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홍보의 수난시대
2013-11-19 11:19:11 2013-11-19 16:42:34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등 구속(집행정지 포함) 중인 대기업 총수만 5명. 총수 일가까지 포함하면 8명이 올 들어 법정 피고석에 섰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일가가 탈세 등의 혐의로 검찰 소환이 진행 중이고, 롯데와 신세계 등 유통괴물들은 골목상권 침해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이석채 KT 회장에 이어 정준양 포스코 회장마저 정권교체에 따라 직을 내놨다. 잔혹사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재연됐다.
 
LS그룹은 원전 납품 비리에 연루되면서 기업 이미지와 신뢰도에 치명타를 입었다. 구자열 회장은 그룹 창립 10주년을 축하해야 할 기념식에서 “이토록 참담하고 부끄러운 적은 없었다”며 연신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라면상무로 시작, 남양유업 사태를 낳은 갑을 논란이 ‘을의 반란’ 속에 산업 전 분야로 확산 중이며, OCI와 한진해운 등 일부 기업들은 조세피난처를 통한 역외탈세 의혹에 직면했다. 웅진, STX, 동양그룹이 채무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차례로 무너진 데 이어 금호, 한진, 동부, 두산, 현대 등 내로라하는 그룹들도 유동성 확보에 비상등이 켜졌다.
 
사상최대 실적 행진 속에 전차군단을 이끄는 삼성과 현대차 그룹도 말 못할 고민을 안고 있다. 3세인 이재용, 정의선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마무리 지어야 하는데다, 불산사태와 부정입학, 품질논란 등 각종 사건·사고에 바람 잘 날이 없다. ‘무’노조와 ‘강성’노조는 부메랑이 돼 각 그룹을 곤혹에 빠뜨렸으며, 시샘의 눈길은 경제민주화 광풍을 타고 표적화됐다. 현재의 성장세를 담보할 미래 먹거리 사업 발굴에도 역량을 투입해야 한다. 이만저만한 고민이 아니다.
 
정치권의 공세도 녹록치 않다. 정부여당은 투자와 일자리를 내놓으라며 경제민주화를 수단화하고 있으며, 야권은 이참에 재벌그룹들을 손보겠다며 단단히 벼르고 나섰다. 국민적 분노도 간단치 않다. 국정감사장이 들끓었던 이유다. 검찰, 경찰, 국세청, 공정위 등 동원할 수 있는 사정기관도 모두 동원됐다. 사법부도 그간의 관행을 깨고 엄벌에 나섰다. 법 위에 군림하는 재벌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는 법원의 의지가 과거와의 단절을 낳고 있다.
 
한마디로 재계의 수난시대다. 정작 속이 곪는 곳은 따로 있다. 일선에서 언론을 대해야 하는 홍보다. 쏟아지는 기사 홍수 속에서 그룹의 입장을 설명하기 바쁘다. 반재벌 정서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자칫 잘못된(?) 기사 하나는 그룹의 목을 옥죌 수도 있다. 그만큼 여론에 민감하다. 특히 총수 등 회장 일가에 대해서는 기를 쓰고 선처(?)를 바란다. '황제경영'으로 대변되는 우리나라 기업구조와 문화의 특성상 총수 일가에 대해서는 침범할 수 없는 성벽을 쌓아야만 한다. 성벽 쌓기에 실패한 숱한 홍보들이 회사를 떠나기도 했다.
 
한발 떨어져서 느긋하게 사태를 관망하던 LG도 비상등이 켜졌다. 비보는 평온하던 지난 주말에 들려왔다. LG전자 소속 민간 헬기가 서울 강남 한폭판에 떨어졌다. 아파트 고층에 충돌, 9.11 참사를 떠올리게 했다. 대통령 전용기를 몰던 베테랑 조종사 두 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짙은 안개를 뚫고 비행을 강행한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사고로 숨진 기장 아들의 증언이 전해졌다. 안개로 위험을 경고했음에도 굳이 잠실에 들러 사람을 태우고 가라는 회사 요청에 기수를 강남으로 돌렸다는 전언은 충격적이었다.
 
이내 기상 조건을 무시하고 자가용 헬기로 이용하려 한 '높은' 사람이 누구냐에 초점이 맞춰졌다. 구본준 LG전자 부회장과 김을동 의원 이름이 거론됐다. 두 사람은 이날 'LG배 한국여자야구대회' 결승전이 열리는 전북 익산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LG전자의 다급한 해명이 이어졌다. 탑승자 명단 공개를 거부하면서 의혹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현장에서 사태 수습에 전력을 쏟았던 LG전자 관계자는 "지난 주말은 내 생애 가장 길었던 날로 기억될 것 같다"는 소회를 남겼다.
 
이전만 해도 LG 홍보 담당자들은 이른바 ‘오너 리스크’의 부재에 비교적 실적에만 매진할 수 있었다. 유교적 가풍 덕택에 단 한 번 잡음 없이 그룹 분할과 경영권 승계를 이뤄온 점은 경영권을 놓고 형제 간 난투극을 벌이고 있는 여타 기업들 입장에서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우리는 실적 얘기만 안 꺼내면 된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LG 분위기를 대변했다. 윗선의 사고 없이 한시름 놓던 LG마저 예기치 못한 악재에 비상이 걸렸다. 재계로서도, LG로서도, 담당 홍보들로서도 악몽 같은 한 해가 저물고 있다.
 
김기성 산업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
0/300

뉴스리듬

    이 시간 주요 뉴스

      함께 볼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