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차현정기자] “그야말로 패닉 상탭니다. 어느 선에 멈추려는 것인지 앞이 보이지 않네요.”(국내 A증권사 채권 딜러) “주식시장과 달리 채권은 하한가가 없습니다. 거침없이 추락하다보면 결국 버티지 못한 채 손절의 기준도 없이 손절물량을 내놓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국내 B증권사 채권담당임원)
증권사 채권 담당자들이 ‘패닉’에 빠졌다. 이른바 ‘버냉키 쇼크’가 채권시장을 강타하면서 ‘134조원 채권 폭탄’을 든 증권사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2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62개 증권사들이 보유한 채권규모는 3월말 현재 고유계정 기준 134조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5대 대형증권사의 평균 채권보유 규모는 각 10조원이 넘는다.
한 국내 증권사 채권 운용역은 “채권 북(Book) 크기는 리스크 크기”라며 “금리 상승기 대비 국채선물을 얼마나 매도해뒀는지 등의 헤지(Hedge)전략 유무가 관건이 될 것”으로 진단했다.
6월 반기결산을 앞둔 대형증권사의 고민이 깊어지는 대목이다. 보유 규모가 클수록 채권평가 손실 우려는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이 채권 보유 규모를 늘리게 된 것은 단기성 수신 상품인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상품을 내놓기 시작한 지난 2009년부터다. 증권사의 CMA 수요가 늘면서 환매조건부채권(RP) 운용 규모도 덩달아 커졌다. 여기에 투자은행(IB) 인가 기준 충족을 위해 쌓아둔 자기자본 3조원으로 채권 보유규모를 늘린 것도 그 배경이 됐다.
미국 양적완화(QE) 조기 종료 가능성은 혼란의 원인. 이틀째 국채 금리가 급등(가격 급락)하면서 증권사의 순익과 건전성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단기간 급등에 따른 부담감은 시장의 대응을 더디게 하는 요인이다. 급하게 오른 금리에 대한 반락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장기투자기관이 적극적으로 매수에 나설 이유도 없을 뿐 아니라 진정국면을 조성할만한 트리거 또한 없다는 게 시장참가자들의 평가다.
당분간 채권시장 전반의 혼돈 또한 우려된다. 채권시장이 위축된 만큼 채권 보유 비중이 높은 증권사들이 이달 말 반기결산과 함께 채권규모를 축소, 시장에 한꺼번에 손절매를 하게 되면 가늠하기 어려운 시장 충격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국채선물시장에서 외국인 매도 국면이 이어지는 상황에 현물시장에서도 외국인 이탈 조짐에 대한 의구심은 짙어지고 있는 가운데 증권사의 손절물량이 쏟아지면 시장이 공감할만한 가격형성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손실한도가 정해진 은행이 지금과 같은 가파른 금리 상승 국면에서 자동매도에 나설 경우 시장 악순환은 더 빠르게 전개될 것이란 진단도 나온다.
상황이 이러자 이날 대부분 증권사 채권본부는 비상전략회의를 열고 위기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예상보다 큰 버냉키 충격에 대응하기 위한 시나리오를 마련하고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데 집중한 것이다.
C증권사 채권담당 임원은 “아직 시장에 손절물량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건 지금이 최악은 아니라는 뜻이다. 바닥을 쳐야 되돌림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본다”며 “지금으로서는 섣부른 포지션 청산보다는 관망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대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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