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한명숙 전 총리 항소심 최후진술
2011-12-16 19:00:23 2011-12-16 19:01:47
[뉴스토마토 최현진기자]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5만달러를 받은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에게 검찰이 징역 5년을 구형했다.
 
한 전 총리는 서울고법 형사4부(재판장 성기문 부장판사) 심리로 16일 열린 공판에서 최후진술을 통해 재판과정에서 느낀 소회를 털어놓았다.
 
다음은 진술문 전문.
 
먼저 세심하고 공정하게 재판절차를 진행해주신 재판장님께 감사드립니다.
피고인의 멍에를 안고 이 자리에 서는 것이 힘들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지난 2년여의 공판 과정에서 사회적 정의에 대한 사법부의 진지한 고민과 노력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위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지난 2년여 길고 긴 유폐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집 바깥으로 나가는 것도 싫었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불편하고 힘들었습니다. 가슴은 분노로 타들어 갔고, 마음엔 피멍이 들었습니다. 법정에서는 피고인이었고, 바깥은 의심과 의혹의 감옥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이 저로 인해 겪는 고초를 지켜보는 것은 살을 저미는 아픔이었습니다.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습니다"라고 비명을 지르기도 했습니다. 왜 하필 내가 표적이 됐는지 원망스러웠습니다. 정치인으로서 가졌던 꿈과 포부도 내려놓거나 유보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삶은 정지됐고, 활동은 멈춰야 했습니다.
 
그런 참혹한 고통의 시간을 겪으면서 두건의 사건 1심에서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진실이 드러나고, 결백이 밝혀졌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이상 수치와 모멸감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고 안도하기도 했습니다. 법정보다 더 가혹했던 의혹과 의심의 감옥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다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잠시였습니다.
여전히 저는 피고인이고, 제 삶은 법정에 결박돼 있습니다. 가족들과 저를 도왔던 분들의 고통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항소심이 열리고 있는 상황에서도 검찰은 제 주변을 뒤지고, 가족들으 수사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입니까? 얼마만큼 더 고통을 겪어야 끝나는 것입니까?
 
존경하는 재판장님.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는 이 법정에 제가 왜 서있어야 하는지의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정치적 표적이 됐고, 그것이 민주정부의 총리와 장관을 지낸 사람으로서 져야 할 운명이라면 기꺼이 감당하겠습니다. 그러나 검찰이 주장하는 공소내용과 관련해서는 제가 이 법정에 서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사실이 아니라 사람을 표적으로 한 부당한 기소였습니다.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던 저의 출마를 막기 위한 검찰의 선거개입입니다. 그것이 이 사건의 유일한 진실입니다.
 
다시 한번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아무것도 부끄러운 일을 한 것이 없는데, 부끄럽지 않음을 증명하라고 합니다. 이렇게 황당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이미 사건의 실체가 드러난 사건입니다. 강요된 진술이었음이 드러났고, 그 진술조차 수차례 바뀌었습니다. 현장 검증에서도 검찰의 주장이 허위였음이 확인됐습니다. 그럼에도 검찰은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표적수사를 한 사람들이 오히려 표적판결 운운하며 사법부를 비난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제가 겪어온 일이, 그리고 앞으로 견뎌내야 할 일이 악몽처럼 느껴집니다. 견디고 이겨내겠습니다. 우리가 고통스럽게 쌓아온 민주적 가치들이 무너지고 거꾸로 가는 상황에서 저만 시련과 고난에서 빗겨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지금 검찰의 시계는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시대가 바뀌고, 생각도 바뀌었지만 검찰의 시계는 여전히 20세기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서 있는 이 자리의 일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망각은 또 다른 피해자와 희생자를 낳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많은 시간을 잃어버렸습니다. 해야 할 일이 있었고 하고 싶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 소중한 시간에 변화를 바라는 국민들 편에 서서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에 작은 일이라도 보태고 싶습니다.
 
재판장님의 혜안을 믿습니다.
 
한 전 총리에 대한 선고공판은 해를 넘겨 다음달 13일에 열릴 예정이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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