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나연기자] 전혀 의도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그 의도하지 않은 일 때문에 소속한 정당이 와해분위기로 흐르고 있다.
한나라당 고승덕 의원이 칼럼을 게재했던 12월14일과 그 이후 보름간은 결코 '폭로'가 아니었다. 그저 정치인이 쓰는 정치판 이야기로 흘러가버렸다.
그런데 1월3일 한 종편 방송에서 고의원을 인터뷰하면서 12월14일에 쓴 칼럼 내용을 캐물으면서 '휴화산'이 '활화산'이 되어 버렸다. 이어 4일부터 모든 언론에서 '고승덕 폭로'로 규정하면서 사태는 일파만파로 흐르고 있다.
한나라당을 그로기 상태로 몰고간 2008년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은 고 의원을 '내부고발자'로 만들기도 했지만, 정작 고 의원은 곤혹스럽기 그지 없다는 표정이다.
9일 재차 기자회견을 자청한 고 의원은 '폭로'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폭로'와 '폭로가 아닌 경우'는 이야기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폭로일 경우엔 온갖 정치적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로 몇일 동안 '고승덕 폭로'는 친박과 친이, 비대위와 기존세력 간의 권력투쟁의 일환으로 해석되었다.
고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 달 전 모 경제지 칼럼을 9회에 걸쳐 쓰는 와중에 정치발전을 바라면서 쓴 것"이라며 "폭로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는 비상대책위원회와의 공천을 둘러싼 거래설 등이 난무했던 정치권의 확대 해석을 반박하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그동안 그의 폭로가 공천에서의 탈락을 우려해서 혹은 친이계에서 친박계로 갈아타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고 의원이 이날 갑작스런 기자회견을 연 것은 정치적 음모론을 잠재우고 한나라당에 불어닥친 악재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그는 "당시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되기 전이었고, 재창당 방식이 좋을 것인가, 재창당 수준의 쇄신이 좋을 것인가를 논의하고 있었다"며 "재창당을 하려면 전당대회를 거쳐야하기 때문에 모처럼 출범하는 비대위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감이 있었다"고 했다.
또 "18대 국회 초기 때부터 돈봉투 문제는 사라져야 한다고 계속 말해왔다"며 "돈봉투 문제는 우리 정당의 50년 이상된 나쁜 관행이었고 여야가 자유로울 수 없는 문제"라고 밝혔다.
그가 야당도 돈봉투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지적한 것은 의도하지 않게 한나라당을 곤경에 빠트린 자신의 행위를 만회해보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그 시작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미 이번 사건은 고 의원의 손을 떠나버린 듯 하다. 당내에서는 쇄신파를 중심으로 한 재창당론까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선 참패 이후 중앙선관위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 등의 악재가 연이어 터지며 '차떼기 정당'이라는 이미지가 박힌 탓이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지금 상황으로는 절대 총선에서 이길 수 없다"며 "이기려면 기득권을 버려야 하는데, 아무도 버리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신의 글이 갖고 있는 파괴력을 미처 인식하지 못한 고 의원의 칼럼은 한나라당을 침몰 직전으로 몰고 가고 있다.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나면 독자의 몫으로 남듯이, 이번 사건 역시 고 의원의 손을 떠나 한나라당을 강타하고 있다.
뉴스토마토 이나연 기자 whitele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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