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 '복수' 말고 '합리적 해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이 권하는 합리적 대책들
2013-02-12 16:12:57 2013-02-12 16:15:19
[뉴스토마토 최봄이기자] 지난 설연휴기간 층간소음 문제로 살인과 방화사건까지 일어나면서 이웃간 갈등 해소 방법는 물론 근본 대책 마련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국민의 65%가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 거주하면서 층간소음 문제는 이미 해결이 사실상 불가능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상태다. 이웃의 이해를 구하지 못해 혼자 속을 끓이거나 참다 못해 우퍼(저음 전용 스피커) 등을 '복수 도구'로 동원하는 경우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환경부산하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www.noiseinfo.or.kr)나 비영리기관인 주거문화개선연구소(www.noisestop.co.kr) 등 전문기관에 의뢰하면 갈등을 체계적으로 중재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들 기관은 의뢰인 상담 후 상황별 대처방법을 소개하고, 필요하다면 현장방문을 통해 소음측정, 갈등 중재를 해 준다.
 
◇층간소음 민원해결 절차(자료=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
 
◇합리적 해법은 역시 대화·타협'..전문기관 도움받으면 '수월'
 
전문가들은 층간소음을 인식하고도 이를 방치할 경우 신경쇠약, 수면장애 등에 시달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주거문화개선연구소가 분류한 민원인의 단계별 심리상태에 따르면 층간소음을 겪는 사람들은 초기 이웃과 관리사무소에 정당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수준에 그친다.
 
하지만 문제가 악화될수록 민원인은 상대방이 자신을 고의적으로 무시하거나 괴롭히기 위해 소음을 낸다고 착각하기 시작한다. 말기 단계에 이르면 극도의 실망과 분노감에 살인충동을 느끼거나 폭력적인 행동을 나타내기도 한다.
 
◇단계별 민원인의 심리상태(자료=주거문화개선연구소)
 
이 단계에서 복수도구를 사용하면 생산적인 갈등 해결은 불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이웃 간 불화만 깊어질 가능성이 크다. 경찰을 부르는 방법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
 
악기, 라디오, 텔레비전 등 소음을 지나치게 크게 내 이웃에 방해를 주는 '경범죄'를 적용할 수 있지만 이를 입증하기 어렵고, 이웃에 '지나치게 예민한 주민'이라는 인식만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민사소송은 층간소음의 고의성을 증명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결국 층간소음 갈등을 가장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이웃 간 대화를 통해 '서로 합의할 수 있는 규칙'을 만드는 것이다.
 
층간소음 문제 해결의 첫 단추는 층간소음의 원인과 발생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대부분 소음은 위층에서 발생하지만 옆집이나 아래층에서 발생하는 경우도 있어 소음측정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이웃사이센터가 지난해 3월부터 9월까지 접수한 민원 사례 중 층간소음이 위층에서 발생한 경우는 76.2%였고 아래층에서 발생하는 경우도 16.4%에 달했다. 옆집 등 기타 지역에서 발생하는 경우는 7.4%였다.
 
(자료=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
 
◇전문가 현장조사 후 소음원별 '맞춤식 처방'
 
전문가의 현장조사를 통해 건축주나 시공사의 부실시공 책임이 인정된다면 정신적 피해보상과 건물보수비용을 요구할 수 있다.
 
실제 경기 광주시 오포읍 한 아파트 주민 100세대는 시공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시행사가 주택건설기준을 위반한 점을 인정받았다. 부산 영도구 한 아파트 주민 2명이 시행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도 소음 발생 정도가 주택건설기준(경량 충격음 58dB)을 초과한 점이 인정돼 총 600여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온 바 있다.
 
층간 소음원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발걸음 소리'를 줄이기 위해서는 서로 합의할 수 있는 시간표를 만드는 것이 좋다.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시간대를 정하거나 주로 노는 공간을 한정하도록 유도하면 비교적 쉽게 이웃의 협조를 구할 수 있다. 성인의 발걸음 소리는 소음을 흡수하는 매트나 카페트, 슬리퍼 착용을 통해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이웃과 원만한 관계를 맺어놓는 것이 중요하다.
 
피아노 등 악기연주 소음으로 인한 피해는 합의를 통해 연주 시간을 제한하거나 방음공사를 유도하는 방법으로 줄일 수 있다. 방음공사 비용이 10㎡(3평) 기준 보통 300만원 정도 들기 때문에 강압적인 요구보다 피아노 소음이 다수에게 피해를 준다는 점을 들어 설득하는 것이 좋다. 또 소음이 발생하는 통로를 정확히 파악해 차단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소음측정을 받아야 한다.
 
리모델링 공사로 거실과 방을 확장하거나 바닥재를 바꾼 후 소음이 더 커졌다는 민원도 잦다. 리모델링 공사는 입주민 60%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입주민 동의가 없는 공사는 중단을 요구할 수 있다.
 
민원인은 또 리모델링 업체명과 공사허가 자료를 요청할 수 있고 시·구청에 리모델링 업체의 자격여부를 문의할 수 있다. 불법적인 리모델링 공사가 인정된다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층간소음은 '공동체의 문제'
 
층간소음을 예방하기 위한 공동체 차원의 노력도 중요하다. 층간 소음은 세대 간 문제가 아닌 공동체 전체의 문제라는 인식 하에 공동규약을 만들어 운영하는 공동주택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대구의 녹원맨션은 지난해 9월 층간소음 관리 시범아파트로 지정돼 밤 10시부터 청소기, 세탁기 등의 사용을 금지하고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 샤워와 배수를 금지하는 등 7개 규약을 마련했다. 설명회와 설문조사, 실태조사, 공청회 등을 거쳐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정한 것이다.
 
그 결과 관리규약 마련 전 한 달에 39건 가량 발생했던 층간소음 민원이 5건으로 줄어드는 성과가 있었다.
 
차상곤 주거문화개선연구소장은 "현장에서 부모들이 밤 10시 이후에는 뛰지 않도록 가르치는 등 층간소음 에티켓이 세대 간 전파되는 모습도 지켜볼 수 있었다"고 전했다.
 
◇대구 녹원맨션 층간소음 관리규약 제정을 위한 공청회 모습(자료=주거문화개선연구소)
 
층간소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면서 관련 규제도 강화될 예정이다. 국토해양부는 12일 아파트 층간소음 기준을 강화해 이르면 내년 3월부터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까지는 바닥두께 기준(21㎝)과 바닥충격음 기준(경량 충격음 58dB, 중량 충격음 50dB) 중 하나만 만족해도 시공 승인이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두 기준을 동시에 만족해야 한다. 국토부는 기존에 건설된 아파트에 대해서도 주거생활 소음 기준을 마련해 층간소음 분쟁을 최소화해 나갈 방침이다.
 
차 소장은 "교육이나 시범사업을 실시한 현장에서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며 "제도개선과 함께 층간소음에 대한 인식개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차 소장은 이어 "층간소음이 발생하면 개별적으로 항의하거나 '우퍼' 등을 이용해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전문기관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구하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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