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뉴스토마토 양지윤기자] "솔루션 스타이렌 부타디엔고무(SSBR)가 나오면서 '주행과 제동' 능력의 트레이드 오프(trade-off·상충관계) 개념이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김승수 금호석유화학 중앙연구소장(전무)은 SSBR의 등장이 타이어 시장에 몰고 올 변화에 주목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타이어 업체들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타이어 성능을 리터당 주행거리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브레이크를 효율적으로 제어할 수 없게 되고, 브레이크 제동 능력을 신경 쓰면 연비 효율성이 뒤쳐지는 딜레마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전환점을 맞게 된다. SSBR의 개발로 연비를 향상시키면서도 브레이크를 효율적으로 제동할 수 있는 타이어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혁명이었다.
◇SSBR, 범용 합성고무 대비 최대 45% 회전 저항력 개선
SSBR은 원유 정제 때 나오는 나프타가 기반인 합성고무 제품으로, 나프타에서 추출한 스타이렌(30%)과 부타디엔(70%)을 유기 리튬 촉매를 이용해 만든다. 내마모성이 우수해 지면과 타이어 사이에서 에너지 손실을 줄이는 트레드(노면에 닿는 바퀴의 접지면)로 주로 사용된다.
SSBR은 기존 범용 합성고무인 스타이렌부타디엔고무(SBR) 대비 최대 45%의 회전 저항력과 노면 접지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때문에 최근 들어 친환경 타이어의 원료로 각광받고 있다.
친환경 타이어의 기준인 '타이어 라벨링 '제도는 2011년 유럽과 일본을 시작으로, 지난해 말 한국에서 도입되는 등 시장 환경도 점점 SSBR에 우호적 분위기로 바뀌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타이어 라벨링 제도는 친환경뿐만 아니라 한국과 중국 등 타이어 업체들의 가격 경쟁력을 꺾는 무역 장벽의 성격도 짙다는 게 관련 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때문에 합성고무 업체로부터 원료를 구매하는 타이어 업체들은 무엇보다 SSBR의 품질을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김 소장은 "유럽의 타이어 제조사들은 SSBR 외 컴파운딩(혼합물) 기술이 발달해 타이어라벨링 제도에 부합하는 제품 생산이 가능하지만, 비 유럽권 타이어 업체들은 SSBR과 같은 소재로 기술적 난제를 극복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승수 금호석유화학 중앙연구소 연구소장(전무)(사진=금호석유화학)
◇타이어 라벨링제 도입, 글로벌 각축전..한·일 '선두에'
SSBR 시장은 현재 글로벌 석유화학 업체들의 각축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미국과 독일 등 생산규모가 큰 업체들을 제치고 한국과 일본 기업이 기술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점이다.
각 업체들의 생산능력은 현재 미국 스타이론(17만톤)과 독일 랑세스(12만5000톤), 중국 화마오(10만톤), 금호석유화학(8만4000톤), 일본 아사히(7만톤), 일본 JSR(6만톤), 중국 페트로 차이나와 한국 LG화학이 각각 6만톤의 순이다.
이 가운데 한국과 일본 업체들이 가장 앞선 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타이어 업체들은 합성고무 업체로부터 SSBR를 구매해 카본블랙과 실리카 등을 섞어 타이어로 만드는데, 이때 SSBR의 분자 구조에 따라 혼합되는 물질이 달라지게 된다.
그간 원유에서 생산된 카본블랙을 섞는 게 업계 표준이었으나 최근 들어 카본블랙에 실리카를 혼합하는 기술로 대체되고 있다. 규석에서 유래한 실리카는 친수성(親水性)을 보여 특히 비오는 날 제동력이 우수하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동시에 친환경 타이어의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 카본블랙과 실리카를 화학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SSBR 기술은 국내에서는 금호석유화학만이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다. 경쟁사들 가운데 JSR과 아사히가 관련 기술을 가졌다. 작은 고추들이 기술에서 만큼은 제대로 매운 맛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금호석유화학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경쟁업체들을 긴장시킬 낭보를 전해왔다. 지난 2008년부터 지난 9월까지 5년 간 진행된 국책과제를 통해 실리카를 섞은 SSBR의 개발을 성공적으로 완료했다.
아직 실험실 단계의 개발성과이긴 하지만, 상용화될 경우 타이어 업체들의 수고를 덜어줄 수 있을 것으로 금호석유화학은 기대하고 있다. 타이어 업체 입장에선 SSBR과 실리카를 섞지 않아도 돼 생산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분자 하나까지도 분석.."추격자에서 선도자로 변신 중"
이 같은 금호석유화학의 기술 선점 역량은 하루아침에 쌓인 게 아니다. 특히 산업 분야의 기초소재 연구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일본 기업과의 경쟁은 결코 쉽지 않았다는 후문.
일본 업체들은 이미 20여년 전 부터 SSBR 등 합성고무에 대한 연구개발을 선도적으로 시작한 덕에 세계 최고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금호석유화학은 연구개발 시점도 한참 뒤쳐진 데다, 일본 업체들이 선점한 특허를 피해 나가는 일 역시 만만치 않은 난제였다.
때문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퍼스트 무버(선도자)' 대신 철저히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 전략을 택했다. 경쟁사의 기술을 철저히 분석해 분자 하나까지도 일일이 파악하고 연구하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을 통해 고분자 분석 능력이 쌓였으며, 이를 통해 기술적 난제들을 차근차근 극복해 낼 수 있었다.
김 소장은 "일본 업체들의 특허에 가로막혀 SSBR을 연구개발하는 과정은 지뢰밭을 걷는 심정이었다"면서 "고분자 분석기술을 활용해 경쟁업체의 기술을 파악하고, 이를 외부 전문기관과 연계해 특허 장벽을 피해나가는 분자구조를 디자인하는 방법으로 해결해 왔다"고 설명했다.
◇기술 선점은 '합격'..시장 개화·중국 따올리기는 '숙제'
패스트 팔로어에서 퍼스트 무버로의 변신은 일단은 합격점이다. 그러나 샴페인을 터트리기엔 아직 이르다는 평가다. 세계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SSBR 수요의 핵심이 되는 타이어 라벨링 제도 확산 속도가 느린 탓이다.
당초 업계에서는 지난해와 올해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소비자들의 얇아진 지갑 사정과 타이어 라벨링 제도에 대한 인식 부재가 뒤섞이면서 제도가 안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타이어 업체들이 이를 인식하고 최근 들어 홍보를 부쩍 강화하는 추세지만, 제도가 안착되는 데 빨라도 2년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규모의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기업의 급격한 성장세도 무시 못할 처지다. 중국 기업은 이미 SSBR을 제외한 범용 합성고무 시장에서 규모나 기술면에서 한국 기업과 맞설 만큼 대등한 수준으로 성장했다. 향후 5년 내에는 SSBR과 같은 고부가가치 합성고무 제품에서도 기술 격차를 좁혀나갈 것으로 점쳐진다.
금호석유화학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지는 중앙연구소의 어깨도 그만큼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급변하는 대내외 환경 변화에 맞설 금호석유화학의 자구책은 고부가가치 기술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개발과 생산성 혁신이다. 특히 SSBR 시장이 본격 열릴 경우 시장 축소가 우려되는 범용고무의 경우 품질을 SSBR급으로 끌어올리는 제품을 연구개발 중이다.
전사 차원에서는 매년 공장의 생산성 혁신을 통해 원가 경쟁력도 확보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김 소장은 "기존 제품을 효율적으로 공급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SSBR 같은 시장선도 제품들이 끊임없이 나오지 않으면 우리도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다"며 "연구소는 변화를 일으키는 씨앗이라는 생각으로, 시장의 진정한 퍼스트무버가 되는 데 선봉장 역할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결기가 확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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