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에 선 지방재정)①지방자치 20년, 중앙정부 볼모된 지자체
재정자치 없는 지방자치는 허세..재정자립도 20년간 12%p 이상 떨어져
2014-05-27 17:09:34 2014-05-27 17:13:59
[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지방자치제도가 도입된지 올해로 20년째. 지방자치제도는 풀뿌리 민주주의 정착을 목표로 내걸었지만 오히려 포퓰리즘 공약과 지방자치단체의 부실 재정운영으로 지방재정은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특히 올해는 6·4 지방선거를 앞뒀지만 경기침체와 정부의 무능 탓에 선거열도 낮다. 올해 지방선거도 소모성 정치논쟁과 선심성 공약이 판치고 있다. 이미 난치병에 걸린 지방재정의 상태를 모른다는 듯이. <뉴스토마토>는 지자체의 재정위기를 진단하고 대안을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민 아닌 국민과 지역 없는 국가는 없으며 국가가 아무리 발전해도 지역이 발전하지 않으면 국민은 행복해 질 수 없다" - 유정복 前 안전행정부 장관(2013년 10월29일)
 
지난해 10월29일, 민선 지방자치제도가 도입 후 이를 기념하는 국가 공식행사가 처음으로 열렸다. 이날 유정복 전 장관과 전국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자율과 책임'으로 지역 경쟁력을 키우자고 강조했지만, 이때처럼 정부의 구호가 빈말처럼 느껴진 적은 없었다.
 
◇지방분권 한다면서 중앙정부에 싫은 소리 못하는 지방자치단체, 왜?
 
지방자치 기념행사가 20여년만에 열렸다는 것에서도 짐작되 듯 지자체에 대한 중앙정부의 관심은 낮고 지자체가 지역의 현안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것도 현실이다.
 
정부는 지방자치제도를 통해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이 정착됐다고 평가했다. 겉으로만 보면 그렇게 보인다. 지방선거는 중앙 정계에서 배제된 지역 민심을 대변했고, 수도권 과밀화 해소를 내건 지역경제권 육성과 공기업 지방이전 등이 착착 진행되고 있어서다.
 
그러나 실상을 보면 이야기가 다르다. 대통령 소속 지방발전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4만6000여건의 국가사무 중 지방으로 권한이 이양된 비율은 20%에 그쳤고, 지역개발사업은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새로 바뀌지만 지자체는 별다른 행동을 못하고 있다.
 
이처럼 지방자치가 제 역할을 못 하는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지자체의 열악한 재정상태를 첫손가락에 꼽는다. 지자체가 돈이 모자라는 데다 스스로 재정을 운영할 깜냥이 안돼 돈줄을 중앙에 의존하다 보니 중앙정부에 대고 지역의 목소리를 못 낸다는 것이다.
 
◇지자체 재정자립도 매년 내림세..부실재정·과다부채도 문제
 
지자체의 재정상황은 자체 세입규모와 중앙재정에 대한 의존도를 나타내는 재정자립도에서 대번 드러난다. 기획재정부와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 1995년 이후 전국 평균 재정자립도는 해마다 하락세를 기록해 20년간 12%포인트 넘게 떨어졌다.
 
◇연도별 전국 평균 재정자립도(자료=통계청)
 
이런 문제는 지역산업이 저수익 구조고 인구도 줄고 있어 세수확보 수단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은데 원인이 있다. 더구나 중앙정부가 각종 국책사업 명목으로 돈을 빼가고 있어 주민을 대상으로 한 복지사업이라도 벌이려면 다시 중앙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이용환 경기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앙과 지방의 세입규모는 7대3 비율이지만 세출규모는 6대4"라며 "세입규모를 초과한 지방정부의 세출규모는 재원부족 문제를 낳았고 이는 지방재정이 중앙재정에 의존해야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지자체 스스로 무리한 개발사업을 추진해 빚 폭탄을 떠안은 것도 원인이다. 기재부와 안행부 통계에 따르면 2012년 통합회계 기준 지자체 부채는 47조7395억원으로 부채비율은 4.68%며, 지방 공기업의 빚과 금융이자까지 더한 총부채는 100조원을 훌쩍 넘는다.
 
이 가운데 부실재정 지자체의 대장격인 인천광역시는 지난해 기준 총부채가 총 13조2449억원 규모로, 2011년 이후 금융이자만 매년 4조원씩 물어내고 있다. 인천시는 오는 9월 열릴 2014년 아시안게임 주경기장과 보조경기장을 짓는 데만 약 2조원을 썼다.
 
◇2012년 통합회계 기준 광역자치단체 재정현황(자료=안전행정부)
 
경기도 용인시는 삼성전자(005930) 기흥공장과 삼성 에버랜드, 골프장 등이 들어서 비교적 경제사정이 양호하다고 알려진 곳이었다. 그러나 용인시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추진한 경전철 사업이 난항을 겪으면서 약 1조1200억원의 부채를 떠안게 됐다.
 
강원도 태백시는 인구가 4만9000여명에 불과한 작은 지자체지만 광역·기초자치단체를 통틀어 지역민 1명당 부채가 가장 많은 곳이다. 2012년 태백시의 부채는 440억원으로 태백시민 1명당 748만6552원으로 빚을 지고 있다.
 
이처럼 자의에 따라 부채가 생겼거나 지역경제 여건이 워낙 열악해 경제사정이 원래 좋지 않든 지방재정의 위기는 지방분권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육동일 충남대 자치행정과 교수는 "지방자치제도 실시로 지역사회의 자치권 보장 장치는 부분적으로 마련된 것 같지만 지방재정은 매우 열악하다"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역할분담을 재정립하고 사무와 재정 등을 합리적으로 분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정자치 없는 지방자치는 허세'..지방재정 강화하고 투명성 높여야
 
이에 '재정자치 없는 지방자치는 허세'라며 제도적으로 지방재정의 자주권을 지키고 재정 건전성을 유지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실장은 "현재 지방재정에 관한 정보가 일반 시민들에 제대로 공개되어 있지 않아 지자체나 지방공기업 채무가 지역민에게 가까이 와 닿지 않는다"며 "지자체의 빚으로 인해 가구 연간 근로소득 대비 부채비율이 20% 이상인 지자체는 지방채 발행이나 민자사업 추진을 제한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회예산정책처 관계자는 "지방정부의 재정관리 위험도를 줄이고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지자체 예산편성 때 지방재정 관련 자료를 국회 상임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보고하고 지방 예산안을 검토하게 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연도별 국고보조금과 재정자립도의 추이(자료=경기개발연구원)
 
정부의 국고보조금 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중앙정부가 국고보조금 명목으로 지방에서 돈을 거둬가는 만큼 지방의 재정자립도는 낮아진다는 것이다.
 
송상훈 경기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외 경기침체로 지방의 재정자립도는 악화되지만 정책적 필요에 따른 국고보조 사업이 지방재정의 비효율을 불러왔다"며 "지난 10년간 국고보조금이 22조원 증가하는 동안 재정자립도는 6.1%포인트 하락했다"고 말했다.
 
송 연구위원은 "국고보조 사업 중 국가사업은 국가가 전액 부담하고 지방사업은 지방에서 부담하되, 지자체의 재원 확보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국고보조 사업의 필요성과 사업추진 주체를 원점에서 검토하고 사업 성과평가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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