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광범기자]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정부가 재빠르게 세월호 실소유주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에 대한 압박을 지속하고 있다. 검찰을 필두로 금융감독원·국세청·관세청까지 총 동원돼 유 전 회장 일가에 대해 샅샅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오대양 사건'·'구원파' 등 유 전 회장 일가와 관련된 지난 사건들도 다시 언론에 부각되고 있다.
결국 유 전 회장은 변호인을 통해 "전 재산은 100억"이라며 "이를 모두 내놓겠다"고 백기 투항했다. 그러나 당국은 '숨은 재산'뿐 아니라 로비의혹 등 전방위적으로 유 전 회장 일가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당국은 한국해운조합·한국선급 등 이번 사고와 관련된 부실점검·부실검사의 책임 기관으로 지목되고 있는 기관들에 대해서도 전방위적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유 전 회장 일가와 선박 관련 기관들에 대한 조사는 세월호의 평소 부실한 관리와 운항이라는 측면에서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유 전 회장측에 대한 강력하고도 재빠른 조사가 사고 이후 정부가 보인 무능과 무기력에 대한 책임 부분을 뒷전으로 밀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정부의 위기대응 시스템과 초동 대처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실종자 가족들의 공무원에 대한 불신과 관련해서도 "자리보전을 위해 눈치만 보는 공무원들은 우리 정부에서는 반드시 퇴출시키겠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7일 오후 진도 앞바다에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 사고현장을 방문해 해경 경비함정에 올라 수색 및 구조작업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당장 "유체이탈 화법"이라는 비난이 야당과 시민사회 내부에서 튀어나왔다.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정부의 무능을 사과하는 대신, 제3자적 관점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게 온당하냐는 것이다.
실제 이번 사건에서 정부의 허술한 대응을 보여주는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안전행정부가 중심인 중앙대책안전본부는 사고 초기 우왕좌왕 하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결국 스스로 역할을 포기하고 해경에 컨트롤타워 기능을 넘겼다. 이 과정에서 '전원 구조' 등의 잘못된 발표를 함으로써 엄청난 비난에 휩쓸린 바 있다.
해경도 마찬가지였다.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는 관할 해역에 들어온 세월호를 사실상 방치했다. 또 침몰하는 배에서 학생이 구조를 요청하자 해경은 "경위도를 말해 달라"는 황당한 요청을 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여러 초기 대응에서 미숙한 대응으로 참사를 키웠다는 비난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에는 '다이빙벨 투입 논란'과 '민간 잠수부'들과의 갈등, 또한 '잠수부 700명 투입'과 같은 거짓 발표 논란에 휩싸인 상황이다.
안전행정부와 해경도 행정부 소속이다. 결국 행정 수반인 대통령의 통솔을 받는 부처다. 정부 기관들의 미숙함에 대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다.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는 이와 관련해 24일 자신의 SNS에 "무책임한 장관들을 임명한 사람은 누구입니까"라고 반문하며,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고 있다는 점에서 세월호 선장과 대한민국호 선장은 똑같은 상태"라고 맹비난했다.
야당측 한 관계자는 "이명박 대통령은 무슨 사건만 터지면 '격노'하며 책임을 피하가려 하더니, 박 대통령은 무슨 일만 있으면 '질책'한다. MB를 보고 배운 모양"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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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들도 박 대통령의 이런 태도에 대한 비판에 합류했다. '스노든 사건'을 보도한 영국 '가디언'은 지난 21일 "서구 국가에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나라의 비극에 대해 그토록 느리게 대응하고도 높은 지지율과 자리를 보존하는 국가 지도자는 아마 없을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은 "침몰한 배와 수많은 젊은이들의 죽음은 그녀에게 정말로 치명타를 줄 수 있다"며 "정부의 운명은 때로는 정치와 전혀 연관되지 않는 사건들에 의해 결정된다"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과 블룸버그통신 등도 박 대통령의 발언을 비판하고 나섰다.
그러나 청와대는 여전히 박 대통령과 세월호 침몰 사고와 연결 짓는 것에 대해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국가재난관리시스템의 컨트롤타워는 청와대가 아닌 안전행정부임을 강조하며, 거리두기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 책임론’이 지속적으로 불거지고 있지만, 청와대는 "우리가 콘트롤타워는 아니다"’며 '우리는 책임없다' 식의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고 수습'이 우선이라며 대응을 자제하던 야당은 청와대에 대한 대응 수위를 점점 높여가고 있다.
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25일 최고위원·여객선침몰 대책위원회의에서 "세월호에서 숨져간 이들에게, 아직도 생사를 알 수 없는 실종자들에게, 그 가족들에게, 모든 국민들에게 대통령부터 야당 정치인들까지, 국정에 책임 있는 우리 모두는 사죄해야 한다"고 말하며, 청와대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새정치연합은 이번 주말 이후부터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 소재'에 대한 목소리를 본격적으로 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야권의 공세가 높아지게 따라, 박 대통령에 대한 책임론이 힘을 받을 것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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