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남윤서 기자] 국가인권위원회가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의평가 OMR(광학표시판독기) 답안지의 성별 표기를 없애달라는 진정을 3년째 결론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법적으로 지정된 성별과 성별정체성이 다른 학생들이 시험 때마다 어떤 성별을 표시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을 인권위가 확인하고도 판단을 미루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2027학년도 대학수학능력 9월 모의평가일인 2일 서울 송파구 방산고에서 수험생들이 OMR카드를 작성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8일 손솔 진보당 의원실이 인권위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수능 모의평가 OMR 성별 표기와 관련한 진정은 현재 모두 '조사 중'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첫 진정이 접수된 2023년 이후 3년째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겁니다.
문제가 된 것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주관하는 수능 모의평가 OMR 답안지의 성별란입니다. 평가원은 한국사 OMR 답안지에 남성과 여성 중 하나를 표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법적 지정 성별과 자신의 성별 정체성이 다른 학생도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겁니다.
평가원은 수능 모의평가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지 않는 대신 성적 관련 통계 자료를 작성하기 위해 OMR 답안지에서 성별 정보를 받아왔습니다. 성별 성적 통계를 내기 위해 해당 정보를 활용해 온 겁니다.
하지만 진정인 측은 시험에서 성별 정보까지 받을 필요가 있는지 문제를 제기해 왔습니다. 수험번호와 생년월일 등으로 응시자를 확인할 수 있는데도 별도로 성별을 표시하게 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 때문에 법적 성별과 성별 정체성이 다른 학생은 시험 때마다 자신의 정체성과 다른 성별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은 이 같은 방식이 교육받을 권리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취지로 2023년 7월 인권위에 처음 진정을 냈습니다. 각 시·도교육청이 주관하는 전국연합학력평가는 같은 내용의 민원을 수용해 2025년부터 OMR 답안지의 성별란을 없앴습니다. 그러나 평가원이 주관하는 수능 모의평가에는 여전히 성별란이 남아 있습니다.
성별란을 두고 어려움을 호소하는 청소년은 적지 않습니다. 인권위가 실시한 '성적지향·성별정체성 차별 실태조사'에서 청소년 응답자의 24.5%는 각종 신청서나 OMR 답안지 등에 자신의 성별 정체성과 맞지 않는 성별을 적는 문제로 학교생활에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했습니다. 성별 정체성 문제를 겪고 있는 청소년 4명 중 1명은 OMR 답안지를 받아 들고는 시험문제를 풀기도 전에 성별란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셈입니다.
첫 진정 이후 3년이 넘도록 판단이 나오지 않으면서 같은 내용의 진정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띵동은 지난 1일 다섯 번째 진정서를 제출했고, 인권위는 이들 진정을 병합해 여전히 조사하고 있습니다. 인권위 관계자는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며 "사건에 대한 판단뿐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처리하는 게 좋을지도 고민해야 해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인권위의 판단이 미뤄진 배경에는 성소수자 문제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안창호 위원장의 영향이 있을 것이란 지적도 나옵니다. 손솔 진보당 의원은 "동성애가 사회주의 독재를 불러온다는 망언을 서슴지 않는 기관장이 이 진정의 해결을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직원이 의지가 있어도 내부적으로 기관장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남윤서 기자 nyyyseo@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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