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차현정기자] 주식은 상·하한가가 있지만 채권은 하한가가 없다. 기본적으로 채권은 풋옵션, 주식은 콜옵션이기 때문이다. 주식이 어떤 리스크에 의해 일정한도 이상 손실 볼 일이 없는 반면 채권은 자칫 ‘제로(0)’가 될 정도로 아래쪽 리스크가 엄청나다. 채권 ‘몰빵’ 투자는 그래서 위험하다.
“펀드의 기본은 분산투잡니다. 진부할 수 있겠으나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투자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선택의 폭은 다양해야겠죠.”
문동훈(사진) KB자산운용 채권운용본부장은 19일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고위험 회사채에 투자하는 하이일드 펀드 시장 육성이 더딜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지적했다.
◇美 하이일드채 담은 합성 ETF.."출격 준비"
펀드편입 회사채 종목 수가 너무 적다는 게 그 이유다. 시장의 폭이 좁다보니 기본인 분산투자는 실상 어려운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미국 하이일드 펀드를 보면 편입 종목 수가 수백 가집니다. 하지만 국내는 회사채 발행 종목 수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러다보니 펀드에 담긴 종목의 비중이 커지면서 회사 하나 망가지면 펀드의 존폐 자체가 우려되는 겁니다.”
현재 KB자산운용은 미국 하이일드 채권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합성 상장지수펀드(ETF) 출시를 앞두고 시기를 조율 중이다.
“여전히 시장엔 원화채권 벤치마크(BM) 펀드가 주류지만 탈출구, 고객에 선택을 제시할 수 있는 대안 마련에 나설 겁니다. 대안상품의 확대 추세는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봅니다.”
국내 자산운용사 가운데 가장 일찌감치 채권 ETF 상장 준비에 착수했던 KB자산운용이다. 그 결과 2009년 국채 ETF 상장에 이어 잇달아 2010년 회사채 ETF 상장에 성공했다. 국채 ETF의 경우 아직은 개인 투자자들의 참여가 미지근하지만 만기보장수익률(YTM)이 더 높다는 점에서 회사채 ETF에 대한 개인 투자자들의 참여는 최근 꾸준히 느는 추세다.
해외채권형 펀드 투자에 대한 관심도 소홀치 않는다고 했다.
“과거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주식형펀드에서 손실이 발생하면 ‘물어내라’며 소송을 거는 투자자들도 있었더랬죠. 요즘은 그런 일 없잖습니까. 투자 시간과 반복된 학습을 통해 손실과 이익을 감지하는 매카니즘을 터득한 영향입니다.”
어떤 금융 상품이건 좋은 시절과 나쁜 시절을 모두 거치면 시장의 본격적인 자산 클래스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는 게 문 본부장의 설명이다. 주식형펀드에 대해 그렇듯 언젠간 해외채권형펀드 가입 시기와 미뤄야 할 시기를 저울질할 수 있게 될 것이란 판단에서다.
◇팀 어프로치 전략이 주효.."동물적 감각은 없다"
KB자산운용의 채권운용북(Book) 사이즈는 총 15조원. 이 가운데 파생·혼합형 등을 제외한 순수채권은 5조9000억원 정도다.
총 11명의 운용역은 매크로팀(1팀)과 크레딧팀(2팀), 상대가치 전략팀(3팀) 등 세 개의 팀으로 분류된다. 1팀이 주로 매크로와 머니마켓시장 상황에 주력한다면 2팀은 크레딧물을, 3팀은 상대가치 평가를 비롯한 현·선물간의 괴리, 금리스왑(IRS)과 채권 커브에 대한 의견 제시를 주로 한다.
“채권운용 전략팀은 따로 두지 않았습니다. 다만 매니저들의 직접적인 의견을 취합합니다. 소수의 순수 셀 사이드 애널리스트를 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고 판단해섭니다. 구성원 전체가 일관된 뷰에 따르는 ‘팀 어프로치 방식’에 의해 리스크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KB자산운용 채권운용본부는 이 같은 방식을 2000년부터 계속 고수해 왔다. 회사 뷰에 대한 개인 불만은 매일 있는 회의에서 풀어내기 때문에 갈등은 없다고 한다. 매니저별로 롱·숏 운용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개인의 에러 발생 확률은 적다고 했다. 운용역이 바뀌거나 운용역 규모에 변동이 생겨도 꾸준히 하우스 컬러를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이라고도 밝혔다.
“꾸준히 가자는 게 KB자산운용 채권운용본부의 모톱니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고 하죠. 뛰어나면 반드시 드러나게 돼 있습니다. 일부러 육성하지 않아도 실력으로 입증되면 충분히 스타플레이어는 나오게 돼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개인의 동물적 감각은 믿지 않는다는 문 본부장이다. 그는 팀원들에게 늘 묻는다고 했다. 동전던지기보다 더 좋은 확률로 맞출 자신이 있느냐고.
“팀원들은 입을 모아 ‘없다’고 말합니다. 미래를 맞출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무엇보다 리스크 리턴에 대한 관리는 과해서 나쁠 게 없지요.”
1988년 KB자산운용에 입사한 그는 여의도 경력 25년 가운데 20년을 채권시장에 몸담았다. 되돌아보면 채권시장은 엄청난 변화와 발전이 있었다고 문 본부장은 말한다.
“과거 원시적인 ‘손 계산’을 통해 일드(Yield)를 읽고 순익을 내던 때가 있었죠. 국채선물시장 저평이 100틱이던 시대였습니다. 국고채 전문딜러(PD)제도가 시작되고 시장이 선진화돼가는 과정을 보면서 ‘세월이 지나는구나’ 했더랬죠.”
우리나라만큼 ‘갖춰진’ 시장은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권에 없다고 했다.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선 더뎠지만 아시아 내 상대적으로 발전에 속도를 냈던 채권유통시장은 속도만큼이나 효율화도 뛰어나다는 게 문 본부장의 설명이다.
“불투명한 장외시장이라고들 하지만 ‘사자·팔자’ 호가 스프레드가 좁고 거래량이 높다는 점에서 채권시장 참가자들이나 당국이 모두 인정하고 자랑할 만합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발전돼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반기 채권운용 관건은 '리스크 관리'
20년 채권베테랑이 보는 향후 채권전망이 궁금했다.
“채권 투자는 여전히 유망하다고 생각합니다. 10년은 더 갈 것으로 보고 있어요. 일단 우리나라의 4% 성장은 어렵다고 보는데 잘해야 3%, 그렇지 않으면 2%대 성장에 머물 수 있는 겁니다. 노령화 문제도 간과할 수 없죠. 기준금리 2.5%가 과거 4~5년 전엔 부양 금리 수준일지 모르지만 2~3년 뒤에도 과연 부양 금리가 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중립에 가까운 금리 수준일 겁니다.”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통상 매 10년마다 1% 가까이 빠진다는 점은 회의가 드는 배경이라는 문 본부장이다.
하반기 채권운용 전략의 관건은 ‘리스크 관리’라고 말했다.
“지난봄까지 롱(매수) 스탠스를 유지하다가 보수적으로 바뀌었습니다. 테이퍼링을 얘기하고 있고 전반적인 머니플로에 영향을 주는 게 아닌지 지켜봐야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이머징이 흔들리면 어떤 영향을 받을지, 정부의 외환규제 3종세트와 외환에 흔들릴 가능성에 대비해야 하는 거죠.”
여기에 하반기 한국은행 전망대로 경제가 반등할 수 있을지, 국채 발행 규모와 통안채 발행증가분이 얼마나 될지 등등 명확치 않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금부터 9월까지가 방향을 결정한 중요한 열쇠가 될 겁니다. 당분간은 불확실성이 줄어들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다가 시간이 가며 방향이 잡힐 겁니다. 그때가 되면 포지션을 잡을 생각입니다. 9월 이후 금리 안정, 진정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끝으로 투자자들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채권을 통해 주식만큼 벌 생각은 애초부터 해선 안 됩니다. 풋옵션을 사들인다고 생각하는 게 옳습니다. 다만 경제성장 속도가 느리면 채권투자 이익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겠죠.”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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