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석진기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3선 연임이 사실상 확정되면서 향후 유럽 정책의 향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역대 최장기 경기침체와 채무위기에 시달려 온 유럽에 긴축이란 극약처방을 내렸던 메르켈 정부가 앞으로도 이 같은 기조를 이어 갈지가 화두로 떠오른 것이다.
유럽 내부에서 긴축모드를 종료하고 성장정책을 단행해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나, 전문가들은 메르켈 정부 기존의 긴축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더불어 총선이 종료되면서 유럽연합(EU)이 금융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은행연합 논의가 진전될 것이란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메르켈 獨총리 ‘압승’..경제정책 '인정'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사진출처=유튜브>
22일(현지시간) 독일 ZDF 방송의 출구전략 보도에 따르면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독교민주당(CDU)과 기독교사회당(CSU)은 42.3%를 차지했다. 이는 지난 20년래 최고 수준이다.
반면, 제 1야당인 사회민주당은 26.3%를 얻는데 그쳤고 녹색당은 8%, 좌파당은 8.5%를 기록했다.
파이낸셜타임즈(FT)는 메르켈의 국내외 정책과 유로존 위기 관리 능력이 독일 국민들로부터 인정받았다고 분석했다.
지난 2010년 그리스 부채위기가 눈덩이 처럼 불어날 무렵 재정 위기감이 점증되면서 유로존 17개국 중 12개 국가의 정권이 좌우를 막론하고 교체됐으나, 메르켈은 자국 경제 성장에 힘입어 홀로 자리를 보전한 것이다.
독일 경제는 메르켈 총리가 집권한 이후 2010년부터 유로존 경기침체기동안 플러스 성장률을 기록해왔다. 지난 2분기에는 전분기 대비 국내총생산(GDP)이 0.7% 증가한 바 있다. 최근 실업률도 5.3%로 서·동독 통일 이후 역대 최저치를 보이고 있다.
향후 경제 전망도 밝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는 독일이 올해 0.4%, 내년에는 1.8%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유로존 성장률 예상치가 올해 마이너스 0.4%, 내년 1.2%인 것과 대조된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그간의 경제정책으로 우리는 강해졌다”며 “다른 유럽국들 보다 금융 위기를 잘 극복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출구조사 결과가 공개된 직후 메르켈 총리도 “엄청난 결과가 나왔다. 향후 4년도 성공적인 기간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승리를 자축했다.
이번 승리로 지난 2005년 독일 첫 여성 총리가 된 메르켈은 오는 2017년까지 총 12년간 총리직을 수행하게 됐다. 11년간 영국 총리를 지낸 마거릿 대처의 재임 기간을 웃도는 수준이다.
◇연정 구성 불확실..보수연합·제1야당 대연정 '가능'
다만, 메르켈 총리의 3선 연임은 사실상 확정됐으나 현재의 연정 구성을 이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메르켈이 주도하는 보수연합이 의회 다수석을 차지하는 데 실패해 야당과의 대연정(grand coalition)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 연정 파트너인 자유민주당(FDP)이 의회 입성에 필요한 최소한의 지지율 5%에 밑도는 표를 얻으면서 제 1야당인 사회민주당(SPD)과의 연정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 2005년 메르켈은 처음으로 총리에 취임했을 때 사민당과 2009년까지 대연정을 구성한 바 있다. 1957년 이후 단 한 정당도 홀로 의회 다수석을 차지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자민당의 패인으로 개혁 부재를 꼽았다. 자민당은 지난 2008년 8%의 지지를 얻으면서 의회에 입성했으나, 이번 총선 실패로 의석을 잃게 됐다.
반 유럽 정서를 등에 업고 등장한 신생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으로 5%에 가까운 표가 몰리면서 자민당에 몰리던 표심이 분산된 면도 있다.
이 때문에 메르켈 캠프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애매한 상황에 봉착했다. 국정운영 청사진이 다른 정당과의 연정 탓에 국내외 정책 결정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란 우려가 커졌다.
기민당 관계자는 "이번 총선은 앙겔라 메르켈 개인에겐 엄청난 승리이나 연정 구성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나는 웃다가 울음을 터뜨렸다"고 털어놨다.
대연정 가능성이 대두된 가운데 메르켈 총리와 지그마어 가브리엘 사민당 대표는 모두 대연정과 관련한 발언을 삼가고 있다.
BBC에 따르면 메르켈 총리는 “아직 연정 구성에 대해 말하기엔 이른 것 같다"고 언급했고 가브리엘 사민당 대표도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각 정당 대표들은 오는 23일에 모여 연합 정부 구성에 관한 논의를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FT는 보수연합과 제 1 야당인 SPD가 대연정을 구성하는 데 적어도 한 달 이상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긴축 기조 '지속' ..구제금융·은행연합 논의 진전될 것
전문가들은 메르켈의 3선 성공으로 그간 독일 정부가 주도해 온 긴축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앞으로도 부채국에 구제금융을 제공하되 해당국에 긴축을 비롯한 구조개혁 조치를 요구할 것이라는 뜻이다.
물론 좌·우 대연정이 구성되면 의회 내부에서 긴축기조에 반대하는 의견이 나올 수 있으나, 그동안 사민당이 메르켈의 대외 정책에 대체로 동의하는 모습을 보여왔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원만한 합의를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런던의 씽크탱크 오픈유럽의 니나 시크 전문가는 "총선 이후 좌파당을 제외한 모든 독일 정당이 유럽 부채국 구제안에 동의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그리스 추가금융 논의는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메르켈이 유권자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유로존 사수'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 메르켈 총리가 그리스 경제를 나몰라라 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난달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도 그리스에 추가 구제금융프로그램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은행연합(Banking Union)' 설립 논의도 구체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4일 독일은 유럽연합(EU) 재무장관 회의를 통해 범유럽은행정리기구 설립을 용인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치며 이 같은 기대감을 키웠다.
지난해 12월 재정건전성을 강화하기 위해 유럽중앙은행(ECB)에 역내 은행들에 대한 통합 감독권을 부여하기로 EU 재무장관들이 합의했지만, 독일의 반대로 관련 논의는 난항을 겪어왔다.
유로본드 발행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유로본드가 발행되면 유럽 경제 1위국이자 최대 채권국인 독일 국민의 재정부담이 늘어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국민들의 반대에 부딪힐 공산이 크다.
독일 제조업 성장세가 주춤한 가운데 재생 에너지 보조금이 치솟는 탓에 에너지 소비자 가격이 올라 독일 국민들의 불만이 커진 상태다.
메르켈이 유로본드에 회의적인 입장을 내비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최근 메르켈은 "유로본드 발행과 같은 채무분담(debt mutualization) 정책은 유로존 부채 문제에 대한 잘못된 접근"이라며 "독일 유권자들이 유로본드에 반대하는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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