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업계 "거래소, 해외기업 IPO는 하지말라고?"
2012-04-03 15:27:40 2012-04-03 15:32:04
[뉴스토마토 김용훈기자] 부실한 해외기업의 국내 증시 상장을 막기위한 한국거래소의 방침에 대해 증권업계가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거래소가 마련한 방안이 상장 주관사를 맡은 증권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으로만 꾸려져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때문에 증권사들은 이대로라면 앞으로 해외기업 국내증시 상장업무는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3일 한국거래소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거래소는 지난달 1일 이후 상장예비심사 접수를 신청한 해외기업의 IPO 주관사를 맡은 증권사들에게 해당기업의 공모물량의 10%를 인수하도록 했다. 인수물량은 6개월 이상 의무 보유해야 한다. 
 
거래소는 더불어 해외기업의 상장 후에도 상장 주관사에게 2년 동안 공시대리인 역할을 수행하도록 강제했다.
 
이는 앞서 거래소가 국정감사에서 해외 상장사에 대한 국내 투자자보호가 미흡했다는 지적을 받은데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거래소가 낸 사고를 증권사가 뒷감당" 
 
거래소는 지난해 상장한 중국고섬(950070)를 싱가포르 증시보다 한 시간 가량 늦게 거래정지를 시켜 문제가 됐다.
 
중국고섬은 싱가포르 증시에 상장된 기업으로 지난해 1월 대우증권(006800)이 국내 증시에 2차 상장 형태로 들여왔다. 하지만 회계장부상 오류가 발생하면서 현지에서 먼저 거래가 정지됐다.
 
국정감사 당시 거래소는 중국고섬에 대한 뒤늦은 조치로 투자자에 손실을 입혔다는 지적을 받았다. 특히 당시 홍콩에서 열린 기업설명회에 참석한 국내 기관투자자가 현지 시장 거래정지 사실을 미리 알았다는 점도 구설수에 올랐다.
 
대다수 증권사들은 중국고섬 사태의 후속 조치로 상장 주선인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입장이다. 중국고섬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대우증권과 거래소에 있음에도 나머지 증권사에 피해의 책임을 떠넘긴다는 것이다.
 
A증권사 IB관계자는 "당장 500억원 규모의 IPO를 진행한다고 가정할 때 공모물량의 10%는 50억원에 해당한다"며 "만약 해당기업의 주가가 하한가를 두 번만 맞아도 15억원 가까이 날리게 되는 건데 이는 왠만한 증권사 한 부서의 손익분기점(BEP)과 맞먹는다"고 토로했다.
 
국내기업 IPO와의 형평성이 맞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B증권사 IPO팀장은 "국내기업 IPO엔 상장주관사에 특별한 책임을 부여하지 않으면서 해외기업에 대해서만 이런 책임을 부과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며 "세계 어디를 봐도 이런 사례는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거래소 측은 증권업계의 이런 반응이 무책임하다는 입장이다.
 
거래소 상장제도팀 관계자는 "증권사 스스로 하한가를 두 번 맞고 15억원을 잃을 것이라고 가정할 기업이라면 데려오지 않는 것이 맞다"며 "대형사의 경우 인수물량 10%에 대한 부담은 크지 않다"고 반박했다.
 
◇"거래소 조치는 비현실적" vs. "증권사가 알아서" 
 
상장주관사가 국내 공시대리인을 2년 간 맡도록 한 조치도 '편의주의적 발상'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거래소가 해당기업에 대해 의무적으로 국내 사무소를 설치토록 하는 방안이 더 현실적임에도 증권사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주장이다.
 
C증권사 IB관계자는 "각 분기보고서와 사업보고서만 해도 한 해에 네 차례이고 수시공시 등을 고려하면 해당국적의 언어를 유창하게 하는 직원을 뽑아 해당기업의 공시업무만 담당하도록 하라는 이야기"라며 "이는 비현실적인 요구"이라고 말했다.
 
B증권사 IB관계자는 "해당국가의 언어 능통자를 채용해 이를 수행할 고민도 해봤다"며 "하지만 낯선 금융용어들이 많아 업계 관계자가 아닌 이상 해당 언어만 알고 있다고 공시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거래소는 증권사 측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입장이다.
 
거래소 상장제도팀 관계자는 "증권사가 공시 업무에 부담을 느낀다면 해당기업에 한국사무소를 설치하도록 설득하면 될 일"이라고 맞받았다. 
 
때문에 업계 일각에선 코스닥 소속부제와 흡사하게 '외국시장부'를 별도로 분류해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해외기업임을 공표해 투자자 스스로 투자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자는 설명이다.
 
반면 거래소는 앞서 문제를 일으킨 해외기업들에 대해 투자자들이 외국기업이란 사실을 모른 경우는 극히 드물다며, 외국시장부 설치가 해외 상장사에 대한 투자자 보호 방안이 되기는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거래소가 마련한 방안이 시행된 이후 한 달 동안 지금까지 상장예심을 청구한 해외기업은 단 한 곳도 없다.  
 
A증권사 IB관계자는 "해외IPO 전담팀을 두고 있는 모 증권사의 경우 그간 국내 증시 상장 계획을 세워놨던 해외기업을 연이어 돌려보내고 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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