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없다'는 한국산 맥주, 홍콩에서 1위된 비결은?
2013-04-08 15:44:16 2013-04-08 15:47:00
[홍콩=뉴스토마토 정헌철기자] '한국맥주는 대동강 맥주보다 맛이 없다.'
 
올 초 한 외신의 이같은 보도로 한국 맥주는 망신과 함께 기술력을 의심받았다.
 
맥아를 10%만 넣어도 맥주로 인정해주기 때문에 맥아의 비율이 떨어져 맥주의 깊은 맛이 없고, 2개사(오비맥주, 하이트진로(000080))가 국내 시장을 양분하고 있어 맥주에 발전이 없다라는 분석 보도도 잇따랐다. 하지만 맥주회사들은 억울하다고 했다.
 
"맥아도 70% 이상 들어가고 기술력 역시 여느 글로벌 맥주사와 차이가 없을 뿐 아니라 일부는 더 높고, 다만 한국인의 식음료 문화와 기호로 라거 중심의 맥주만을 소비자들이 기억하고 있을 뿐"이라며, 해명을 했지만 당시 공허한 외침으로 묻혔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1위 맥주 기업 오비맥주는 자존심을 걸고 기술력의 근거로 '블루걸'이란 낯설은 맥주를 소개했다.
 
블루걸은 오비맥주가 지난 1988년부터 젭센그룹과 계약을 맺고 제조업자설계개발생산(ODM) 방식으로 수출하고 있는 프리미엄 맥주 브랜드다.
 
ODM은 제조업체가 독자적인 기술력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현지인의 기호와 입맛에 맞는 제품을 직접 개발해 해외현지 유통업체에 공급하는 수출형태다. 
 
주문자의 요구에 의해 제품을 만드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보다 높은 기술력을 필요로 한다.
 
오비맥주의 기술력이 글로벌한 홍콩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을 뿐 아니라 맥주 생산 기술력이 세계에서 통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증거로 내세운 것이다.
 
홍콩 취재 결과 실제로 '블루걸'은 홍콩에선 '최고의 맥주 브랜드'로 군림하고 있었다.
 
일반 맥주들에 비해 가격이 50%나 비싼 프리미엄급이지만 단순 판매량만으로도 독보적인 시장점유율 1위다. 2012년 9월 말 현재 22.4%의 점유율로 홍콩 맥주 시장에서 6년 연속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2위에 오른 브라질 맥주 '스콜(Skol)'과는 10%포인트가 넘는 격차다. 영국과 독일, 덴마크, 네덜란드, 일본, 중국, 남미 등 세계 각국의 글로벌 맥주브랜드들이 경쟁을 펼치고 있는 홍콩시장에서 한국 기술로 만든 국산맥주가 현지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셈이다.
 
블루걸이 처음부터 홍콩 맥주 1위가 된 것은 아니다. 1988년 수출 첫해만 해도 시장점유율 1~2% 정도의 군소브랜드였으나, 2007년 처음으로 '산미구엘(San Miguel)'을 제치고 14%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홍콩 맥주 시장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후 2위와 격차를 계속 벌려가며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오비맥주의 제조 기술력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증거로 삼을만하다.
 
블루걸의 약진은 홍콩시장이 세계맥주의 격전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
 
홍콩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 8월 현재 홍콩 전체 주류시장은 연간 1500만 상자(500ml 20병 기준) 규모로 주종 별로는 맥주가 77.9%로 가장 크고 이어 와인 19.5%, 위스키 1.0% 순으로 형성돼 있다.
 
가장 큰 시장을 차지하고 있는 맥주시장은 홍콩 현지에서 생산되는 '산미구엘(San Miguel)'과 '블루 아이스(Blue Ice)' 정도를 제외하면 나머지 78%가 다국적 수입제품들로 구성돼 한국 맥주 시장과는 경쟁상황이 판이하다.
 
이런 가운데 '블루걸'은 유수의 글로벌 브랜드들을 제치고 홍콩의 '국민맥주'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년간 오비맥주가 홍콩으로 수출한 '블루걸' 물량은 411만 상자(500ml 20병 기준). 이는 홍콩인구 710만명 중 성인인구를 600만명(2011년 홍콩 정부통계자료)으로 봤을 때, 성인 1인당 한 해 평균 500ml 짜리 '블루걸' 14병 정도를 마신 셈이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블루걸'은 영국의 영향으로 다른 아시아권 국가에 비해 진한 맥주 맛을 선호하는 홍콩 시장의 특성에 맞춰 개발한 필스너 계열의 라거 맥주"라며 "쌉쌀하면서도 시원한 청량감과 부드러운 끝 맛으로 폭넓은 수요층을 확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국산맥주의 해외 수출은 꾸준한 증가추세다. 해외 수출은 대부분 '블루걸'과 유사한 형태의 제조업자설계개발생산(ODM)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블루걸' 수출 25주년 기념행사에 참여한 오비맥주 해외사업본부 박철수 전무는 "국내에서 제조업자개발생산 방식으로 수출된 맥주가 해마다 늘고 있는 것은 우리의 맥주 제조기술력과 품질관리능력을 국제무대에서도 인정하는 매우 긍정적인 신호"라며 "최근에는 'OB골든라거' 등 기존 브랜드 제품에 대한 해외 반응도 좋아지고 있어 미개척 시장을 대상으로 한 자체 브랜드 수출도 본격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한국인의 변하는 기호에 맞는 새로운 맥주를 출시, 이같은 논란을 잠재울 필요가 있다"며 "지금이 기술력이라면 '제2의 블루걸'도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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