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박근혜 정부가 낮은 물가에도 웃지 못하고 있다.
지난 이명박 정부가 널뛰는 물가를 잡기 위해 이른바 'MB물가지수'라고 하는 특별관리대상 항목을 정하고, 물가담당관제까지 도입해 공무원들을 압박해 왔던 것에 비하면 행복한 고민이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결코 만만치 않은 걱정거리가 놓여있다.
소비자들의 체감물가와 괴리가 있다는 지적은 여전하지만, 대내외적으로 공식화하고 있는 물가지표가 기대 이상으로 낮게 관리되면서 물가지표와 연동되는 경상성장률과 그에 따른 세수입 여건이 덩달아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복지재정 부족에 허덕이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입장에선 낮은 물가가 반갑지만은 않다.
◇목표보다도 낮은 상승률 내년에도 계속된다
최근 들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정부의 물가안정목표보다 과도하게 낮게 형성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해말 전망했던 올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7%였지만, 실제 올해 연간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를 겨우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기재부가 6월말 하반기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수정전망했던 1.7%보다도 크게 낮은 결과다.
월간으로 보면 지난해 11월 1.6% 이후 지난 10월까지 11개월째 전년동월대비 1%대 이하의 물가상승률을 기록중이다. 지난 9월(0.8%)과 10월(0.7%)에는 0%대 물가상승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월별 물가상승률 추이(자료=통계청)
내년 물가상승률도 특별한 재난 등이 없는 한 2%를 크게 넘지 않는 물가 상승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가장 최근에 발표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2014년 경제전망을 보면 내년 물가상승률은 2.0%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KDI는 총수요압력과 수입물가 등의 변수에 따라 최저 1.7%의 저물가가 내년에도 계속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기재부가 6월말에 전망했던 내년 연간물가상승률 2.7%보다 1%포인트나 낮은 결과도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 낮은 물가를 견인했던 보육료 지원등 복지정책 효과가 내년부터 사라지고, 연말 들어 전기요금이 오르는 등 공공요금이 인상되고 있지만, 올해 1월~3월에 이미 공공요금이 대거 인상된 부분을 감안하면 이런 정책변수가 가져올 물가상승률 변동폭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내년에도 다수의 기관들이 2.0%~2.5%의 물가상승률을 전망하고 있다"면서 "보육료지원 등에 따른 물가인하효과가 사라지지만 이를 반영하더라도 물가 상승폭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낮은 물가는 적은 세수입‥불안한 공약재원
낮은 물가가 긍정적으로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는 낮은 물가의 원인에 있다.
올해의 경우 태풍 등 기상이변이 없고 유가가 안정되는 등 공급측면에서의 이상적인 조건이 갖춰진 탓이 크지만, 한편에서는 내수의 부진이 낮은 물가를 유지하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KDI는 19일 펴낸 연구보고서를 통해 "최근의 낮은 물가상승률은 공급측 요인과 더불어 수요측 요인에도 상당부분 기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작년 하반기 이후 지속되고 있는 내수부진이 물가상승률 하락에 상당부분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KDI는 특히 "내년에도 물가상승률은 1.7%~2.3% 정도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거시경제 여건들이 물가를 상승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더라도 2.0%를 소폭 상회하는 정도에 머무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내수부진이 가져오는 낮은 물가가 세수입과 직결된다는 점이다.
한 해 세금이 얼마나 걷힐까를 전망할 때 쓰는 중요한 지표는 경상(명목)성장률인데 이는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실질성장률)에 GPD디플레이터라고 하는 종합물가지수를 더한 수치다.
GDP디플레이터는 소비자물가와 수출입물가 등을 총괄하는 지표로 소비자물가가 낮으면 GDP디플레이터가 낮아지고, GDP디플레이터가 낮아지면 경상성장률이 낮아지기 때문에 세수입도 덜 들어올 수 있다.
기획재정부는 중장기 재정운용계획에서 2014년 경상성장률을 6.5%, 2015년이후 2017년까지 경상성장률을 6.6%로 잡고 있으며 2014년 이후 경상성장률에 반영한 GDP디플레이터는 매년 2.5%다.
내년의 경우 KDI의 전망처럼 2.0% 이하의 낮은 물가가 기록된다면 정부의 경상성장률 전망치는 크게 오류가 나게 된다.
내년 국세수입예산으로 책정한 218조원을 제대로 걷지 못해, 올해와 같은 세수입 구멍이 재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심할 경우 세입경정 추가경정예산안을 또 편성할수도 있다.
올해의 낮은 물가가 내년 세수입에 연결되는 문제도 크다.
정부는 올해 2.7%의 실질성장과 1.5%의 GDP디플레이터를 적용하고 있다. 경상성장률이 4.2%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올해 경제상황은 법인세 등 내년 세수입에 상당부분 반영된다.
5년간 연평균 6%중반의 경상성장률을 기록하는 것을 가정하고 계획한 박근혜 정부의 공약가계부를 제대로 채울 수 있을지 걱정되는 부분이다.
조동철 KDI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국회에서는 실질성장률만 놓고 주로 얘길 하는데, 사실 물가를 같이 얘기해야 한다"면서 "낮은 물가는 세수입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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