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리다임발 ‘후폭풍’…재계, 해외 IPO 전략 시험대
해외 IPO, 주주가치 훼손 압박 거세져
재계, 중복상장 규제 일률 적용 ‘우려’
현대차 등 해외 IPO 전략 수정 불가피
2026-10-26 17:34:11 ㅣ 2026-10-26 17:46:52
[뉴스토마토 배덕훈·표진수 기자] SK하이닉스(000660)가 미국 손자회사 솔리다임의 상장 검토를 중단하면서, 자회사의 해외 IPO(기업공개)를 추진 중인 재계 여러 기업들의 셈법이 복잡해졌습니다. 솔리다임 상장 이슈와 관련해 금융당국이 해외 자회사에 대한 상장이 중복상장 규제에 저촉될 가능성을 거론하는 등 모회사 주주 가치를 고려해야 한다는 압박이 거세졌기 때문입니다. 재계 일각에서는 투자 재원을 조달하기 위한 해외 자회사의 상장에도 국내 중복상장 규제라는 일률적인 잣대를 적용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이에 미래성장동력으로 낙점한 사업을 해외에 상장해 자금을 조달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재계 기업들의 IPO 전략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 (사진=SK)
 
26일 재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솔리다임의 프리IPO(상장 전 투자 유치)와 IPO 검토를 중단하자 유사한 방식으로 자회사 해외 상장을 검토·추진 중인 다른 기업들의 해외 상장 전략에도 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란 지적이 나옵니다. SK하이닉스가 최근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를 솔리다임 IPO 중단 배경으로 설명했지만, 정부의 주주보호 강화 기조와 맞물린 규제 압박이 상당했던 만큼 상장 추진 시 불똥이 옮겨 붙을 가능성이 큰 까닭입니다.
 
특히 금융당국이 솔리다임 상장과 관련해 중복상장 규제에 해당한다는 뜻을 분명히 한 만큼, 이번 사례는 해외에서 인수한 기업의 상장이라고 해도 모회사의 주주 가치 훼손 논란을 피할 수 없다는 선례로 남게 됐습니다.
 
이에 당장 SK하이닉스는 별도의 자금 조달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당초 솔리다임 IPO를 통한 외부 자본 유치로 투자 부담을 낮추는 동시에 확보된 여력으로 본업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구상이었지만, 계획 변경이 불가피해졌습니다. SK하이닉스는 “솔리다임의 생산능력 확충과 경쟁력 강화는 중요한 과제”라며 “투자 시기와 규모, 재원 조달 방식 등을 검토해 솔리다임의 성장과 기존 주주들의 이익을 함께 높일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겠다”고 했습니다.
 
재계에서는 우려하는 분위기가 읽힙니다. 국내 중복상장 규제를 신사업 투자 자본 유치를 위한 해외 상장에까지 적용하는 것은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재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을 해외에 우회 상장하는 것이 아닌, 인수한 해외 기업을 상장하는 것까지 규제를 하는 것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며 “자본 조달도 하나의 경쟁 요소인데 이러한 부분이 국내 규제로 제동이 걸린다면, 글로벌 시장에서 다른 기업들과의 경쟁 구도에서 큰 핸디캡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주주 가치를 훼손하는 형태의 중복상장 사례를 막기 위해 해외 IPO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중복상장을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며 “해외 IPO의 경우 성장 차원의 자금 조달이나 산업의 특수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서울 도심 속 마천루의 모습. (사진=뉴시스)
 
현대차·LG·두산도 영향권
 
이번 사례로 현대차(005380), LG(003550), 두산(000150) 등 다른 기업들의 IPO 전략도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그중 대표적인 곳은 현대차그룹입니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로봇 자회사 보스턴다이나믹스의 상장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특히 보스턴다이나믹스의 상장은 단순 자금 조달 측면에 더해 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 열쇠로 꼽힙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 고리의 정점에 있는 기업은 현대차 지분 22.4%를 보유한 현대모비스입니다. 다만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율은 0.33%에 불과합니다. 보스턴다이나믹스의 시장 가치는 100조원대 수준으로 거론되는데, 상장이 성공할 경우 20%대의 지분을 가진 정 회장은 20조원 이상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 나옵니다. 이에 상장을 통해 확보한 재원으로 정 회장이 경영 승계에 필요한 계열사 지분 매입과 상속·증여세 부담을 충당할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또한 재계에서는 정 회장이 확보한 막대한 재원을 바탕으로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는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착수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스턴다이나믹스의 해외 상장에 제동이 걸릴 경우 이 같은 승계와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에는 적신호가 켜질 공산이 큽니다.
 
보스턴다이나믹스의 휴머노이드 아틀라스와 로봇 개 스팟이 지난 1월(현지시각)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가전 박람회 CES 현장에 전시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해외 IPO가 지연되면 지배구조 개편과 승계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자금 조달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며 “보스턴다이내믹스와 같은 미래 성장 사업의 기업가치를 시장에서 평가받고 투자금을 확보하려던 계획이 늦어지면, 그룹 차원의 투자와 재무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자회사의 해외 상장으로 투자 재원을 마련하려 했던 다른 기업들 역시 셈법이 복잡해졌습니다. LG전자는 최근 미국 로봇 자회사 베어로보틱스의 시리즈 투자 유치를 하는 과정을 진행 중인데, 프리IPO 추진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고, 두산은 미국 수소·연료전지 자회사인 하이엑서엄의 뉴욕 상장을 위해 주관사 선정 절차에 착수한 상태입니다. 
 
“규제 과도” vs “주주가치 침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해외 상장에까지 중복상장 규제를 적용하는 것을 두고 시각이 엇갈립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해외에서 인수한 기업을 현지에서 상장하는 특수한 상황인데, 금융당국이 이를 과도하게 규제하고 중복상장으로 보는 것 자체가 과하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이어 “뉴욕 증시 상장은 우리 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고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국내 규제로 족쇄가 채워지면 우리 기업을 대한민국 기업이라는 틀 안에만 가두는 시각으로 접근하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반면,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복수상장, 즉 중복상장인 만큼 모회사 주주 입장에서 주주가치가 침해되는 것은 해외 상장이든 국내 상장이든 동일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해외 빅테크는 대부분 자기가 번 돈으로 대규모 투자를 하는데, 우리 재벌들은 내부 유보금을 쌓아두기만 하고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데에는 보수적인 성향이 있어왔다”며 “지배력을 지키기 위해 주주 가치를 침해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해 온 것이 문제였고, 이것이 거버넌스를 크게 악화시켰다”고 지적했습니다.
  
배덕훈·표진수 기자 realwater@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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