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당하면 억울..신고하려니 복잡한 '보이스피싱'
2013-12-05 08:06:27 2013-12-05 08:10:13
[뉴스토마토 곽보연기자]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첨단범죄수사 1부의 박준규 수사관입니다. ○○○씨가 연루된 사건이 하나가 접수되서 본인 확인을 좀 드리려고 전화드렸습니다. 사건번호는 2013-*******이고요, 제가 지금 알려드리는 사이트에 접속해 해당 소장을 직접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번호 적으셨습니까? 다시 불러드릴까요?"
 
지난 4일 오전 전화가 왔다. 친절하게 자신의 이름을 또박또박 불러준 '박준규 수사관'은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익히 들어 알고 있었던 '검찰(경찰) 사칭 보이스피싱'이다.
 
금융회사나 검찰, 경찰 등 공공기관을 사칭해 전화를 걸고, 정상적인 홈페이지 주소로 접속시키지만 트래픽을 우회시켜 피싱사이트로 유도하는 고전적인 수법이었다. '박준규 수사관'이 알려준 홈페이지에 사건번호를 입력하면 실명확인을 위해 이름과 은행, 이용자 ID, 계좌번호, 보안카드 번호 등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팝업창이 떴다.
 
정부 부처에서 스미싱이나 피싱,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위해 마련해 놓은 신고센터에 전화를 걸었지만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신고 절차가 복잡하고, 금전적인 피해가 없다면 신고할 수 없으며, 해당 번호를 없애도 새로운 번호로 보이스피싱은 또 반복될 것이라는 허무한 답만이 돌아왔다.
 
금융감독원 민원센터(1332) 사기전담부서 상담원은 "이쪽(금감원)에서 담당하는 업무가 아니다"며 "한국인터넷진흥원에서는 스팸신고가 들어오면 아예 해당 번호에 대한 사용권을 끊어버리는 것으로 알고 있으니 그쪽으로 연락해보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사이버테러센터(118)의 설명은 또 달랐다. KISA의 개인정보보호 부서 상담원은 "자신의 휴대폰 단말기에서 해당 번호를 스팸조치 하는 방법 밖에 대책이 없다"며 "이쪽에서는 정보통신망법 제50조에 의해 영리성 광고 목적의 광고 문자에 대해서만 신고접수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보이스피싱은 수사권이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상담원은 여기에 "하지만 경찰청에서도 금전적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상황에 대해서는 수사가 어렵다"면서 "지금 보이스피싱으로 피해를 입으신게 없기 때문에 경찰청에 연락해도 신고할 방법은 없다"고 덧붙였다.
 
끝내 경찰청 민원센터(182)에 연락을 취했다. 보이스피싱 전화번호와 대화 내용에 대해 상담원에게 설명하자 그는 "혹시 실제로 연루된 사건이 있을지 모르니 서울중앙지검에 먼저 확인을 해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부를 통해 "'박준규'라는 이름의 수사관이 없고, 검찰에서는 이같은 내용으로 일반인에게 연락을 취하지 않는다"는 확인을 받자, 경찰청에서는 보이스피싱을 신고하기 위해서는 경찰서에 직접 내방하거나 온라인 홈페이지에 민원을 올리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며 인터넷 홈페이지 주소를 불러줬다.
 
보이스피싱으로 사기범들이 지난 3년간 탈취한 피해금은 무려 2050억원(2011년~2013년10월, 경찰청 추산). 금융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 법무부 등 범부처대책협의회가 지난 2012년 '지연입금제'나 '지연인출제' 등을 포함한 '보이스피싱 피해방지 종합대책'을 마련한 덕에 피해건수는 매년 줄어들고 있지만 올해에도 10개월간 4022명이 보이스피싱 피해를 입었고, 피해액수는 436억원에 달했다.
 
정부에서 다양한 대책을 마련해 보이스피싱을 근절하겠다고 했지만 이처럼 복잡한 신고절차와 미루기, 피해가 발생해야만 신고할 수 있는 '사후처리 방식'의 대책으로는 보이스피싱을 단절할 수 없다. 보이스피싱과 스미싱 등 위험에 대한 경고가 닿지 않는 금융사기 사각지대에 대한 특별 관리는 물론, 사건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
 
'박준규 수사관'은 내일 또 다른 희생자를 찾고 있을 것이고, 사기에 넘어간 피해자의 돈은 고스란히 범죄자의 통장으로 이체될 것이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