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원정기자] "여러분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문제에서 완벽한 중립을 견지할 수 있나? 공정성 규제가 그런 것이다. 법원이 표현의 자유를 두텁게 보호하고 있는 상황에서 옳고 그름에 대한 방송의 완전한 중립을 요구하는 것."
방송에 대한 '공정성 규제'를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방송법 32조나 방송심의 규정이 적시하는 '공정성' 혹은 '공공성' 개념이 지나치게 추상적인만큼 개선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민주통합당 유승희, 진선미, 최재천 의원실이 공동으로 주최한 6일 토론회는 공정성 규제가 안고 있는 문제를 공론에 부치는 자리였다.
토론의 계기는 CBS 라디오 <김미화의 여러분>에 대한 심의 결과와 이에 불복해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비롯됐다.
지난 1월5일 전파를 탄 이 방송은 정부의 축산정책과 경제정책에 관한 인터뷰를 전하다 심의대상에 올라 재허가 심사 때 감점 처리되는 '주의' 조치를 받았다.
문제가 된 표현은 우석훈 2.1 연구소장의 발언 가운데 "축산을 하지 말라는 게 정부 방침인 것 같아요"라고 한 부분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심의위)가 객관성, 공정성 위반을 지적하며 제재를 의결했고, 재심에서 같은 결정이 나오자 CBS는 이를 법원의 판단에 맡겨 놓은 상태다.
이 사건은 공정성 규제의 위법여부를 가르는 첫번째 판례로 기록될 참이다.
◇"양적 균형으로 공정성 담보되지 않아"
공정성 규제에 대한 문제 제기는 시사프로그램, 그것도 지상파방송의 '의견 표명'을 어느 선까지 용인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서 출발한다.
이와 관련해 발제를 맡은 박경신 고려대 교수(법학)는 기계적 균형에 함몰된 공정성 심의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를 설명했다.
찬성과 반대 견해를 무 자르듯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고 시사프로그램은 날로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스톱워치를 켜놓고 초단위로 '양적 균형'을 얼마큼 맞췄는지 일일이 따져보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방통심의위 심의위원을 겸하고 있는 박 교수는 이에 대해 "매우 기이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공정성을 심의하는 것은 여러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다"며 "양쪽 의견을 양적으로 맞추는 것이 법이 위임한 심의 방식은 아닐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견 표명은 의견으로서 다뤄져야 하지 않나"
토론자로 나선 우석훈 소장은 보다 본질적 문제를 언급했다.
그는 "방송이 공적 자원을 쓰고 있다는 건 상식에 속한다"며 "그 공론장에서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정신이 행정기관에 의해 맘대로 침해되도 되는 걸까"라고 반문했다.
우 소장은 의도치 않게 심의 단초를 제공한 자신의 인터뷰 발언을 들어 "난 '같아요'라고 말했을 뿐 단정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이는 해석의 영역인데 이에 대해 공정성을 문제삼을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진리라고 이야기할 때 여러 속성이 있는데 그 같은 복잡성에 대해 어떻게 양적 균형을 맞출 수 있느냐"는 질문도 같이 던졌다.
박경신 교수 역시 "CBS <김미화의 여러분>에서 문제가 된 부분은 견해 차에 따른 차별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CBS에 대한 심의 내용에 대해서도 "방송이라는 공적 자원을 국민의 소통공간으로 제공하면서 동시에 정부 입장에 반하는 내용을 갖고 있는 측은 이용 못하게 한 것과 다를 없는 결과"라고 지적했다.
◇제도 개선 주목..심의위원 자질도 돌아봐야
그렇다면 공정성 규제를 하지 말아야 할까?
또 지상파방송의 논평에 무한정 자유를 줘야 할까?
참석자 다수는 "그건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방송이 공적 자원을 쓰고 있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이라는 이유에서다.
시민사회도 심의는 방송사의 자율규제로 대체할 것을 요구해왔다.
이는 공정성이란 방송 품질을 내부에서 자발적으로 제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행정기관의 공정성 심의가 외부에서 강제되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윤성옥 경기대 교수는 공정성 규제 조항에 명확한 요건을 추가할 것을 제안했다.
윤 교수는 "프랑스 역시 스톱워치로 양적 균형을 재는 '무식한 방식'을 쓰고 있고 미국도 선거기간 형평의 원칙을 강조하지만 전체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라 뉴스 등 예외조항을 두는 식으로 심의내용을 구체화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 규정은 양적 균형인지 질적 균형인지조차 명확치 않다"며 "단편적으로 심의하지 말고 연속물인 경우 전체적으로 심의 할 수 있도록 하자"고 밝혔다.
'공정성 심의' 문제 외에 '심의위의 공정성'을 같이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세옥 피디저널 기자는 "한 심의위원이 비슷한 안건에 대해 다르게 판단하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며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건 심의 자체가 공정한가 하는 부분도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정성 규제의 본질을 파고드는 고차원적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정치심의' 문제부터 우선해결하는 게 순리라는 설명이다.
윤 교수 역시 "실질적으로 방송이 어떻게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을까, 사회적 균형은 어떻게 담보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수준 높은 논의를 하고 싶다"며 "문제는 그 전단계조차 지금 안 된다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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