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동훈기자] "늙은이들은 쭈그러든 얼굴에 흰 수염을 하고, 눈에서 뻑뻑한 송진과 아교를 흘리며, 팔푼이처럼 정신이 하나도 없는 데다…."
셰익스피어는 햄릿의 입을 통해 노인을 이같이 표현했다.
미국 미시간 로스쿨의 윌리엄 이안 밀러 교수가 쓴 '잃어가는 것들에 대하여'는 나이가 들어가며 잃는 것과 얻는 것을 주로 다뤘다.
가령 나이가 들면 예전에 읽었던 책을 처음 발견한 것처럼 즐겁게 다시 읽는다. 친구들이 몇 번이나 들려주는 똑같은 이
야기에 새삼 귀를 기울이는 경험도 한다. 귀가 어두워지면 성질을 부리거나 화를 낼 이유가 줄어든다.
나날이 잃어가는 것들 덕분에 아직도 새로운 것들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것이다. 책은 저자 자신의 경험과 문학, 성경, 영화 외에도 세네카, 토마스 아퀴나스 등 다양한 인물의 사례와 역사 속 사건은 물론 어원까지 언급하면서 전개된다.
사실 저자가 설명하는 노년기는 참담하다. 쇠퇴, 비열, 탐욕, 비겁, 까다로움, 성미 급함, 침울, 징징거림, 노안, 코 흘리기, 난청, 성마른 기침, 대머리, 이빨 빠짐, 악취, 성욕 상실, 처진 살, 망각,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수다.
게다가 노인은 노년의 특성 그 자체에 대해 불평하지만, 아무리 가난하고 운이 없는 청년이라도 청년기 특성 자체에 대해서는 거의 불평하지 않는다. 저자는 노인의 능력으로 간주되는 지혜도 의심한다.
그는 "사소한 의미에서의 지혜는 나이와 더불어 찾아온다지만 나이가 든다고 반드시 지혜로운 것은 아니다"라며 "젊은 사람들은 나이라도 젊지 않은가"라고 주장한다.
참담한 노년기이지만, 과거부터 돌팔이 의사들은 수명을 연장해 준다는 묘약과 엉터리 주문을 동원해 부유층 노인들의 돈을 뜯어 가곤 했다. 오늘날은 이것이 과학으로 발전했다. 이 때문에 치매에 걸려 늙는 건지 죽어가는 건지 자각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 산다.
그럼에도 저자는 잃어가는 것에 대한 '긍정'을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미덕이란 이미 가진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이다. 보톡스나 비아그라에 기대어 억지로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무언가를 포기함으로써 다시 포기할 대상이 생겨난다는 점을 짚었다.
그는 "차라리 망상에 가깝다 싶을 정도로 진정한 자신의 모습과 거짓된 노년의 모습 사이에 선을 그었던 예이츠처럼 노년 앞에서 격분하라"고 외친다. 분노를 터뜨리는 것은 삶의 증거인 동시에 삶에 여전히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또 은퇴나 노년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라고 조언한다. 우리가 나이를 10대, 20대, 30대와 같이 10의 배수로 나눈 것은 근래에 만든 것이다. 저자는 65세에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뻔한 말 외에는 노년을 극복하는 방법이 제시되지는 않는다. 죽음에 대해 "모든 걸 잃지 않았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서라도 몇 마디의 반어적인 농담을 던진 후에 두 발을 늘어뜨리고 마지막 숨을 내쉬고 싶다"며 긍정적 모습을 제시하는 식이다. 다만, 노년기에 대해 '있어 보이게' 생각해볼 수 있는 이야기보따리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잃어 감의 과정은 30대 초반부터 진행됐으며, 더디지만 가혹하게 쇠퇴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는 저자의 지적에 30대 초반인 기자도 간담이 서늘해진다.
아침에 거울 속 낯선 사람을 본 뒤 안티 에이징 로션을 검색하려던 사실을 하루가 끝날 무렵엔 까맣게 잊는 일이 언제부턴가 잦아졌다. 저자는 이런 사람들에게 "수치심도 허영의 일종"이라며 "당신은 여느 사람과는 다르다는 걸 전제로 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역설적인 것은 우리가 이런 문제로 고민하는 것을 멈추는 순간 현재의 우리 자신과도 멀어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누구나 처음 겪는 '잃어감'에 대해 당황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라는 게 저자의 뜻이 아닐까.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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