상으로, 어떤 자료를, 어떤 식으로 요구했는지 등 자신들이 공개하고 싶은 자료는 다 공개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검열 기관에 대한 압박의 강도를 더 높이겠다는 의지다.
 
소송의 결과가 나오면 누구에게 유리한 결과인가에 상관없이 국가 공적행위와 개인의 프라이버시 충돌 문제에 대한 하나의 기준이 되어 다른 나라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게 분명하다.
 
인터넷 기업들이 나서서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한 '대정부 투쟁'을 벌이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개인정보 보호 의식 수준을 떠올려보면 암담하다.
 
전 국민의 주민번호가 한두번씩은 털린 사회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다.
 
개인정보와 프라이버시 보호의 문제에 둔감한 것은 정부나 민간이나 마찬가지다.
 
정부는 개인간 통화내용이나 카톡 메세지를 들여다보겠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금융권, 통신업계 등에서는 심심하면 한번씩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터진다.
 
당국의 개인정보 요구에 대해 거부감을 분명히 드러내는 다른 글로벌 기업들과 달리 우리 인터넷 기업들은 또 '달라면 어쩔수 없는 것 아니냐'는 인식을 갖고 있다.
 
'검찰에서 나오라고 하고 자료 내놓으라고 하는데 하라는 대로 해야지 어떡하느냐'는 검열논란 초기 다음카카오의 입장은, 카카오뿐만 아니라 개인 정보를 다루는 인터넷 업계의 공통적인 인식으로 봐야 한다.
 
◇13일 이석우 대표가 이번 카카오톡 논란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News1
 
'메신저 망명'이 걷잡을 수 없게 불붙은 것은 바로 그런 인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부터다. 민감한 정보를 다 갖고 있으면서 그걸 지킬 생각보다는 '달라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회사에 어떻게 계속 개인의 내밀한 속내를 저장시킬 수 있겠는가.
 
언제나 그랬듯 차근차근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가야할 이슈들이 매번 갈등부터 폭발하는 식이서 유감이지만, 오히려 이번 사안이 프라이버시 보호에 대한 합의된 기준을 탄탄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말이 나온 타이밍 탓에 공분을 사기는 했지만, 이재웅 다음 창업자가 했던 말은 이 문제에 참고가 될 구석이 있다. 그는 "국가권력에 저항하지 못하는 기업을 탓하기보다는, 권력을 남용하는 국가를 비판해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문제의 원인인 부당한 권력남용을 비판해야 한다는 얘긴 맞지만 기업이 저항하지 못한다는 말은 이해하기 힘들다.
 
세금을 내는 국가구성원은 누구나 발언권이 있다. 국민 개개인이 그런 권리가 있는 것처럼 기업 역시 납세자로서 또렷한 권리가 있다.
 
다음카카오는 또 이미 저항을 시작한 것과 마찬가지다.
 
'대화내용의 3일내 삭제'를 천명함으로서 영장집행을 사실상 의미없게 만든 것이나 이석우 대표가 결기어린 목소리로 "감청 영장에 응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도 그 일환이다.
 
글로벌 인터넷기업의 투명성보고서 발간이나 트위터의 미국 정부 상대 소송 역시 분명한 저항이다.
 
한편으론 대형사들을 중심으로 일치된 목소리를 내는 것도 중요해 보인다. 지금 뭇매를 맞는 건 카카오톡이지만 이 문제는 개인정보를 다루는 인터넷기업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인터넷기업협회가 "수사기관, 법원의 영장 발급 기준, 기초가 되는 법조항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 대안이 될 수 있는 의견을 제시할 것"이라고 밝힌 것은 긍정적이다.
 
미국에서 벌어지는 트위터 소송처럼 우리도 우리의 사례를 가지고 우리 법원의 판단을 받아볼 필요도 있다.
 
인터넷 속도나 고급 콘텐츠도 중요하지만 기술의 진보에 따른 사회 제도의 변화도 선도해야 진정한 인터넷 강대국이다.
  
이호석 IT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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