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약 살인', 피해자가 알고 마셨다면 살인죄 안돼
대법, "피해자 음료수로 오인했다고 믿기 어려워"
2012-05-28 23:57:37 2012-05-29 00:01:12
[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피해자에게 농약을 음료수라고 속여 따라준 경우라도 피해자가 농약임을 알고 마시고 숨졌다면 살인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교제중이던 여성에게 농약을 먹여 숨지게 한 혐의(자살방조)로 기소된 이모씨(51)에 대한 상고심에서 살인죄를 적용해 유죄를 인정한 원심을 깨고 다시 판단하라며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고 28일 밝혔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마신 그라목손인티온은 제초제로 사용되는 맹독성농약으로서 사람이 잘못 섭취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제조단계에서 진한 청록색을 띄고 매우 역겨운 냄새가 나도록 만들어져 있어 옅은 갈색을 띄는 옥수수수염차와는 색깔이 확연히 구별된다"며 "피해자가 이를 음료수로 오인하고 마셨다고는 선뜻 믿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피해자는 오래 전부터 농사를 지어왔고 농약을 마신 직후 직접 112로 전화를 걸어 구호를 요청하면서 '그라목션 먹었어요'라고 정확히 이야기 한 점 등에 비춰보면 피해자는 이 농약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그릇에 담긴 것이 농약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마셨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어 "원심이 채용한 직접적이고 유력한 증거는 신빙성이 의심스럽고 살인 범행이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다"며 "살인죄의 유죄를 인정한 원심판결은 논리와 경험법칙을 위반해 합리적인 자유심증의 범위와 한계를 넘어서 사실을 인정한 위법이 있다"고 판시했다.
 
문씨는 자신과 교제 중인 여성이 이혼한 남편과 계속 만나며 성관계를 갖는 등 관계를 정리하지 않자 불만을 품고, 옥수수수염차 피티병에 들어있던 농약(그라목손인티온)을 흰색 사기 그릇에 따라줘 먹게 함으로써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1, 2심 재판부는 문씨가 살해의 고의로 농약을 줘 죽게 한 만큼 살인죄가 인정된다며 징역 5년을 선고했으나 문씨는 "피해자가 농약임을 알고 스스로 마신만큼 살인죄가 아니다"고 주장하며 불복, 상고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