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여름 햇살을 듬뿍 머금은 충남 예산의 작은 사과 농원. 지하 숙성실 문을 열자 시공간이 멈춘 듯 깊고 그윽한 오크 향과 달콤한 술 냄새가 코끝을 감쌉니다. 시설 지하에는 프랑스 보르도의 샤토 마고, 스페인의 쉐리, 포르투갈의 포트와인을 담았던 오크통들이 한눈에 들어올 만큼 줄지어 서 있습니다. 사과나무 너머 2008년 문을 연 와이너리 ‘예산사과와인(추사)’은 정부가 추진하는 전국 69곳 ‘찾아가는 양조장’ 중 K-미식 관광의 새 지평을 열 대표 거점입니다.
술 한 잔에 담긴 지역 농산물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29일 예산 추사에서 권역별 미식 관광 투어 코스를 선보인 것은 지난 6월 ‘K-치킨벨트’에 이은 두 번째 프로젝트입니다. K-미식 관광이란 단순히 술을 마시거나 음식을 먹는 일차원적 소비를 넘어 지역의 흙과 물이 키워낸 농산물, 양조장의 역사, 그리고 향토음식에 담긴 인문학적 서사를 하나의 여정으로 경험하는 신개념 로컬 여행 모델입니다.
농식품부는 현재 운영 중인 ‘찾아가는 양조장’ 69개소 중 지역 대표성과 체험 프로그램의 우수성, 향토음식과의 연계성, 교통 접근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6개 권역 40개소를 선별했습니다. 인천 금풍양조, 철원 우창두루미양조장, 문경 오미나라, 무주 덕유, 정읍 한영석의 발효연구소 등이 대표적입니다.
정재민 예산사과와인(추사) 대표가 29일 충남 예산에 위치한 추사 양조장 지하시설에서 술 생산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정재민 추사 대표는 세계 각국의 오크통 사이를 지나며 “사과 3톤을 증류하면 60도 원액 320ℓ가 나오고, 500㎖ 애플 브랜디 한 병에는 사과 6㎏ 이상이 들어간다”고 설명했습니다. 코로나19 시기 연간 30톤 안팎에 불과했던 사과 소비량은 지난해 466톤까지 늘어났는데, 예산 지역 사과 생산량의 약 3%에 해당하는 수준입니다.
특히 웹툰 작가와 협업한 한정판 브랜디가 출시 1분 만에 완판된 사례를 들며 정 대표는 “요즘 술은 취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이야기와 취향을 담은 콘텐츠로 소비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최근 주류 광고의 과음 경고 문구 및 그림 표시 기준이 강화되는 움직임에 대해 “술 라벨이 지역·문화적 상징으로 활용되는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는 조치”라며 아쉬움을 나타냈습니다.
전통주 시장은 최근 수년 새 출고량과 제조 면허 수가 2배 이상 급증하며 원소주, 경탁주 등 유명인들의 참여 속에 외형적 성장을 이뤄냈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방문 유치나 단발성 홍보를 넘어 지역 농가와 상권 전체가 지속 가능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고차원적 정책 지원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입니다.
정재민 예산사과와인(추사) 대표가 29일 충남 예산에 위치한 추사 양조장 지하시설에서 술 생산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셔틀버스’부터 ‘지방세 전환’까지
그런 의미에서 이번 미식 관광이 그 시발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문제는 현실적 과제가 적지 않다는 점입니다. 현장 관계자 말을 종합하면 유통·홍보보다 업계가 정말 원하는 건 농촌 지역의 활성화를 위한 인프라 지원책입니다. 예컨대 대다수 농촌 양조장은 자가용 접근이 일반적으로 시음회 후 대리운전이 필수입니다. 지자체 연계 셔틀버스 등 거점 교통의 편리성이 답보돼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입니다.
또 양조장에서 맛본 지역 술을 인근 대표 식당 등 로컬 맛집과 연계하는 선순환 상생 모델도 요구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 같은 지원책이 힘을 받기 위해서는 세제 개편의 필요성도 지목됩니다. 그 중 ‘주세의 지방세 전환’은 지자체가 K-미식 인프라에 예산을 투입할 재정적 유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한 전통주 관계자는 “단순하게 술 시음과 체험에 그치기보단 술은 좋은 안주와 페어링돼야한다. 지역 로컬 맛집과 연계하고 상권으로 이어지는 등 한 지역의 전체 경제권이자 활성화 대책으로 검토해야한다. 전통주에 한해 현 국세가 아닌 ‘주세의 지방세 전환’이 필수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유재형 농식품부 식품외식산업과장은 “K-미식 양조장을 선정 할 때 교통 얘기가 있어서 거점 기차역에서 대중교통, 택시 이용 등 쉽게 접근할 수 있는가를 선정 기준에 포함했다. 양조장뿐 아닌 지역의 전체 경제권을 고려한 논의도 할 생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9일 충남 예산군 소재 ‘예산사과와인(추사)’에서 전국의 ‘찾아가는 양조장’을 활용한 권역별 대표 미식관광 투어 코스를 첫 공개했다. (사진=뉴스토마토)
“지역 활성화 모색…지방세 전환 연구용역 중”
지역 식당·상권 유통 연계 및 로컬 상생과 관련해서는 “예를 들면 금정산성 막걸리 같은 금정산성 토산주 그 근처에 식당을 가면 해당 술을 팔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양조장이 얼마만큼 큰 이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느냐 경제적 인지도 면에 따라 함께 가야 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현재는 대표 양조장 찾아가고 지역에 있는 맛집이나 아니면 관광 명소들을 엮어 일종의 투어 코스를 제시하는 정도인데, 투어뿐만 아닌 그 지역이랑 같이 상생하는 좀 더 고차원적인 접근법은 필요한 방향인 것 같다”고 부연했습니다.
주세의 지방세 전환 여부에 대해서는 “예전에 그런 검토를 요청한 바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역 특산주는 말 그대로 지역 농산물을 사용해 지역 경제나 농업을 활성화시키는 거니까. 그 지역 특산주에 대한 국세가 아닌 지방세로 들어오게 해 지자체에서도 열심히 하게 하자는 게 핵심 논의였다”고 언급했습니다.
유 과장은 “관련해 연구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며 “주세의 지방세 전환에 따른 경제적 효과와 부작용을 다각도로 분석하기 위한 전문 연구용역을 진행 중으로 향후 명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논의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김정욱 농식품부 농산업혁신정책실장은 “지역의 농산물과 역사, 양조인의 정성이 담긴 문화 자산”이라며 “앞으로도 K-미식 여정을 통해 전통주와 지역 향토음식, 관광 자원을 잇는 연계 콘텐츠를 계속 확대하여 지역경제 활성화와 K-푸드의 세계화에 앞장설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9일 충남 예산군 소재 ‘예산사과와인(추사)’에서 전국의 ‘찾아가는 양조장’을 활용한 권역별 대표 미식관광 투어 코스를 첫 공개했다. (사진=뉴스토마토)
예산=이규하 기자 judi@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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