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표진수 기자]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이 닥치자 하이브리드 시장을 외면하고 전기차에 올인했던 독일 완성차업계가 침몰하고 있습니다. 반면 시장 불확실성 속에서도 하이브리드 기술을 고수해 온 현대차그룹은 우직한 ‘뚝심’으로 글로벌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 (사진=현대차그룹)
4일 글로벌 주가정보업체 컴퍼니스마켓캡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 기준, 현대차 단독 시가총액(704억6000만달러)은 메르세데스-벤츠(7위·528억4000만달러)·폭스바겐(12위·440억2000만달러)·BMW(14위·412억5000만달러)를 앞서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기아 역시 시가총액 350억달러로 혼다(384억달러), 지리(262억달러) 등 주요 글로벌 업체들과 견줄 만한 수준까지 몸집을 키웠습니다. 10년 전 독일 3사가 세계 시총 2·3·4위를 나란히 차지하며 현대차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 같은 명암을 가른 것은 파워트레인 전략의 차이였습니다. 독일 3사는 2015년 디젤게이트 이후 내연기관에서 곧바로 순수 전기차(BEV)로 건너뛰는 급진적 전환을 선언했습니다. 하이브리드를 과도기 기술로 규정하고, 전동화 자원을 순수 전기차 개발에 집중 투입하는 쪽을 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측과 달리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이 극심한 캐즘에 직면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보조금 축소와 충전 인프라 부족, 소비자가격 부담 등이 겹치며 전기차 수요 증가세가 꺾였습니다. 하이브리드라는 대체 카드를 마련해 두지 않았던 독일 업체들은 전 세계적인 수요 둔화를 방어할 수단을 잃고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반면, 현대차그룹은 토요타가 선점한 하이브리드 특허 장벽을 우회해 독자적인 TMED(Transmission Mounted Electric Device) 시스템을 개발한 이후, 단 한 번도 기술 고도화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TMED는 기존 자동변속기에 전기모터를 결합한 방식으로, 토요타의 동력분기식 하이브리드 시스템과는 다른 독자 노선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현대자동차그룹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 (사진=현대차)
현대차그룹은 이후에도 시장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 전기차를 동시에 개발하는 ‘멀티 패스웨이’ 전략을 고수해 왔습니다. 특정 파워트레인에 자원을 몰아주기보다 각 시장과 소비자 수요에 맞춰 선택지를 다변화하는 방식을 택한 것입니다.
그 결과 전기차 캐즘이 본격화한 최근 몇 년 사이, 현대차그룹은 완성도 높은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의 대체 수요를 고스란히 흡수할 수 있었습니다. 전기차 전환을 서두르다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독일 업체들과 달리, 하이브리드로 수요 공백을 메우며 판매 하락을 방어한 것입니다.
실제로 현대차와 기아의 글로벌 하이브리드 판매량은 지난해 처음으로 100만대를 돌파했습니다. 전체 글로벌 판매량의 15.2%에 해당하는 규모로, 전년 대비 약 23% 늘었습니다. 미국 시장에서는 하이브리드 판매량이 33만1023대로 전년 대비 48.8% 급증하며 성장세를 이끌었습니다.
최근에는 하이브리드에서 한발 더 나아가 주행거리연장형전기차(EREV)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현대차는 2026년 말부터 미국 등지에서 EREV 양산에 착수해 2027년 판매에 나설 계획이며, 제네시스 GV70과 싼타페 등 대형 SUV 차종부터 순차 적용할 방침입니다. EREV는 소형 엔진을 발전기로 활용해 배터리를 충전하는 방식으로, 전기차 수준의 주행 성능과 장거리 주행 능력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현대차 관계자는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는 글로벌 산업 환경 속에 전 세계 자동차 수요가 감소하는 등 어려운 시장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며 “하지만 현대차는 하이브리드차 등 고부가가치 차종 판매 확대를 통해 산업 수요 감소에도 견조한 판매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표진수 기자 realwater@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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