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현경 기자] 최근 한국과 미국 증시의 동조화는 국가 간 자금 이동보다 인공지능(AI)·반도체 공급망의 변화로 설명된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미국 빅테크의 AI 투자와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대만의 파운드리가 하나의 가치사슬로 연결되면서 국가보다 산업을 중심으로 증시가 움직이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산업 중심 동조화의 배경에는 AI 투자 확대가 있습니다. 미국 빅테크의 AI 인프라 투자 확대가 메모리 반도체 수요 증가로 이어지고, 이는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의 실적과 기업가치를 끌어올립니다. 다시 한국 반도체 기업의 실적과 주가가 글로벌 반도체 투자심리에도 영향을 주면서 AI 공급망을 중심으로 한 증시 연계성이 강해지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4일 자본시장연구원이 발표한 '주식시장 변동성 상승의 배경 검토' 보고서를 보면 코스피와 미국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의 3개월 이동 구간 수익률 상관계수는 2020년 초 0.29에서 2026년 6월 말 0.45로 상승했습니다. 김준석·장근혁 연구원은 글로벌 AI 투자 확대에 따른 메모리 반도체 수요 증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 상승과 시가총액 비중 확대로 이어졌고, 이것이 코스피와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의 연계성을 강화한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국내 증시에서 반도체의 존재감도 크게 확대됐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코스피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5년 초 23%에서 2026년 초 34%, 올해 6월 말에는 55%까지 높아졌습니다.
유진투자증권(001200)은 올해 상반기 코스피 상승분의 78.3%를 두 종목이 설명한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이는 같은 기간 대만 증시에서 TSMC(38.9%), 미국 증시에서 매그니피센트7(M7·13.4%)보다도 높은 수준입니다. 반도체 관련 주요 5개 종목의 시가총액 비중은 한때 66%까지 확대됐습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이 같은 변화로 코스피의 위험 분산 효과도 약화됐다고 진단했습니다. 주가지수는 통상 다양한 업종으로 위험을 분산하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구조에서는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고유 위험이 코스피 전체 변동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입니다. 실제 올해 상반기 코스피200 변동성 증가분(2.3%포인트) 가운데 약 3분의 1은 두 종목의 변동성 확대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변화가 국가 간 증시 동조화라기보다 AI 공급망을 공유하는 산업 생태계의 확대를 반영한다고 평가합니다.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전 한국증권학회장)는 이를 '에스컬레이터 효과'로 설명했습니다.
이 교수는 "반도체 슈퍼사이클 이전에는 중국 증시가 한국 증시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최근에는 그 영향력이 크게 줄었다"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대표 주자로 자리 잡으면서 미국 반도체주 움직임에 따라 한국 반도체가 움직이고, 다시 한국 반도체 기업의 실적과 주가가 미국 반도체 투자심리에도 영향을 주는 상호 영향 구조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실적 자체보다 실적 추정치 변화에 대한 작은 뉴스에도 미국과 한국 시장이 함께 크게 반응하는 현상이 나타난다"며 "어디가 먼저 움직였느냐보다 AI·반도체라는 하나의 산업이 글로벌 자본시장을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경수 하나증권 연구원도 AI 투자 확대가 이 같은 연계성을 강화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 부장은 "과거에는 미국 소프트웨어 기업과 한국 하드웨어 기업의 성격이 달라 주가 흐름이 엇갈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은 빅테크 기업들이 AI 인프라 투자를 공격적으로 확대하면서 반도체 업황이 미국과 한국을 동시에 움직이는 핵심 변수가 됐다"며 "상관계수가 높아진 것은 반도체 업황 개선을 함께 반영한 결과이지 상관계수 자체가 시장을 움직이는 원인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자리 잡으면서 한국 시장도 글로벌 반도체 업황을 가늠하는 주요 지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최근 상관계수 상승을 곧바로 한국 증시가 미국을 선도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유명간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상관계수는 시장이 급락할 때 자연스럽게 높아지는 수학적 특성이 있어 중장기 분석에서 지양하는 편"이라며 "최근 상관계수가 높아진 것도 시장 조정 국면의 영향이 일부 반영된 결과일 수 있고, 낙폭이 커서 한국이 먼저 움직인 것처럼 보인 측면도 있다"고 했습니다. 다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이익 규모와 시가총액이 과거보다 크게 확대된 만큼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영향력이 커진 것은 분명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자본시장연구원도 보고서에서 상관계수 상승의 배경을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비중 확대와 AI 밸류체인 내 위상 강화에서 찾으면서도 "내생성의 잔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해석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김현경 기자 khk@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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