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세월호 사고의 원인으로 선박과 해상 관련 안전규제를 대폭 줄인 게 지목되자 정부가 '국민의 안전과 위생을 고려한 규제개선'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가 산업계의 의견을 수렴한다는 핑계로 여전히 안전과 환경 관련 규제를 줄이고 있어, 국민의 안전과 위생은 또 뒷전으로 밀렸다는 우려가 커진다.
14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화학물질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마련한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과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을 최근 입법예고했지만 영업정지 대상과 과징금을 원안보다 축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 1월부터 시행될 이들 법안은 연간 1톤 이상의 화학물질을 생산·수입하거나 700여종의 화학물질을 다루는 업체에 대한 화학물질 유해심사를 의무화한 것으로,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고와 불산 누출 등 최근 잇따른 화학물질 사고를 막으려는 것이다.
◇4월15일 경기도 안산 단원구의 한 화학물질 제조공장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나 공장 외벽이 무너지고 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New1
그러나 법 시행을 앞둔 6개월여 앞둔 지금 입법예고 법안을 살펴보면, 애초 등록 대상이었던 연구개발 목적의 화학물질은 등록 절차가 면제됐고, 기업의 영업 비밀을 보호한다며 안전관리정보 공개 대상에서 화학물질의 성분과 함량 등은 제외했다.
또 화학물질을 유출한 기업은 매출액의 5%를 과징금으로 물게 했지만 처벌이 과하다는 업계 요구를 수렴해 과징금 대상을 고의·반복적 위반 등으로 한정했으며, 화학물질 취급업체에 대한 지도·점검은 연 4회에서 연 1회로 크게 줄었다.
까다로워진 화학물질 관리 법안에 산업계가 울상을 짓자 정부가 규제 대상인 기업의 입장을 대부분 반영해 법안을 완화해준 것. 화관법과 화평법이 국민의 안전을 지키겠다는 목적에서 벗어난 것은 물론 감독 법령으로서의 기능을 사실상 잃은 셈이다.
국민의 안전과 위생을 간과하는 정부의 모습은 이뿐만 아니다. 환경보호가 부처의 존재 목적인 환경부는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완화를 강조하자 "올해 중 소관 규제를 10% 줄이고 2016년까지 기존 규제의 75%에 대해 일몰제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환경부는 당장 경기도 구리시 토평동 그린벨트와 남양주시는 양정역세권·진건지구 그린벨트, 하남시 미사강변도시 그린벨트 해제를 동의했으며, 최근에는 환경영향평가법을 개정해 그린벨트 해제 때 주민의견 수렴절차를 생략할 수 있게 했다.
이러다 보니 규제완화 정책이 안전과 위생 관련 규제완화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정부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장재연 아주대 의과대학 교수는 "효용이 없고 잘못된 규제는 개혁대상이지만 그 기준은 기업의 경영이 아닌 국민 건강과 환경"이라며 '환경부는 등록규제 감축계획을 취소하고 사회적 협의기구를 통한 환경규제 개선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소장도 "정부가 영리병원을 확대하기 위해 그린벨트를 해제해준 것은 반환경적 정책을 남발한 것"이라며 "규제완화에는 충분한 사전 영향평가 진행되야 하는데 지금은 주먹구구식 규제완화론만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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