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미애 기자] '통상임금 적용 범위'에 관한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지 3개월이 지났지만 산업계 현장의 여진에 시달리고 있다. '재직 요건'과 '신의칙 적용 기간'을 두고 판결과 고용노동부의 노사지도 지침에 대한 해석이 엇갈리면서 혼란만 가중됐다.
대법원은 해당 판결에서 '노사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신뢰·합의하고 이를 토대로 임금 조건을 정한 경우', 그리고 '기업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는 경우'에는 형평상 신의칙에 반해 추가임금의 청구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봤다. 물론 경영상 중대한 위험에 대한 입증 책임은 기업에게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9일에는 성과급을 확대하라는 정부의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까지 나왔다. 상여금과 각종 수당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는지 여부를 둘러싼 노사 간의 법정공방은 연공급(호봉제) 중심에서 성과급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 논의로 옮겨지는 형국이다.
정부 매뉴얼에는 기본급 중심의 임금 구성항목 단순화, 기존 호봉제의 연공성 완화 및 직무급·직능급 도입, 성과와 연동된 상여금 또는 성과급 비중 확대 등이 제시됐다
기본급을 중심으로 근로자의 임금 구성을 단순화하고, 근속기간에 따라 임금 차이가 벌어지는 호봉제를 줄이는 대신 상여금을 성과와 연동하라는 게 개편안의 골자다.
앞서 대법원은 '정기성·고정성·일률성'이 충족되면 정기상여금이라서 통상임금에 해당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는데, 정부 매뉴얼에서 제시한 '성과 상여금 확대'는 기존 상여금을 비고정적으로 만들어 아예 통상임금의 범위를 축소시키자는 얘기다.
개별 능력과 업무에 따라 임금을 차등 지급하자는 것이지만, 노사 양측이 동의할 수 있는 객관적인 인사고과 기준이 마련돼 있느냐는 점에서 제도의 실효성 여부는 미지수다.
대기업의 인사팀 관계자는 28일 "인사평가 담당자가 상당히 곤혹스러워한다"고 호소했다. 이 관계자는 "객관적인 업무 추진율 데이터 외에 직원의 주관적인 업무성취도 등을 평가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평가자의 주관적 재량이 발휘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의 인사노무 담당 관계자는 "임금협상 시기가 다가오는데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사항이 없다"며 "성과 비중을 늘리라고 하지만 너무 모호하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실제 지난해 기준 전체 기업 연봉제 도입률은 66.2%에 달하지만 무늬만 연봉제로 운영돼 왔다. 연봉제 회사지만 '통보식'의 연봉협상이 반복되는 실정인 셈이다.
◇노동계 "사업자 중심 모델"..재계 "긍정적"
임금협상을 앞두고 나온 성과급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을 두고 노동계와 재계의 대립도 거세다. 노동계는 저임금 체제로 가려는 사업자 중심의 모델이라고 비판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관계자는 "자본은 입맛에 따라 연공급과 직무 능력급을 선호한다"며 "기업에 젊은 인력이 많을 때는 연공급 제도가 기업에 유리했는데, 이제는 오래 근무하는 중고령자가 많아져 연공급이 불리하자 유리한 임금체계로 바꾸려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본적으로 연공급 제도 아래서 임금을 인상해 주지 않겠다는 생각이 깃들어 있다"고 지적했다. 또 "휴일근로가 연장근로에 포함된다는 판결도 예정돼 있었는데, 오히려 철저한 평가를 통해 자연스럽게 은퇴나 퇴직을 강요하는 것"이라며 "직무·직능급을 도입하면 회사 측이 자의적으로 임금을 정할 수 있는 여지가 넓어진다"고 주장했다.
반면 재계는 시대에 맞는 합리적이고 현실적 대안이라고 옹호하는 입장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번 매뉴얼은 임금체계 개편 방향으로 '기본급에서 연공성을 줄이고, 상여금은 성과와 연동돼 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통상임금 판결이나 정년연장 등 최근 법제도적 환경 변화를 고려할 때 최소 수준의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이고, 실제 노사 어느 한쪽에 유리 또는 불리한 내용이라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지난해 말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을 전후해 사실상 개별기업의 재판이 중단됐던 회사 측과 노조간 법정다툼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잔업·야근이 빈번한 완성차 업계의 대표주자인 현대·기아자동차 사건이 재개되면서 결과가 주목된다. 대법원은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단하면서도 몇 가지 전제를 달아 서로 다른 임금 체계를 가진 개별 사업장에서의 인정 범위가 달라질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업종별 임금체계 개편 모델(자료=고용노동부)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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