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윤경기자] 엔화 약세 흐름이 어닝 시즌을 맞고 있는 일본 기업들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기 부양책인 '아베노믹스'에 힘입어 엔화는 올해 들어 달러에 대배 15% 가까이 하락했다. 특히, 지난 5월에는 달러·엔 환율이 103엔 대까지 치솟으며, 가파른 엔화 약세 흐름을 보여주기도 했다.
일본 수출 기업들은 이 같은 엔화 약세의 순풍을 타고 수출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도요타자동차와 소니 등의 주요 수출 기업들은 올해 회계연도 1분기(4~6월)에 예상을 뛰어넘는 어닝서프라이즈를 달성했다.
◇日 제조업체들 실적 훨훨.."고맙다 엔저"
일본 기업들이 엔저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일본 매체에 따르면, 지난 2일까지 발표된 668개 상장기업들의 2분기 경상이익은 평균 42%나 급증했다. 일본경기가 반짝 회복세를 나타냈던 지난 2010년 2분기 이후 11분기 만에 처음으로 경상이익률이 40%를 웃돈 것이다.
SMBC닛코증권이 금융업을 제외한 587개 상장사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이들 기업들의 올 1분기 순익은 3조1200억엔으로 전년 동기 대비 2.8배나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고전을 면치 못했던 제조업체들이 대폭 개선된 실적을 공개하는 등 부활의 기지개를 켜고 있다.
<1분기 주요 일본 기업 실적>
지난 2일 공개된 도요타자동차의 1분기 순익은 5621억9000만엔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문가들이 예상한 4415억엔을 크게 웃도는 것으로, 1년 전에 비해 두배 가까이 급증한 수준이기도 하다.
같은기간 닛산자동차의 순익도 820억엔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자동차 업체들의 실적이 개선되면서 철강 업체들도 수혜를 본 것으로 보인다.
신일본제철·스미토모 금속의 1분기 순익은 634억엔으로, 875억엔 손실을 기록했던 1년 전에서 흑자 전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더불어 대표적인 수출업체인 소니의 영업이익은 1년 전에 비해 6배 가까이나 늘어난 363억5000만엔을 달성했다.
◇소비 '청신호'..기업투자도 탄력받나?
기업들의 실적 개선은 그동안 정체돼 있던 소비 회복으로도 연결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소비관련 업체들은 지난해에 비해 개선된 실적을 공개하며, 일본 소비자들의 두툼해진 지갑이 열리고 소비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실제로, 일본 대형백화점 미쓰코시이세탄의 1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8% 늘어난 115억엔으로 집계됐다.
개인들 뿐 아니라 기업들도 비축해 놓은 현금을 풀며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겠다는 신호를 보이고 있다.
카자마 하루카 미즈호리서치 이코노미스트는 "일본 기업들은 지난 2011년 대지진 이후 이후,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현금을 쌓는데 집중해왔다"며 "하지만 올해는 미뤄왔던 투자에 나설 여력이 돼 이 같은 기업들의 성향이 소비확대로 옮겨가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도요타는 설비투자 및 연구개발에 지출을 확대할 방침이라고 지난주 밝히기도 했다. 올해 회계연도에 이 부문에 지난해보다 10% 늘어난 1조8200억엔을 지출하고, 특히, 이중 절반 가까이인 9200억엔은 설비투자에 쓰겠다는 설명이다.
이와 더불어 도요타는 직원들의 보너스도 지난 2008년 이후 최대 수준으로 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아베 내각의 디플레이션 타개 노력에 일본 경기가 살아나고 있고, 이후 다른 기업들의 지출도 줄줄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가하마 도시히로 도쿄 다이치생명연구소 이코노미스트는 "아베노믹스는 기업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있다"며 "도요타가 현금을 푸는 것은 아베노믹스의 미래를 시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일본 주요 매체에 따르면, 올해 회계연도 주요 기업들의 설비투자액은 지난해에 비해 18% 늘어날 전망이다.
◇올해 연간 실적 전망 '맑음'..중·장기 전망은 글쎄?
일본 수출 기업들의 양호한 성적표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기업들이 낮은 환율 수준에 기반해 실적 전망을 산정했기 때문이다.
션 다비 제프리스 스트래지스트는 "대부분의 일본 기업들은 91엔 환율수준에 입각해 실적 전망을 잡아왔다"며 "향후 일본 기업들의 실적이 예상을 웃돌 여력이 충분해졌다"고 평가했다.
이에 일부 기업들은 올해 연간 실적 전망을 잇따라 상향조정하고 있다. 도요타는 지난 2일 올 회계연도 연간 순이익이 지난해보다 54%나 늘어난 1조4800억엔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환율 기준을 달러당 90엔에서 92엔으로 조정하며, 당초 전망에서 1100억엔이나 올려 잡은 것이다.
나카니시 다카키 나카니시리서치 설립자는 "현 수준의 엔화 흐름으로 추정하면 도요타는 예상을 훌쩍 넘긴 올해 실적을 내놓을 것"이라며 "도요타가 올해 실적 전망치를 향후 추가로 상향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소니 역시 환율 예상치를 기존의 90엔 정도에서 100엔대로 높여 잡으며, 올해 매출 전망치를 종전 수치에서 5% 상향된 7조9000만엔으로 제시했다. 다만 영업이익과 순익 전망은 그대로 유지했다.
다만 이 같은 기업들의 실적 호조가 중장기적으로 계속 이어지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공존한다. 기업들의 체질 개선보다는 엔저에 따른 일시적인 실적 호조라는 평가다.
시장 전문가들은 "실제로 소니의 실적이 대폭 개선된 것은 물건을 잘 팔아서가 아니라 환율 효과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쿠스노세 다케오 BoA메릴린치 투자은행 부문 대표는 "일본 기업들의 실적이 엔저에 힘입어 확연한 개선세를 보였다"며 "하지만 이 같은 회복세가 중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을지 여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또 일부 시장 전문가들은 일본 기업들의 최대 시장인 중국의 성장 둔화 우려도 변수로 남아있다고 전했다.
가토 마사루 소니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신흥국의 성장 우려에 따른 통화 약세가 향후 실적에 부담이 될 수 있다"며 "1분기 실적이 호조를 보였지만, 올 회계연도에는 특히 전기 부문에서 영업이익이 당초 기대에 10% 넘게 못 미칠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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