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동훈기자] 퇴직연금 수익률이 0%대다. 퇴직연금 적립금 90% 이상이 은행 예·적금 등 안전자산에 쏠려 있는 데다 저금리 기조가 이어진 탓이다. 근로자의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보장하는 퇴직연금의 목적까지 흔들릴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은행·증권·생명보험·손해보험사 등의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 수익률은 대부분 0%대에 머물렀다.
퇴직연금 적립금 부문 시장 점유율이 51.5%(1분기)로 1위인 은행들의 확정급여형(DB) 원리금보장상품의 수익률은 지난 2분기 0.73~0.81% 수준이다.
시장 점유율이 24.3%로 2위인 생보사들도 수익률이 1%를 넘지 못하고 있다. 점유율이 16.7%인 증권사들도 동양증권(1.05%)을 제외하곤 모두 0.7~0.9%대다. 점유율 7.1%인 손보사에서도 수익률이 1%를 넘는 곳이 없다.
◇저금리 시대..안전자산에 쏠린 탓
퇴직연금 업계 전문가들은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퇴직연금이 원리금보장상품 등 안전자산에 쏠려 있는 것이 낮은 수익률의 원인이라고 지목한다.
지난 3월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 85조2837억원 가운데 예금과 금리형보험, 국채 등 원리금보장상품에 전체의 92.6%의 자산이 쏠려 있다.
김성일 제로인 퇴직연금연구소장은 "2.5% 수준인 은행 금리에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퇴직연금 수익률은 사실상 마이너스"라며 "이는 퇴직연금 대부분이 원리금 보장형이기 때문인데, 최근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이끄는 새 경제팀이 들어서면서 금리 인하가 예상되므로 수익률이 더 내려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DB가 안정적이라는 생각은 오산"이라며 "DB 운용수익률이 낮아질 경우 기업은 부채 부담이 커져 적립 기준을 채우지 않을 수 있고, 기업이 도산하면 가입자는 퇴직연금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DC는 회사가 퇴직연금 전부를 가입자의 계좌에 매년 넣어야 하므로 기업이 파산하더라도 연금을 받을 수 있으나, 가입자가 운용 실적에 대한 책임을 진다.
반면, DB는 회사가 가입자 퇴직급여의 60% 이상을 사외에 적립하면 되고 운용수익률이 낮으면 회사가 이를 채워야 하므로 기업은 퇴직연금을 부담으로 인식한다. 특히 기업이 도산할 경우 가입자 수급권도 제한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2014년 3월 기준 퇴직연금 통계. (자료=고용노동부)
◇"투자원칙보고서 의무화가 대안"
퇴직연금업계에선 기업들이 '투자원칙보고서(IPS·Investment Policy Statement)'를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IPS는 퇴직연금 관련 투자 지침과 의사결정 과정, 목표 등을 정한 보고서다. 퇴직연금 투자전략의 다변화에 앞서 가입자의 안정적 노후자산 확보를 위해서는 구체적 지침이 우선 마련돼야 한다는 얘기다.
또한 기업이 IPS를 도입하면 의사결정자들이 투자손실에 따른 문책을 우려해 안전자산 위주로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손성동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연금연구실장(상무)은 "기업 내부 퇴직연금 담당자는 실적배당형으로 운용했을 때 원리금보장형보다 수익률이 낮아졌을 경우 본인이 어떻게 되느냐에 대한 걱정 탓에 투자를 소극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며 "IPS 도입은 기업 자율에 맡겨서 될 문제가 아니라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준범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연금제도센터장도 "A사 퇴직연금 담당자가 원리금보장형으로만 굴려서 은행 금리 수준인 연 2.5%로 2년간 5% 수익률을 올리면 '보통' 판정을 받지만, B사 담당자가 첫해 10% 수익률을 기록해도 이듬해에 1% 손실을 보면 집으로 가는 사례가 나올 수 있다"며 "대기업이 우선 시작한 뒤 중소기업이 성공적 사례를 참고하는 식으로 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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