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승근·이보라기자] 전문경영인 도입으로 범현대가 중 유일하게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현대중공업그룹의 향후 관건은 최대주주인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이 현 체제를 계속 가져가느냐에 있다. 이는 여전히 대권을 꿈꾸는 그의 정치적 행보와도 맞닿아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중 9위로, 세계 1위의 조선업체다. 총자산은 58조5000억원 규모(2013년 6월말 기준)다. 비교적 단순한 지배구조를 형성, 순환출자 논의에서 벗어나 있지만 향후 대주주의 지배권을 강화하거나 승계작업을 위해 지주회사 전환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최근에는 원자력발전소 납품 비리로 현대중공업 전·현직 임직원이 무더기로 기소되면서 그간 쌓아온 세계 최대 조선소라는 명성에 금이 갔다. 갑을 관행의 여진 속에 윤리경영을 재다짐해야만 했다. 정몽준 의원의 장남인 기선씨가 지난해 현대중공업 부장으로 복귀하면서 3세경영의 신호탄도 쏘아졌다는 분석이다.
◇순환출자 고리 해소에 필요실탄만 1조4000억원
현대중공업은 현재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중공업’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보이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최대주주는 지분 10.15%를 보유한 정몽준 의원이다. 아산사회복지재단과 아산나눔재단이 각각 2.53%, 0.6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정몽준 외 특수관계인이 현대중공업의 지분 21.32%를 갖고 있다.
◇현대중공업 순환출자 구조(2013,4.1기준. 자료=시장과 정부연구센터)
지난해 11월 동양증권 채권분석팀이 내놓은 '2014 한국기업의 지배구조'에 따르면, 최대주주인 정몽준 의원의 지분이 그리 높지 않다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지주회사 체제 전환이 필요할 것으로 분석됐다. 다만 현대중공업은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며 필요성을 부인하고 있다.
정몽준 의원의 현대중공업의 지분율(10.15%)이 낮다는 점과 정 의원의 2남2녀에 대한 승계작업이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 등을 고려해 보면 현대중공업이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고려할 것이라는 전망이 심심치 않게 흘러나온다. 다만 이는 중장기적 차원에서 검토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지주사인 홀딩스를 설립하면 현대중공업과 계열사들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할 수 있다. 장남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장을 비롯한 자녀들에 대해 지분을 나누는 작업까지 병행한다면 지배권 강화와 세습 등 그룹이 직면한 가장 큰 숙제를 해결할 수 있다. 자금 동원에 대한 부담도 덜 수 있어 직접적인 순환출자 해소보다 유리하다.
당장 지주사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중공업으로 연결되는 지분(고리)을 해소해야 된다. 현대중공업이나 대주주인 정 의원이 현대미포조선이 보유한 현대중공업 지분 7.98%를 매수하면 된다. 1월20일 종가(23만2500원)기준으로 약 1조4100억원정도의 비용이 소요된다. 이는 삼성, 현대차, 롯데에 이어 10대그룹 가운데 4번째로 대단위 규모다. 자금 확보 방안으로는 현대오일뱅크와 현대삼호중공업 등 자회사 상장이 거론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2012년 현대오일뱅크 상장을 계획했지만 대내외 경제여건 악화로 이를 철회한 바 있다. 2010년 현대오일뱅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순차입금의 규모가 늘면서 오일뱅크의 기업공개(IPO)가 절실해졌다. IPO시장의 ‘대어’로 불리는 현대오일뱅크의 상장 시기는 정제마진 악화로 인한 실적 부진에서 벗어날 즈음으로 보인다. 대체로 올해 말부터 내년쯤으로 점쳐진다.
현대중공업은 2009년 현대종합상사에 이어 2010년 오일뱅크 인수에 성공했다. 국제중재재판소 중재판결에서 승소하면서 11년 만에 경영권이 현대가로 돌아왔다. 현대중공업의 지분율이 91.1%로, 인수자금으로만 2조6000억원이 소요됐다. 이는 곧 외부자금 조달이 급증하게 된 배경으로 작용했다. 오일뱅크 인수에 따른 단기자금 조달은 최근 회사채 발행 등 장기구조로 전환하며 재무구조에 숨을 불어넣었다.
현물 출자를 통한 주식교환으로도 지분 구조를 정리할 수 있다. 회사를 사업자회사와 지주회사로 분할해 지분을 가진 계열사의 주식과 현물을 출자하는 방식이다. 이와 같은 주식 스왑을 통해 현재 정 의원의 현대중공업 주식 지분율을 최소 두 배 이상 끌어올릴 수 있다. 같은 방식으로 지주사 요건 역시 충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여 재계에서는 추가 비용은 없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자금 동원 부담을 생각하면 매력적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출자구조(2003.4 기준. 자료=시장과 정부 연구센터)
지난 2002년 현대가로부터 현대중공업이 분리될 때만 해도 지금과 같은 순환출자 형태는 아니었다. 2003년 현대중공업이 자사주 5%를 현대미포조선에 매각하고, 현대미포조선 지분 27.79%를 현대삼호중공업에 매각하면서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의 순환출자 구조를 띠게 됐다. 이후 현대삼호중공업이 현대미포조선 주식을, 현대미포조선이 현대중공업 주식을 추가 취득해 순환출자를 강화했다.
이러한 작업 모두 최대주주인 정몽준 의원의 지배권 강화가 목적이었다. 현대중공업 및 계열사들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현재의 순환출자 형태가 만들어졌다. 순환출자는 주로 세습이나 지배력 강화를 위해 이용되는 일종의 편법이다. 최대주주의 지배력 강화를 위해 순환출자 형태를 만들었지만 당시의 ‘묘수’가 현재 현대중공업의 과제가 됐다.
다만 경제민주화 핵심법안으로 통용되던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신규 순환출자만 금지하고 기존 출자는 인정하는 방향으로 확정되면서 현대중공업은 한시름 놓게 됐다. 10대 재벌그룹 중 삼성과 현대차, 롯데, 현대중공업, 한진 등이 순환출자구조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 순환출자 구조 해소와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은 경영권 승계와 금산분리 정책 강화 여부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일감몰아주기 과세, 금산분리 강화 등 지배구조 관련 규제가 강화되는 흐름이 계속된다면 일부 대기업과 중견기업을 비롯해 현대중공업그룹 역시 지주회사 전환 선택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금산분리의 경우 중간금융지주회사가 거론되고 있다.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중간금융지주 회사 도입을 천명한 바 있다. 이 경우 현대중공업그룹으로서는 총자산 약 4조3000억원 규모(2013년 6월말 기준)의 하이투자증권과 하이자산운용 등 5개의 금융계열사 처분 여부를 고민해야 한다. 다만 재계에서는 금융계열사가 그다지 큰 규모가 아니라는 점을 들어 심각한 부담은 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이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News1
◇정기선의 복귀.. 3세경영 신호탄
현대중공업그룹은 경제민주화 논의에 있어 멀찌감치 떨어져 관망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법안이 입법화되면 검토하겠다는 방어적 자세다. 회사의 대주주가 유력 정치인인 만큼 이에 대한 부담과 고려가 깔려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의 부인에도 지주회사 전환 가능성이 점쳐지는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승계 때문이다. 현재 정몽준 의원의 2남2녀 모두 지분을 갖고 있지 않다. 지난해 6월에는 정몽준 의원의 장남인 기선씨가 경영기획팀 부장으로 복귀하면서 3세경영의 신호탄이 쏘아졌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지난 2009년 현대중공업 대리로 근무하다 미국 유학길에 올라 지난해 재입사 형식으로 친정에 복귀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MBA를 취득한 뒤 미국 보스턴컨설팅 그룹에서 일하며 글로벌 관점과 역량을 키웠다. 부친 회사로 컴백한 그를 두고 올 연말 회사 안팎의 이목이 집중됐다. 임원 바로 아래인 수석부장 직급으로 입사했지만 곧바로 연말 인사를 통해 임원으로 승진할 것이란 얘기가 유력하게 흘러나왔다.
하지만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이번 인사에서 정 부장은 제외됐다. 원전 비리로 인해 여론의 질타가 쏟아진 상황에서 최대주주의 아들을 초고속 임원으로 승진시키기에는 부담이 컸다는 분석이다. 물론 장기적 관점에서 경영수업을 시키는 만큼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인식도 한몫 했다는 평가다.
실제 그에게 임원 타이틀은 별로 중요치 않아 보인다. 회사로 복귀해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는 점 자체가 지니는 의미가 크다. 정 의원은 7선의 유력 정치인으로, 이재성 현대중공업 사장을 회장으로 승진시키는 등 소유와 경영의 분리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 정 의원 본인과는 달리 장남을 그룹에 배치함으로써 향후 후계구도에 대한 포석을 대내외에 내보였다. 경영권 승계는 정해진 시나리오라는 게 일치된 평가다.
정 의원은 지난 2011년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경영권의 아들 승계 여부에 관해 “아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렇게 하길 원하는지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아이들이 능력이 있으면 할아버지가 만든 회사에서 일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3세경영에 대한 긍정적 입장을 내비쳤다.
경영권 승계를 위해서는 지주사로의 전환이 필수적이란 분석이다. 지분을 어떻게 확보하게 하느냐에 따라 경영권을 강화시킬 수도, 후퇴시킬 수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만약 지주회사 전환으로 승계를 하지 않는다 해도, 자산 및 부의 승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고조된 만큼 편법을 동원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 의원이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크다.
만약 정 의원이 지주회사 체제 전환 없이 현 상태로 상속작업을 진행한다면 공익재단 법인을 이용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다만 대기업의 공익법인이 총수 일가의 지배권 유지용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 여론이 적지 않아 부담이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공익법인이 특정회사의 지분을 출연받을 경우 5%(성실공익법인의 경우 10%) 한도 내에서 증여세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현대중공업에 따르면 아산나눔재단은 성실공익법인으로 분류돼 현재 현대중공업 보유지분 0.65% 외 9.35%을 과세 없이 추가 보유할 수 있다. 아산사회복지재단은 현재 보유한 현대중공업의 지분 2.53%를 제외한 2.47%에 대해 추가 과세 없이 보유할 수 있다.
정 의원은 아산사회복지재단과 아산나눔재단 등 현대중공업의 공익법인에 총 11.82%를 과세없이 증여할 수 있다. 정 의원은 현대중공업의 지분 10.15%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법인에 증여하는 방식을 이용하면 별도의 상속세 없이 지분을 상속시킬 수 있다. 이는 50%에 달하는 상속세 부담을 더는 우회로다.
한편 현대중공업은 그간의 고속성장세를 접고 일대 기로에 서 있다. 원전 비리와 관련에 전현직 직원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등 윤리경영이 도마에 올랐다. 이에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해 11월 준법경영 담당을 사장급으로 격상시킨 데 이어 12월에는 비리 예방활동 강화를 위해 기존의 윤리경영팀에 더해 컴플라이언스실을 신설했다.
여기에다 계속되는 조선 업황 침체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삼성중공업 등 경쟁사들이 해양플랜트와 드릴십 등 고부가가치 품목으로 빠르게 눈을 돌리는 상황에서 경쟁력 1위의 역량을 보여주기에는 시장 상황이 녹록치 않다. 또 미래 먹거리로 육성키로 한 태양광 사업도 정체되면서 사업 다각화와 미래 먹거리 발굴의 숙제도 남겨졌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