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디지털자산 전문 매체 <디지털애셋>에서 작성했습니다.
[디지털애셋 박재연 기자] 주식시장이 문을 닫은 주말, 반도체 주가를 추종하는 디지털자산 파생상품 시장에서는 대규모 강제청산이 발생했습니다. 거래는 계속됐지만 현물 주식을 사고팔며 가격 차이를 조정할 통로는 제한됐습니다. 언제든 거래할 수 있다는 편의성과 실제 매물을 받아줄 유동성 사이의 간극이 드러난 것입니다.
주식시장이 문을 닫은 주말, 반도체 주가를 추종하는 가상자산(디지털자산) 파생상품 시장에서는 대규모 강제청산이 발생했다. 이를 표현한 이미지. (그래픽=디지털애셋)
실제 이 문제는 국제통화기금(IMF)이 토큰화 시장의 과제로 지적한 ‘유동성 파편화’ 차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거래소가 늘어도 주문과 자금이 여러 시장에 흩어져 있으면 가격 급변을 흡수하기 어렵습니다. 주말에도 거래할 수 있게 만드는 것과, 그 시간 동안 큰 가격 손실 없이 거래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거래 가능 시간만으로 시장의 유동성을 판단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토요일인 지난 17일 코인글래스 데이터에 따르면, 오후 9시22분부터 10분 동안(UTC 기준) 반도체 주식·펀드 연계 무기한선물에서 5160만달러(약 691억4400만원) 규모의 포지션이 강제청산됐습니다. 가격 상승에 베팅한 롱 포지션의 청산액은 3800만달러(약 509억2000만원)로 전체의 약 74%였습니다. 상품별로는 반도체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SOXL 연계 계약에서 1270만달러(약 170억1800만원), 샌디스크와 SK하이닉스 연계 계약에서 각각 1000만달러(약 134억원)가 청산됐습니다.
바이낸스에서 먼저 매도
데이비드 정 트레드파이(Tread.fi) 최고경영자(CEO)는 거래 기록을 분석한 결과 바이낸스에서 매도가 먼저 나타났다고 설명했습니다. 샌디스크와 마이크론 관련 대규모 매도는 오후 9시21분59초 시작됐고, 1초가 지나기 전에 하이퍼리퀴드에서도 주문이 나왔습니다. 약 10개 주소가 1.8초 사이 반도체 연계 계약 6개에서 가격 하락에 베팅했다는 분석입니다.
이번 사례에서 눈여겨볼 점은 현물시장과 파생상품 시장의 거래시간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주식시장이 열려 있을 때 시장조성자는 주식과 파생상품을 함께 사고팔아 위험을 줄일 수 있습니다. 두 시장의 가격 차이를 이용하는 차익거래도 가격 괴리를 좁혀 줍니다. 하지만 주말에는 현물 주식을 바로 거래할 수 없어 파생상품 가격이 현물 가격에서 크게 벗어나더라도 두 시장에서 동시에 반대 거래를 하기 어렵습니다. 시장조성자도 주식 거래로 위험을 상쇄하기 어려워 호가를 좁게 내거나 큰 주문을 받기 힘들 수 있습니다.
레버리지는 이런 상황에서 가격 변동을 더 키울 수 있습니다. 투자자가 증거금보다 큰 포지션을 보유하면 가격이 급변할 때 강제청산을 당할 수 있습니다. 롱 포지션이 청산되면 매도 주문이 나오고, 그 매도가 가격을 더 낮춰 다른 포지션까지 연달아 청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매수 호가가 얕은 시장에서는 같은 규모의 매도 물량도 가격을 크게 움직입니다. 따라서 청산액뿐 아니라 당시 호가가 얼마나 두터웠는지, 청산 주문이 가격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도 살펴야 합니다.
접근성과 유동성은 별개
IMF의 2026년 10월 글로벌금융안정보고서(GFSR)는 토큰화주식에서도 거래 접근성과 유동성을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토큰화주식 시장 규모는 23억달러(약 3조820억원)입니다. 이 가운데 온도파이낸스와 백드파이낸스 두 플랫폼이 전체 가치의 70% 이상을 차지합니다.
다만 발행 규모가 일부 플랫폼에 모여 있다고 해서 실제 매수·매도 주문까지 한곳에 모여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발행액은 시장의 외형을 보여줄 뿐, 투자자가 거래할 때 마주하는 호가나 거래량을 그대로 나타내지는 않습니다.
IMF가 유동성이 높은 미국 토큰화주식 5종을 기초 주식과 비교하고, 중앙화·탈중앙화 거래소 등 11개 거래장소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토큰화주식의 실현 변동성은 기초 주식보다 약 1.5배 높았습니다. 반면 유동성은 전통시장보다 중앙화거래소에서 낮았고, 탈중앙화거래소에서는 더 낮았습니다. IMF는 “얕은 호가와 제한적인 시장조성 활동 때문에 거래량에 비해 가격이 더 크게 움직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주식시장이 문을 닫은 주말, 반도체 주가를 추종하는 가상자산(디지털자산) 파생상품 시장에서는 대규모 강제청산이 발생했다. 이를 표현한 이미지. (그래픽=디지털애셋)
이런 현상은 이른바 ‘유동성 파편화’로 설명할 수 있는데, 같은 기업에 연계된 상품이라도 주문과 자금이 여러 플랫폼이나 블록체인에 나뉘어 있는 상황 때문에 발생합니다. 한 시장에는 매수자가 많고 다른 시장에는 매도자가 몰려도 자산과 자금을 빠르게 옮길 수 없다면 가격 차이가 계속 남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전체 시장이 커져도 투자자가 이용하는 개별 시장에는 매물을 받아줄 여력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IMF도 “여러 네트워크와 거래장소에 유동성이 나뉘면 거래가 어려워지고 가격 형성도 불안정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전 후 소유권 보장돼야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블록체인끼리 기술적으로 연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자산을 다른 플랫폼으로 옮긴 뒤에도 소유권과 상환 권리가 유지돼야 하고, 거래에 쓰이는 결제 자산도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방식으로 이전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유럽중앙은행(ECB) 집행이사 피에로 치폴로네는 지난 8월26일 연설에서 원장을 기술적으로 연결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자산의 권리가 플랫폼을 옮긴 뒤에도 유효하고, 이전 과정의 법적·운영상 효력도 보장돼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물론 이번 무기한선물 급락의 원인으로 꼽히는 ‘거래시간 차이’와 ‘유동성 파편화’는 서로 다른 각각의 문제이긴 합니다. 전자는 현물시장과 파생상품 시장의 운영시간이 달라 위험을 상쇄하기 어렵다는 것이고, 후자는 여러 플랫폼에 주문과 자금이 나뉘어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두 사례는 공통된 과제를 보여줍니다. 거래시간을 늘리려면 위험을 관리할 수단도 함께 작동해야 하고, 시장 간에 자산과 자금이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충격은 빠르게 번지는데 매물을 받아줄 주문과 자금은 제때 움직이지 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시장의 경쟁력을 평가할 때는 상장 종목 수나 발행액만 볼 것이 아니라 실제 거래 여건도 확인해야 합니다. 큰 주문이 가격을 얼마나 움직이는지, 주말에도 매수·매도 호가가 유지되는지, 현물과 가격 차이가 벌어졌을 때 이를 좁힐 거래가 가능한지가 중요합니다. 파생상품이라면 기준가격을 어떻게 정하는지, 증거금과 강제청산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도 살펴야 합니다.
초기 시장의 한계 뚜렷
결론적으로, 토큰화는 투자자가 시장에 접근하는 시간을 늘리고 소액 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장점이 있지만, 반면 주말에도 거래 버튼을 누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유동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시장이 커지려면 투자자가 매도하려는 순간 주문을 받아줄 자금이 있어야 하고, 자산과 자금이 시장 사이를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IMF는 여전히 초기 토큰화 시장이 아직 작고 파편화돼 있으며, 유동성은 낮고 변동성은 높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곤살로 페르난데스 디오니스 IMF 통화자본시장국 선임 금융부문 전문가는 지난 8일 한국은행에서 열린 GFSR 발표 행사에서 “시장 파편화가 유동성을 여러 섬으로 나누고, 자본이 필요한 곳이나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토큰화의 편익을 실현하려면 시장을 가로질러 자산과 자금이 움직일 수 있는 안전한 조건을 갖추는 게 핵심인 셈입니다.
박재연 기자 damgomi@digitalasset.works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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